편지

by 남킹


안녕하세요. 아르미르입니다.

최근에 소설을 집필 중입니다. 이번 소설은 제가 실제로 채팅으로 보고 듣고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소재로 엮을 생각입니다. 저는 폴란드에 혼자 살고 있으며 나의 연인이 될 여인을 채팅으로 찾는 중입니다.

이 글은 제가 당신과 본격적으로 채팅을 하기에 앞서 몇 가지 느낀 점을 먼저 이야기하고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 의해서입니다. 약간 긴 글이므로 혹시 해석에 어려움을 느끼신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채팅이 가진 치명적인 단점, 즉, 단속적이고 즉흥적인 대화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저도 몇 달 전부터 채팅에 빠져,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대화를 하지만 상대방에 대해서 그다지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한된 인생의 시간을 낭비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과 걸어왔던 세월의 발자취를 상대방에게 차분히 정리하여 보여주는 행위는 관계 형성에 중요한 토대가 될 것입니다. 더욱이 사랑 혹은 어떤 종류의 이끌림을 전제로 한 관계라면 그 중요성은 남다르리라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의 이유를 들자면, 앞으로 출판하게 될 제 책의 토양이 될 만한 글을 남긴다는 점입니다. 저는 폴란드에 오면서, 한 해에 딱 1권의 소설책을 발간하고자 하는 저의 유일한 결심이 3개월 전부터 이어졌는데, 작금의 소설 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하루 9시간의 근무와 일주일에 딱 하루 쉰다는 점이 소설가에게는 치명적인 시간 부족을 선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지하더라도, 그 부족한 시간조차 채팅으로 소진해버리니 사실 예견된 재앙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채팅을 그만두기는 너무 아쉽습니다. 어찌 보면 하루 중 유일한 즐거움일 수 있는데, 그나마 없다면 그 삭막함을 어찌 견디겠습니까?

당신처럼 멋진 여인을 만날 수 있다는 그 설렘 말입니다. 결국, 호구지책으로 생각해낸 게 바로 편지입니다. 채팅에 장문의 글을 집어넣고 그 글은 내 소설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과 동시에 채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되고 또한 수많은 선택을 받게 되는 시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당신하고만 채팅하는 척은 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당신하고 나눈 대화의 내용을 잊어버리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저는 신체 건장한 남자입니다. 저는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싶고 당연하게도 육체적 욕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너무도 짧고, 젊은 시절, 한순간 눈부신 육체도 곧 한 줌의 바람 속의 먼지처럼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저는 당신과 내 속에 담겨 있는 모든 생각을 살아있는 동안 솔직하게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즉, 당신을 좀 더 많이 알기 위한 행위입니다. 그 속에는, 우리의 DNA가 진화해 온 것처럼, 성적인 용어나 욕망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발 변태라는 용어로 속단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불쾌함을 느낀다면 읽기를 중단하고 나가셔도 좋습니다. 저는 그저, 제약 없이 모든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모든 순간을 다양한 형태로 저장할 수 있는 휴대전화 혁명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살아있는 매 순간을 글뿐만 아니라 사진, 동영상으로 남기기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음악도 사랑합니다. 물론 작가이니까 책도 좋아합니다. 저는 이런 모든 것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간혹 온전히 글로 된 채팅만 요구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당신이 보내온, 삶을 살아가는 멋진 모습 혹은 순간, 정원에 돋아난 아름다운 들꽃 사진에 더욱 감동합니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당신을 차츰 알게 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저는 퇴근하면, 매일 적당한 분량의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보내는 답장이 아주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용서해주시기 바라고 당신을 싫어하거나 싫증이 나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당신과 즐겁고 행복한 채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는 농담이 심합니다. 가벼운 사람입니다. 직장에서도 늘 농담을 합니다. 당신이 혹시 아주 진지한 사람이라면, 제가 하는 농담에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본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바티칸의 최종 병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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