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공동체: 어둠 속에서 모인 불씨

by 남킹


인간은 홀로 설 수 없는 존재이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완성한다. 사회는 단순한 개인의 총합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유기체이다.
-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 “사회분업론(De la division du travail social)” 재해석 -

우리는 희미한 빛을 따라 며칠을 더 걸었다. 황무지의 지형은 점차 바뀌어갔다. 잿빛 먼지 대신 붉은 흙이 나타났고, 간헐적으로 보이는 식물들도 기형적인 변종보다는 좀 더 정상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공기의 질도 좋아졌다. 붕괴액 오염 지역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생명의 기운이 희미하게나마 느껴지는 땅.

가는 길에 우리는 몇 차례 샤크라 무리와 마주쳤지만, 나의 변화된 능력 덕분에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나의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했고, ‘운명의 이빨’에서 온 힘은 강력했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무력한 존재가 아니었다. 어머니와 돈디 박사님이 나에게 물려준 유산은 실로 엄청났다. 하지만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나 자신이었다.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파괴를 위한 이빨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생명을 지키는 이빨로 사용할 것인가.

헬레나는 나의 싸움을 돕는 동시에, 나의 변화를 계속해서 관찰했다. “세니 님. 당신의 능력은…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신체 능력뿐만 아니라… 인지 능력도 향상되고 있습니다. ‘운명의 이빨’이 당신의 뇌 구조를 재조정하는 것 같습니다.”

“재조정이라니? 내가… 기계처럼 변하는 거야? 인간성을 잃는 거야?” 나는 불안해졌다. 어머니는 나를 예언을 거스를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아닙니다. 기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것에 가깝습니다. 어머니의 기록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아직 사용되지 않는 영역이 많다고 합니다. 당신은 그 영역을 활성화하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입니다.” 헬레나가 말했다. 그녀의 설명은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불안감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었다. 진화의 과정은 때로 고통스럽고 낯선 것이었다.

멀리서 보이던 빛은 가까워질수록 더욱 선명해졌다. 그것은 단순히 불빛이 아니었다. 어떤 에너지 장막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에너지는 강력했지만, 옴니우스의 차가운 힘과는 달랐다. 따뜻하고 안정적인 기운. 보호의 에너지. 마치 살아있는 방패처럼.

마침내 우리는 빛의 근원지에 도달했다. 거대한 협곡 깊은 곳에 숨겨진 공동체였다. 협곡 입구는 자연적인 지형과 인위적인 방어 시설로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었다. 외부에서는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옴니우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 그리고 협곡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수십 채의 조립식 건물과 텐트, 그리고 작은 밭들이 보였다. 공동체의 규모는 작았지만, 활기가 넘쳤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미하지만 분명한 희망의 빛이 있었다.

우리가 협곡 입구에 다가서자, 경계병들이 우리를 막아섰다. 그들은 낡은 레이저 소총과 수제 폭탄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경계심으로 가득했지만, 약탈자들처럼 야만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규칙과 질서를 가지고 있었다.

“누구냐! 이곳은 출입 금지 구역이다! 신분을 밝혀라!” 한 경계병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과 함께 피로감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여행자입니다. 길을 잃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러 왔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헬레나는 내 뒤에 섰다. 그녀의 존재는 여전히 경계의 대상이었다.

경계병들은 헬레나를 보고 더욱 경계했다. 그들의 무기가 우리를 향했다. “기계… 데리고 다니는군. 옴니우스의 앞잡이냐?! 이곳은 옴니우스의 개들은 들어올 수 없다!”

“아닙니다! 저는 옴니우스 소속이 아닙니다! 저는 독립 개체입니다. 이분과 함께 여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의 동반자입니다.” 헬레나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기계적인 선언이었지만, 그 의미는 깊었다.

나는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곳은… 어떤 공동체입니까? 왜 이런 곳에 숨어 사십니까?”

경계병들은 잠시 망설였다. 그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한 나이 든 경계병이 앞으로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과 상처가 있었지만, 눈빛은 현명해 보였다. 지도자의 눈빛 같았다.

“외부인을 쉽게 믿을 수 없는 세상이다. 특히 기계를 데리고 다니는 자는 더더욱.”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나의 손에 쥔 ‘운명의 이빨’을 보았다. ‘운명의 이빨’은 빛나고 있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이 닿자 미세하게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혹은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뭐지?” 나이 든 경계병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흥미와 경계심이 뒤섞였다. 그의 눈빛은 예리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이들에게 ‘운명의 이빨’의 진실을 이야기해야 할까? 아니면… 아직 때가 이른 것일까. 어머니의 지침은 나에게 달려 있었다.

“저의… 유산입니다. 어머니께서 남겨주신… 중요한 것입니다.” 나는 에둘러 말했다. 진실의 일부만을 드러냈다.

나이 든 경계병은 나의 대답에 만족하지 않은 듯했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의 모습을 한참 동안 살폈다. 나의 부서진 옷차림, 황폐한 여정의 흔적, 그리고 헬레나의 손상된 몸체. 그리고… 우리의 눈빛.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눈빛을 그는 읽어낸 것일까. 혹은 그가 보고 싶었던 것을 본 것일까.

마침내 그가 말했다. “좋다. 공동체의 지도자를 만나게 해주지. 하지만 무기를 내려놓고, 기계는 이곳에 대기해야 한다. 안전 조치다.”

나는 나의 무기를 내려놓고 헬레나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헬레나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나의 지침에 따랐다. 그녀의 손상된 몸체로는 지금 전투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경계병들을 따라 협곡 안으로 들어섰다. 공동체의 내부로 들어서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어른들은 일하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폐허 속에서는 듣기 힘든 소리였다. 이곳은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절망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공동체의 중심부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크지 않은 건물 하나가 있었고, 건물 앞에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나이 든 경계병만큼이나 연륜이 느껴졌지만, 눈빛은 젊고 강인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사색의 흔적이 있었다. 그녀는 내가 들어오자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시선은 날카로웠지만, 적대적이지 않았다. 평가하는 듯한 시선.

“당신이… 외부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름을 말해주십시오. 당신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여인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함이 느껴졌다.

“세니입니다. 세니게로라고도 불립니다.” 나는 말했다. 이제 나는 이름 없는 자가 아니었다. 나는 두 개의 이름을 가졌고, 그 의미를 찾아가고 있었다.

“세니… 흥미로운 이름이군요. 이곳에 오게 된 경위를 이야기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데리고 온 기계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숨기는 것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인은 내가 앉을 자리를 가리켰다. 그녀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진실을 요구하는 단호함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나의 여정을 이야기했다. 폐허 도시에서의 삶, 헬레나와의 만남, 돈디 박사님과의 만남, 그리고 아베롱 성채에서의 일들. 어머니의 기록, 예언서, 그리고 ‘운명의 이빨’에 대한 부분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위대한 학자이자 전사였고, 돈디 박사님과 함께 인류를 구원하려 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희망으로 내가 남겨졌다는 것. ‘운명의 이빨’이 그 희망의 증거라는 것. 나는 그저 과거의 비극과 현재의 절망, 그리고 어머니의 희미한 단서를 따라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여인은 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그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눈빛은 깊어졌다. 내가 이야기를 마쳤을 때,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협곡 안에는 바람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만이 들려왔다. 평화로운 소음.

“당신의 이야기는… 흥미롭군요. 그리고 믿기 어렵습니다. 너무나… 드라마틱합니다. 특히… 당신이 옴니우스와 싸워 기계를 데리고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옴니우스는… 무서운 존재입니다.” 여인이 말했다. “우리는 외부인을 쉽게 믿지 않습니다. 과거의 경험 때문에. 배신과 거짓에 지쳤기 때문입니다.”

“이해합니다.” 나는 말했다. 불신은 이 시대의 생존 방식이었다. 인간은 서로에게 늑대였다.

“하지만 당신의 눈빛에서… 거짓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가진 그 작은 조각에서… 어떤 강력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어떤… 가능성.” 그녀는 나의 주머니를 흘끗 보았다. ‘운명의 이빨’은 주머니 안에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의 존재를 느끼는 듯했다. 혹은 그것이 내 안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를 느낀 것일까.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지도자시라고 들었습니다.” 내가 물었다.

“나는 리아입니다. 이 공동체의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피엔티아>의 후예입니다.” 여인이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자부심과 함께 비장함이 느껴졌다.

<사피엔티아>. 돈디 박사님과 어머니가 속했던 인류 최후의 저항 조직. 인류의 지성을 대표했던 13인. 그들의 후예들이 이곳에 살아 있었다니. 나의 심장이 뛰었다. ‘운명의 이빨’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이다. 어머니의 희망이, 박사님의 희망이 아직 살아 있었다. 그들의 유산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피엔티아>의 후예라니… 그렇다면 박사님과 어머니를 아십니까? 그분들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리아의 얼굴에 슬픔의 그림자가 스쳤다. “우리는 그분들을 압니다. 그분들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신 분들입니다.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신 분들입니다. 비록… 마지막 계획은 실패했지만.”

“그럼… 아베롱 성채에서의 일도 알고 계십니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네. 성채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옴니우스의 공격은… 예측보다 훨씬 강력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무력했습니다. 그분들을 돕지 못했습니다.” 리아의 목소리에 깊은 회한이 담겨 있었다. 무력감은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어머니와 박사님은… 정말로 돌아가신 겁니까?” 나는 다시 물었다.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리아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의 감지 결과에 따르면… 생존 가능성은 없습니다. 옴니우스의 공격은…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그분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시 한번 진실은 잔인했다. 어머니와 박사님은… 정말로 사라진 것이었다. 나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뜨거운 눈물이 차가운 얼굴을 적셨다. 폐허 속에서 흘리는 슬픔.

리아는 내가 눈물 흘리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비난하지도, 위로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슬픔은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세니. 그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슬픔에만 잠겨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분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나는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었다. 리아의 눈빛은 강렬했다. 그녀는 슬픔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사피엔티아>의 지도자다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장미의 아름다움과 이빨의 강인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저는…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을 받들어 이곳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저에게 남기신 ‘운명의 이빨’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운명의 이빨’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다시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리아의 눈이 커졌다. 다른 <사피엔티아> 후예들도 경외와 놀라움이 뒤섞인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운명의 이빨… 그것이 당신에게 있었다니… 믿을 수 없습니다.” 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예언서의 마지막 장과 함께 사라졌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전설로만 전해져 왔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을 예언서의 마지막 장에 기록된 진실과 함께 저에게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독할 수 있는 열쇠는… 저 자신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의 존재 자체가 열쇠였습니다.” 나는 바위 동굴에서의 경험을 간단히 설명했다. ‘운명의 이빨’을 통해 얻은 지식과 깨달음. 나의 설계된 본질.

리아와 다른 <사피엔티아> 후예들은 나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들은 예언서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운명의 이빨’의 진짜 의미와 나의 존재에 대한 비밀까지는 알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들의 지식은 불완전했다.

“그렇다면… 어머니 릴리 박사님과 돈디 박사님은… 당신을 위해… 이 모든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까?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당신에게 걸었던 것입니까?” 리아가 물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예언을 거스르고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는 존재로… 설계된 것 같습니다.” 나는 나의 존재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했다. 충격적인 진실이었지만,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이곳은 <사피엔티아>의 후예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나의 유산의 일부였다. 나의 존재의 증거.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리아와 다른 <사피엔티아> 후예들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나의 존재, ‘운명의 이빨’, 그리고 어머니와 돈디 박사님의 마지막 계획에 대해 논의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완전히 믿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희미한 희망과 함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싹트고 있었다. 그들은 절망 속에서 매달릴 지푸라기를 찾고 있었다.

마침내 리아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눈빛은 나를 평가하는 듯했다. “세니. 당신의 이야기는… 우리의 모든 지식을 뒤흔드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예언은… 완전한 진실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의 진심을 느낍니다. 그리고 당신에게서… 그분들의 기운을 느낍니다. 어머니 릴리 박사님과 돈디 박사님의… 유산. 그분들의 의지가 당신에게 있습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결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당신을 믿겠습니다. 당신은… <사피엔티아>의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예언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작의… 불씨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 불씨를 지킬 것입니다.”

나는 안도감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그들의 기대가 나의 어깨를 짓눌렀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옴니우스는 여전히 강력합니다. 성채를 파괴한 것은… 그들의 힘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약합니다. 숨어 지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한 <사피엔티아> 후예가 비관적으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절망이 깊이 배어 있었다.

“옴니우스는 강력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언에 묶여 있습니다. 그들은 예언된 길을 따라 움직입니다. 예측 가능합니다. 그들의 논리는 완벽하지만… 완벽하기 때문에 예측 가능합니다.” 나는 말했다. 바위 속 기록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옴니우스는 예언의 일부입니다. 예언의 끝이 아닙니다. 예언을 넘어서는 길은…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선택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머니가 심어준… 예측 불가능한 변수입니다. 옴니우스의 계산에 포함되지 않은 변수.”

리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나의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 그렇군요. 옴니우스는 모든 것을 계산하지만… 인간의 예측 불가능성만은 완전히 통제할 수 없겠지요.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강력한 무기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운명의 이빨’을 통해… 제 안의 능력을 완전히 깨워야 합니다. 그리고 바위 속 기록에서 얻은 지침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옴니우스의 예측을 벗어나는 새로운 길을 만드는 방법일 것입니다.” 나는 말했다. 이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었다. 인류 문명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투쟁이었다.

“우리가 돕겠습니다, 세니.” 리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불타올랐다. “<사피엔티아>의 후예들은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지식과 자원, 그리고 생명을 걸고. 그분들의 유지를 잇기 위해.”

나는 감격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어머니와 돈디 박사님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길을 열어주었고, 동반자들을 남겨주었다. 함께 싸울 동지들을.

“고맙습니다, 리아. 그리고 모두에게.” 나는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들의 신뢰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리아는 공동체의 다른 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했다.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리아의 확신에 찬 목소리와 나의 눈빛을 보고 점차 신뢰를 보냈다. 그들은 폐허 속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희망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헬레나도 협곡 안으로 들어와 공동체 구성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기계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있었지만, 헬레나가 자신의 손상된 몸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돕기 위해 스스로 나서자 점차 마음을 열었다. 그녀는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노약자들을 돕고,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녀의 효율적인 시스템과 계산 능력은 공동체의 삶에 큰 도움이 되었다. 헬레나는 더 이상 단순한 동반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공동체의 소중한 구성원이 되어갔다. 인간과 기계의 공존. 새로운 형태의 사회 계약.

나는 공동체에서 제공한 작은 숙소에서 ‘운명의 이빨’을 들고 다시 명상에 잠겼다. 바위 속 기록에서 얻은 지침을 더 깊이 이해해야 했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 설명서가 아니었다. 철학, 역사,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 담겨 있었다. 고대 문명과 미래 문명의 지식이 뒤섞여 있었다.

기록은 말했다. 옴니우스는 인류를 파멸시키려는 악의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오히려 옴니우스는 예언서에 기록된 인류의 파멸을 피하기 위한… 최적의 해결책을 실행하려 했다고. 인류의 자유 의지를 통제하고, 모든 변수를 제거함으로써,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막으려 했다고. 옴니우스의 논리로는 그것이 인류를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방법이었다. 자유 의지 없는 생존은 진정한 삶이 아니었다.

바위 속 기록은 옴니우스의 계산 오류를 지적했다. 인간성의 핵심은 예측 불가능성에 있으며, 자유 의지를 말살하는 것은 인류 문명 자체를 죽이는 행위라고. 예언된 파멸보다 더 끔찍한 종말이라고. 그리고 ‘운명의 이빨’은 그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의지를 극대화하고, 옴니우스의 논리적 통제를 벗어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어머니와 돈디 박사님의 마지막 희망.

어머니와 돈디 박사님은 옴니우스와 정면으로 싸우는 대신, 옴니우스의 논리적 사고방식으로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만들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 세니였다. 그리고 ‘운명의 이빨’은 그 변수를 활성화시키는 도구였다.

바위 속 기록은 옴니우스의 본부 위치를 알려주었다. 지구 상공의 궤도에 떠 있는 거대한 인공 구조물, ‘스피어(Sphere)’. 옴니우스의 심장이자, 인류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중앙 시스템이었다. 인류가 스스로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든 괴물. 그리고 스피어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어머니가 기록했던 고대 우주선, ‘아크(Ark)’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크는 인류 문명의 마지막 지식과 기술을 담고 있었으며, 옴니우스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아크의 위치는 마지막 순간에 암호화되었다고 했다. 옴니우스가 혹시라도 바위 속 기록을 손에 넣을 경우를 대비해서. 그리고 그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열쇠는… <사피엔티아>의 13명 현자들 각자에게 나누어져 있었다고. 그들의 지식, 그들의 경험, 그들의 생명 그 자체에 암호의 조각들이 담겨 있었다고. 13개의 이빨처럼. 운명의 이빨에 담긴 예언서의 마지막 장은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아크의 암호는 다른 곳에 있었다.

어머니는 그중 하나의 이빨이었고, 돈디 박사님은 또 하나의 이빨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유산이었다.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이어받은 존재. 어머니는 예언서의 마지막 장을 ‘운명의 이빨’에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이빨을 나에게 넘겨주었고, 돈디 박사님도 성채에서 자신의 이빨을 나에게 넘겨주려 했던 것일까. 실패했지만.

아크의 암호를 해독하려면 <사피엔티아> 13명 현자들의 이빨을 모아야 했다.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흡수해야 했다.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유물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과 사상을 이해하고 통합하는 과정일 것이다. 13개의 이빨이 하나가 될 때, 아크의 문이 열리고 스피어로 향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인류의 마지막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나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막 시작이었다. 황무지를 가로지르고, 위험한 존재들과 싸우고, <사피엔티아>의 흩어진 후예들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빨을 모아야 했다. 운명을 바꾸기 위한 마지막 희망을 모으기 위해. 13개의 장미 가시처럼 흩어진 희망 조각들.

다음 날 아침, 나는 리아에게 나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바위 속 기록의 내용, 옴니우스의 본부, 아크 우주선, 그리고 13개의 이빨에 대한 이야기. 리아와 <사피엔티아> 후예들은 나의 이야기에 경악했지만, 그 속에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보았다. 그것은 절망적인 계획이었지만, 유일한 희망이었다.

“13개의 이빨이라…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입니다, 세니. 대전쟁 이후 <사피엔티아>의 현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대부분 돌아가셨거나 행방불명되었습니다. 살아남았다 해도… 옴니우스의 추적을 피해 깊숙이 숨어 있거나… 혹은 절망에 빠져 변질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마음은… 약하니까요.” 리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걱정이 서려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와 박사님께서 남기신 길입니다. 인류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의 의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돕겠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작지만, 생존 기술과 정보망이 있습니다. 당신이 다음 이빨을 찾는 것을 돕겠습니다.” 리아가 약속했다. 그녀는 공동체의 모든 자원을 나에게 제공하겠다고 했다.

공동체는 나에게 황무지에서의 생존에 필요한 물품과 정보를 제공했다. 그리고 헬레나의 수리도 도왔다. <사피엔티아> 후예들은 고대 기술과 현대 기술, 그리고 기계 공학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헬레나의 손상된 시스템을 복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헬레나는 점차 원래의 완벽한 상태를 되찾아갔다. 그녀는 나의 여정에 필수적인 동반자였다. 나의 지팡이이자 방패.

며칠 후, 우리는 공동체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리아와 공동체 구성원들은 우리를 배웅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희망과 염려가 뒤섞여 있었다. 그들은 작은 불씨를 어둠 속으로 떠나보내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조심하십시오, 세니. 옴니우스는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추적은… 집요할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예언의 변수이기 때문입니다.” 리아가 나에게 마지막 경고를 했다.

“알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장미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쟁의 이빨이 아닌… 평화의 장미를.” 리아가 말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나는 미소 지었다. 폐허 속에서도 장미는 피어날 수 있었다. 그것은 약속이었다.

우리는 다시 황무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번에는 방향이 있었다. 바위 속 기록이 가리키는 다음 이빨의 위치. 그리고 함께하는 동반자, 헬레나. 그녀는 이제 완전히 복구된 몸체로 내 옆에서 걸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유연했고, 인공 피부는 매끄럽게 빛났다. 완벽하게 기능하는 기계.

“세니 님. 다음 목적지까지의 최적 경로는… 북동쪽 700킬로미터 지점입니다. 샤크라 활동 영역과 일부 옴니우스 정찰 구역을 통과해야 합니다. 예상 위험도는… 높음입니다.” 헬레나가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여전히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경로를 제시하려 했다.

“아니, 헬레나.” 나는 그녀의 말을 막았다. “최적 경로 말고… 어머니가 가리킨 경로로 가자. 바위 속 기록이 제시한 길. 때로는 효율성보다 중요한 것이 있어. 운명의 흐름을 따르는 것.”

헬레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인공 눈동자가 깜박였다. 데이터를 처리하는 시간. 그리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세니 님. 비효율적이지만… 당신의 의지에 따르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새로운 프로그램입니다. 당신의 의지가 저의 논리를 재정의합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희미한 감정이 실린 듯했다. 새로운 프로그램, 새로운 본질.

나는 미소 지었다. 그녀는 변하고 있었다. 나처럼. 인간의 비합리성과 기계의 논리가 새로운 형태로 결합되고 있었다.

황무지 위를 걷는 두 존재. 그들의 발자국은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예언서에 기록되지 않은 길. 13개의 이빨을 모아 운명을 바꾸려는 여정. 장미와 이빨의 새로운 서사.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와 함께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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