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5월 18일, 파리, 마제스틱 호텔
소음은 하나의 액체였다. 제임스 조이스는 샴페인 잔을 든 채, 자신을 둘러싼 소음의 강물에 잠겨 있었다. 강물은 끈적거렸고, 수많은 언어의 편린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프랑스어의 날카로운 악센트가 영국 상류층의 뭉개진 모음과 부딪혔고, 러시아 망명객의 격정적인 탄식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이름을 연호하는 찬사와 뒤섞였다. 조이스의 귀는 이 모든 소리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정교한 기계였다. 그는 단어의 살과 뼈를 발라내고, 그 안에 숨은 음절의 내장을 끄집어내어 맛보는 미식가였다.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n Old Dog,"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의 꼴이 그랬다. 실비아 비치가 맞춰준 새 정장은 몸에 맞지 않는 갑옷처럼 뻣뻣했고, 두꺼운 렌즈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뿌연 수채화처럼 번져 보였다. 왼쪽 눈의 통증이 욱신거리며 맥박처럼 뛰었다. 이리테스(홍채염). 의사는 그에게 휴식과 어둠을 처방했지만, 시드니 쉬프가 주최한 이 파티는 휴식과 어둠의 정반대편에 있는 현란한 지옥이었다. 스트라빈스키와 디아길레프를 위한 축연.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허영과 야망의 거대한 용광로.
조이스는 또 한 모금의 샴페인을 넘겼다. 싸구려 포도주가 아니라는 사실에 잠시 안도했다. 그의 주머니는 여전히 가벼웠고, 『율리시스』의 악명은 돈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흘깃거렸다. 저기, 외설과 신성모독으로 파리를 발칵 뒤집어 놓은 아일랜드인. 저기, 단 하루의 시간 속에 인류의 모든 역사를 구겨 넣으려 한 미치광이. 조이스는 그들의 시선을 즐겼다. 그것은 일종의 갑옷이었고, 그의 내면에 도사린 불안과 싸울 유일한 무기였다.
"제임스!"
쉬프가 그의 어깨를 쳤다. 그의 얼굴은 주최자의 흥분과 불안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드디어 그분이 오셨네. 자네에게 꼭 소개하고 싶었던 분이야."
조이스는 흥미 없다는 듯 눈썹을 까딱였다. 이 파티에서 그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그는 관찰자였고, 이 모든 소란은 그의 다음 문장을 위한 재료일 뿐이었다. 하지만 쉬프의 눈빛은 집요했다.
"마르셀 프루스트 말일세."
프루스트. 그 이름은 파리의 살롱에서 일종의 신화였다. 코르크로 사방을 틀어막은 방 안에서 과거의 유령들을 불러내어 문장으로 박제하는 은둔자.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공쿠르상을 거머쥔, 병약한 천재. 조이스는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 없었다. 다만 풍문으로 들었을 뿐이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문장, 홍차에 적신 과자 하나로 유년의 모든 것을 되살려내는 섬세함. 조이스는 코웃음을 쳤다. 귀족적인 감상주의.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으려는 부질없는 시도.
조이스에게 시간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시간은 강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블린의 어느 하루, 레오폴드 블룸의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소음의 바다였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여 신화와 역사가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는 순간의 영원. 그는 시간을 되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시간을 해체하고, 그 조각들로 새로운 우주를 건설하고 있었다.
"찻잔 속의 폭풍우 양반이군." 조이스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쉬프는 그의 빈정거림을 못 들은 척하며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조이스는 마지못해 그를 따랐다. 군중이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는 곳, 그 중심에 프루스트가 서 있었다.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마제스틱 호텔의 연회장은 거대한 고문실이었다. 그의 폐는 담배 연기와 강한 향수 냄새에 질식할 것 같았고, 사람들의 목소리와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는 그의 예민한 신경을 날카로운 바늘로 찌르는 듯했다. 그는 여러 겹의 모피 코트로 몸을 감쌌지만,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는 막을 수 없었다. 그것은 외부의 온도가 아니라, 그의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며 내는 내부의 냉기였다.
그는 왜 이곳에 왔는가. 그의 주치의는 외출을 극구 말렸다. 그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남은 모든 순간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문장을 위해 바쳐져야 했다. 하지만 쉬프의 간청은 끈질겼고, 프루스트의 내면에는 꺼지지 않는 호기심의 불씨가 남아 있었다.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세상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작가였다. 그의 방은 관측소였고, 가끔은 이렇게 표본을 수집하기 위해 위험한 탐험에 나서야 했다.
그리고 오늘 밤의 가장 중요한 표본, 제임스 조이스.
프루스트는 그 아일랜드 작가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언어의 무정부주의자. 전통적인 소설의 형식을 파괴하고, 인간의 의식을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종이 위에 쏟아붓는 야만인. 프루스트는 최근 그의 책 『율리시스』를 구해 몇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그것은 마치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깨부숴 그 조각들로 시궁창의 풍경을 그린 모자이크 같았다. 혼란스러웠고, 불경스러웠으며,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프루스트는 시간을 거대한 건축물로 여겼다. 그의 문장은 기억의 돌들을 하나하나 깎고 다듬어, 과거의 대성당을 재건하는 정교한 작업이었다. 모든 문장은 다른 문장을 떠받치고, 모든 세부 묘사는 전체 구조의 일부로서 제자리에 놓여야 했다. 그의 시간은 '되찾아야 할' 질서정연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조이스의 시간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폐허 그 자체처럼 보였다. 그 폐허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장인이었다. 프루스트가 시간을 세공하는 보석세공사라면, 조이스는 시간을 폭파하는 폭탄 전문가였다.
"선생님, 이쪽으로." 쉬프가 프루스트를 이끌었다.
프루스트는 창백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군중 속에서 한 남자를 찾아냈다. 두꺼운 안경, 뻣뻣하게 선 콧수염, 값싸 보이는 정장. 술기운으로 얼굴이 붉었지만, 그 눈빛은 놀라울 정도로 차갑고 분석적이었다. 프루스트는 직감했다. 저 남자 역시 이곳에 표본을 수집하러 온 것이다.
마침내, 20세기 문학의 두 극점(極點)이 마주 섰다.
주변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멀어졌다. 두 작가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진공의 막이 형성된 듯했다. 쉬프를 비롯한 몇몇 지인들이 기대에 찬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역사가 이루어지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는 흥분이 공기 중에 감돌았다. 의식의 흐름과 무의식적 기억의 만남. 모더니즘의 두 갈래 거대한 물줄기가 합류하는 지점. 어떤 심오한 대화가 오고 갈 것인가. 예술의 본질, 시간의 신비, 언어의 한계에 대한 격렬한 토론이 벌어질 것인가.
조이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위스키에 절어 있었지만, 발음은 놀랍도록 명료했다.
"매일 두통이 옵니다. 눈이 끔찍해요."
("I have headaches every day. My eyes are terrible.")
침묵이 흘렀다. 기대에 차 있던 주변인들의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이것이 첫마디란 말인가. 『율리시스』의 작가가 던진 첫 문장이, 지극히 평범하고 신체적인 고통의 호소라니.
프루스트의 내면에서 수천 개의 문장이 소용돌이쳤다. 그는 조이스의 말을 분석했다. '눈'. 시각의 기관. 세상을 관찰하고 인식하는 도구.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무기. 그 무기가 손상되었다는 고백. 이것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자신의 예술적 조건에 대한 은유적 발언인가? 아니면, 정말로 아픈 것인가? 프루스트는 상대의 말 한마디에서 수십 개의 의미 층위를 발견하고, 그것들을 사회적 맥락과 개인의 심리 상태와 연결 짓는 데 평생을 바친 사람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조이스의 '눈'에 대한 짧은 에세이가 쓰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복잡한 사유의 흔적을 전혀 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모피 코트를 여미며 나직이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냘팠다.
"저의 불쌍한 위장. 저는 어떡하죠? 정말 죽을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 당장 떠나야 해요."
("My poor stomach. What am I to do? I’m dying. In fact, I must leave at once.")
이제 침묵은 당혹감으로 변했다. 두 번째 문장 역시, 신체 기관에 대한 비명이었다. '위장'. 소화와 흡수의 기관. 세상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 그것이 망가졌다는 선언. 프루스트는 세상의 경험을 소화하여 예술로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창작 과정의 고통에 대한 상징인가?
조이스는 프루스트의 창백한 얼굴과 유령 같은 모습을 뜯어보았다. 저 남자는 살아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만든 과거의 대성당에 유폐된 채 서서히 바스러져 가는 미라 같았다. 그의 고통은 진짜처럼 보였다. 조이스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 순간 그의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연민이 아니라 지독한 아이러니였다. 위대한 두 정신이 마주 서서, 고장 난 육체의 부품에 대해 불평하고 있다. 마치 두 명의 정비공이 서로의 고물 자동차를 보며 한탄하는 것 같았다.
그는 조소에 가까운 공감을 표했다.
"나도 같은 처지요. 만약 내 팔을 잡아줄 사람만 찾는다면. 잘 가시오!"
("I’m in the same boat. If I can find someone to take my arm. Good-bye!")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프루스트가 거의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아이고, 내 배야, 내 배."
("Charmed to meet you," said Proust. "Oh, my stomach, my stomach.")
그것이 전부였다.
역사적인 만남은 그렇게, 맥없이, 희극적으로 끝났다. 주변을 둘러쌌던 사람들은 어색하게 흩어졌다. 쉬프의 얼굴은 실망감으로 잿빛이 되었다. 마치 거대한 산이 폭발하리라 기대했는데, 조용한 방귀 소리만 들린 것과 같은 허탈함이었다.
조이스는 몸을 돌려 바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단어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Stomach. Tom achè. Ache. Greek. Algos. Nostalgia. The ache for home. 집으로 돌아가고픈 통증. 저 유령 같은 프랑스인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고,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 더블린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결국 모든 예술은 향수병(nostalgia)의 다른 이름일 뿐인가. 그는 위스키를 단숨에 털어 넣었다. 불타는 듯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그의 끔찍한 눈과 프루스트의 불쌍한 위장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프루스트는 하인의 부축을 받으며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차가운 밤공기가 그의 폐를 찔렀다. 그는 기침을 참으며 마차에 올랐다. 그의 머릿속은 방금 전의 실패한 대화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왜 서로의 작품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왜 그들의 대화는 썩어가는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지 못했을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대화였을지도 모른다.
프루스트는 깨달았다. 그와 조이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과 싸우고 있었다. 시간은 기억을 풍화시키고, 육체를 부패시킨다. 프루스트는 기억을 복원함으로써 시간의 파괴에 저항하려 했고, 조이스는 언어의 영원성 속에 순간을 포획함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술적 투쟁의 이면에는, 늙고 병들어가는, 고통받는 하나의 육체가 있었다. 눈이 멀어가는 관찰자와, 소화하지 못하는 미식가. 그들의 예술은 결국 그 육체의 고통 위에서 피어나는 기이하고 필사적인 꽃이었다.
그들은 소음 가득한 연회장에서 서로의 본질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위대한 정신이 아니라, 고통받는 동물로서의 서로를.
그래서 그들의 대화는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완벽하게 성공했기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마차는 오스망 대로를 달려 그의 집으로 향했다. 프루스트는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파리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문장이 조립되기 시작했다. 길고, 복잡하며, 방금 전의 그 짧고 우스꽝스러운 만남의 모든 층위를 해부하는 문장이었다.
그날 밤, 제임스 조이스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더블린의 리피 강변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강물은 흐르지 않고, 끈적한 홍차처럼 고여 있었다. 강물 위에는 수천수만 개의 단어들이 마들렌 과자처럼 떠다녔다. 그가 손을 뻗어 한 단어를 건져 올리자, 그것은 그의 손안에서 바스러지며 오래된 먼지 냄새를 풍겼다. 그의 눈은 통증 없이 맑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는 강 건너편을 보았다. 그곳에는 코르크로 만들어진 기이한 등대가 서 있었고, 그 꼭대기에서 창백한 등대지기가 희미한 빛을 발하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같은 시각, 마르셀 프루스트는 자신의 방, 세상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고요의 성역에서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무릎 위에 놓인 노트에 펜을 놀리고 있었다. 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부분을 수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자꾸만 그 아일랜드인에게로 향했다. 그 거칠고, 생명력 넘치며, 파괴적인 예술가.
그들의 만남은 이대로 끝나서는 안 되었다.
소음 속에서는 진정한 대화가 불가능했다. 육체는 정신의 대화를 방해하는 시끄러운 악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여기, 이 침묵의 공간에서는 달랐다. 여기서는 잉크와 종이만이 존재했다. 오해의 여지가 없는, 가장 순수하고 정제된 형태의 대화.
프루스트는 쓰던 노트를 옆으로 밀어놓고, 새로운 종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만년필에 잉크를 채웠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그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고, 이 편지는 그의 대작을 완성하는 데 쓰일 시간을 좀먹는 행위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써야만 했다. 어긋나 버린 시간의 조각을 제대로 맞춰보고 싶었다. 그 폭탄 전문가의 설계도를, 그가 시간을 폭파하여 무엇을 건설하려 하는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는 펜을 들어, 조심스럽게 첫 문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조이스 씨에게,"
마제스틱 호텔의 소음은 멎었고, 유령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두 개의 다른 시간 속에서, 두 개의 다른 세계를 탐험하던 두 개의 펜이, 침묵 속에서 비로소 진짜 대화를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