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켜던 빈집에서 나는 보았지 사방으로 황급히 숨어드는 쓸쓸한 기척들
마침 몸살이 오고 신열이 끓고 또 곁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가 잠시 허무한 것처럼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만나는 늙고 낯선 얼굴 때문에 말문이 막히는 오후
나무들은 떠나간 애인처럼 저마다 가지를 털고 계절을 봉인하기 시작했다
내가 물었다 구멍 난 마음을 언제까지 꿰매고 살아야 하는지 그러자 귀신같은 계절이 다시 물었다 가슴팍 생살에 손끝이 가 닿을 때 왜 비밀처럼 비유처럼 숨어 살았느냐고
어느 불한당의 행패였을까 명치끝에 남겨진 선명한 아픔은
산다는 건 지극히 우발적인 슬픔과도 기거하는 것, 우울한 가설이 하도 장하고 매워서 벌써부터 때 이른 첫눈이 간절해졌다 11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