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어떤 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모 Oct 30. 2024

길 위에서 길을 잃다



길 위에서 길을 잃었지

외로운 사람들은 저마다 속절없이

잔뜩 처량해질 때가 있지 

옆집 노파의 이 빠진 하소연과

온종일 늘어진 젊은 여자의 풀죽은 어깨가

퇴근길 웃지 못하는 어떤 집 아빠의

끈 풀린 낡은 구두가, 가여워서

희망은 숨도 못 쉬는 것이 거북해서

목젖으로 가르륵 소리가 나는데

창백한 신발 한 번 벗겨주지도 못하고

시나 쓴다는 게 부끄러웠지    

 

세상의 이데올로기는

사랑을 잃은 자들의 변명이란 걸

노점상을 하는 어머니에겐

철 지난 유행가만치도 못하다는 걸

길가에 차이는 잔돌 하나도 다 알지

길은 길고 공평한데 나는

이 지경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지

길 위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모두

몇 제곱미터 절망의 넝쿨 속 어딘가를

한 번쯤 시름시름 골골

앓아가며 알아간다는 것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