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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 Feb 04. 2020

9. 강변 캠핑장 만찬

#9 - 고치시 도사지호텔~ 니요도 강  캠핑장(

새벽까지 비가 잦아들지 않았다. 이왕 이리된 것 느긋하게 떠나기로 했다. 텔레비전 일기예보에서 고치시 일원은 오후 3시 이후에 날이 개인다고 했다. 아침 7시, 호텔 2층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주먹밥과 된장국, 계란말이, 소시지, 김.  다른 쪽에는 빵과 버터와 딸기잼. 그리고 커피와 오차. 고만고만한 호텔들의 한결같은 조식 메뉴다. 어제 휴식소에서 비를 피할 때 만났던 와카야마 할아버지와 순례 22일째 다리를 절며 걷던 이도 모두 식당에서 만났다.


오전 10시쯤 비를 맞으며 호텔을 나섰다. 갈비뼈에 금이 갔는지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랙 팩을 결속한 고무줄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뒷바퀴 축에 휘감겼다. 길가에서 고스란히 비를 맞으며 단단히 꼬여들어간 떼어내느라 애를 먹었다. 일주일 넘게 자건거 브레이크를 쥐고 달린 탓인지 손아귀 근육이 곱아져 힘이 들어가지 않아 힘겨웠다. 일시적이지만 일종의 장애상태였다. 게다가 어찌 된 일인 방향을 착각해 1km가량 반대쪽으로  달리다 되돌아와야 했다. 시행착오와 난관의 연속이었다.

 

시 외곽에 유니클로와 대형 할인점 마루나가, 다이소 등 쇼핑몰이 도열 해 있었다. 대개 다른 마을들도 비슷했다. 방금 '해먹은' 결속용  고무줄도 살 겸 다이소에 들러보았다. 식품은 여러 대형 쇼핑몰들이 혼전을 벌이고 있고, 길목마다  편의점이 상권을 장악하고 소매점들은 거의 다 소멸한 것 같았다. 마을마다 있는 다이소는 값싼 생활용품과 간단한 식음료까지 안 파는 게 없다. 순례 초반에 12번 쇼산지 가는 길 산골 가게에서 선블록을 600엔 주고 샀는데 이보다 용량도  더 큰 것이 단 돈 100엔이다. 중국제인가 봤더니 메이드 인 코리아였다.


어제 헤매던 31번 사찰 치꾸린지(竹林寺) 진입로를 다시 찾았다. 지도의 세밀한 부분까지 내려받지 않아 등고선 표시가 없는 게 문제였던 것 같다. 설마 언덕 위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길가에 순찰차에 서 있길래 다가가 물어보았다. 골목길 끝 산 위로 올라가는 들머리를 가르쳐주었다.

치쿠린지(竹林寺)가 있는 산 이름이 고다이산(五臺山)이다. 서기 724년 쇼무 천황이 이 산이 중국의 오대산을 닮았다며  스스로 문수보살을 새겨 절을 건립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월정사가 있는 오대산을 떠올렸다. 치쿠린지 입구에는 식물원도 있고, 잘 꾸민 정원도 예사롭지 않았다.  17세기 이후 이 절은 이 지역의 신앙과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특히 '학문의 절'로 유명해 시험 합격을 기원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고찰 31번 치쿠린지

가늘게 흩뿌리는 빗속에 천천히 참배를 했다. 


자판기에서 비타음료 (150엔)를 사 마시고 정오 무렵 다시 출발했다. 32번 젠지부지(禅師峰寺)는 31번 주쿠린지로부터 6.8 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바닷가에 있는 절이라고 방심하고 달리다가 또다시 업힐 구간을 만나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절 입구에 대단히 큰 공동묘지가 있었다. 철쭉 비슷한 붉은 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우리나라에도 흔한 회양목에 붉은 꽃이 피어 있었다. 원래는 꽃을 피우는 관목인데 추운 우리나라에 와서는 꽃 피우기를 거부해온 것일까?


절로 향한 가파른 계단에 허리가 굽어 얼굴이 거의 땅에 닿을 듯한 꼬부랑 할머니가 한 발 한 발 필사적으로 오르고 있었다. 숙연한 광경이었다. 설악산 봉정암에 오르다 보면 그런 노파들을 가끔 만날 수 있다. 잿빛 옷을 입고 기듯이 산을 오르면서 연신 무엇인가 간절히 희구하던 그분들의 표정. 대개 자식들의 안녕을 간절하게 기원하는 것이리라. 내가 운전하는 차에 타면 어머니는 '나무 관세음보살' 하고 늘 나지막하게 기도부터 하셨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웠다.  

젠지 부지(禅師峰寺)는 일망무제로 뻗은 태평양을 내려다볼 수 있는 미네 야마(峰山)에 있어 미네지峰寺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코보 대사가 807년에 방문해 11면 관음보살상을 새겼다는 전설이 있다. 해상안전을 기원하는 절이고 1291년에 만든 금강역사상은 일본 국보라고 한다.  

참배를 마치고 오후 1시 반 계단을 내려와 절 주차장에 있는 휴식소에서 어제 산 빵과 주쿠린지에서 마시다 남겨온 비타음료를 먹으며 잠시 쉬었다. 계단을 기듯 올라가던 할머니를 태우고 온 택시 기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전부 자전거로 도느냐며 대단하다고. 일 주 전 23번 야쿠오지에서 어떤 예쁜 여자가 당신처럼 자전거를 타고 순례를 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했다. 호오 그래요?  여자도 자전거 순례를 하는구나. 과연 내가 겪은 고난에 찬 과정을 여자 순례자는 어떻게 감당하며 지났을까 싶었다.


정말 쓰유(梅雨)가 시작된  것인지, 계속 비가 내리다 그치다 했다.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30미터 이상 고공에 떠있는 편도 1차선 다리를 건너야 했다. 우라도대교(浦戶大橋).  멋모르고 도로를 따라 올라갔는데 어느샌가 바다를 건너고 있다. 조금 무서웠다 까마득한 바다 위를 달리는 것도, 뒤에서 굉음을 내며 다가와 스치듯이 지나쳐가는 화물차들도. 그래도 빨리 다리를 건너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난간에 철망이 쳐있어 심리적으로 조금 안정이 되었다. 다리를 건너며 내리막길로 해안길에 내려선 후 바다를 끼고 3~4km가량 달린 뒤 33번 셋케이지(雪蹊寺)까지는  10.2 km. 나중에 안 것이지만, 굳이 무시무시한 다리를 넘지 않고 우측으로 조금만 더 가면 무료로 운행하는 도선장이 있었다. 배에 실려 직진할 수 있는 길을 굳이 고공에 매달리 다리를 건너 우회한 것이다.

셋케이지는 다행히 평지에 있었다. 날이 개고 잠시 해가 났다. 16세기 후반, 이 절에서 수행하던 겟포우오쇼(月峰和尙)의 귀에 귀신이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운율에 맞춰 짓는 일본 전통의 와가(和歌) 후반부 구절만 되풀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겟포우화상은 이 귀신이 시를 짓는 게 서툴러 한탄하느라 성불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 뒷 구절의 댓 구가 될 앞 부분을 지어주었다. 드디어 울음소리가 그치고 귀신도 사라졌다는 전설. 뭐 그런 일로 울고불고하는 심약한 귀신이 다 있단 말인가. 좋은 시는 천부의 재능이 가져다주는 것인가? 체력단련하듯이, 저축하듯이 성실한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인가.   


참배를 바치고 내려오니 오후 3시가 넘었다. 또 마음이 바빠졌다. 절 입구 무인판매대에서 귤 한 봉지를 200엔 주고 샀다. 시코쿠 귤은 껍질이 두껍고 씨가 있어 골라내야 하지만 달고 시원해서 청량음료보다 좋았다. 세케이지에서 해안도로 쪽으로 나오다 보면 34번 사찰 타네마지(種間寺)까지 이정표가 있었다. 자동차로 3.6km.


타네마지(種間寺)도 평지 길가에 있었다. 코보 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며 쌀, 보리, 좁쌀, 수수, 콩 등 5곡의 종자를 가져와 이 절에 뿌려서 채종 했다는 전설이 있다. 절의 이름도 타네마지(種間寺).  577년에 이 절을 지을 때는 백제에서 화가 목수 등 장인들이 와서 도와주었다고 한다. 절을 다 짓고 이들이 백제로 돌아가려고 할 때 풍랑이 일었는데 절에서 제를 지낸 뒤에 바다가 잠잠해져 무사히 돌아갔다고 한다.


다음 절 35번 기오타케지(清瀧寺) 까지는 GPS가 가리키는 방향과 교통 표지판, 핸로미찌 스티커가 가리키는 방향이 전혀 달랐다. 일단 도로표지판과 GPS를 보면서 달렸다. 고즈넉한 동네였다. 오가는 차도 없고 비에 젖은 5월의 신록이 뿜어내는 숲의 기운이 몸과 마음을 씻어주는 것 같았다. 하천이 마을을 관통하는 동네를 지나 56번 국도를 한참 달린 뒤 니요도가와 仁淀川) 강변에서 토사시(土佐市)의 제법 번화한 시가지를 통과했다.

갈림길에 휴식소가 있어 잠시 쉬면서 아침 싸놓은 주먹밥을 먹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자전거로 순례하냐? 대단하다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더니 35번 기오타케지(清瀧寺)는 저쪽으로 가는데 알고 있냐며 살짝 지나친 갈림길에서 뒤쪽으로 뻗은 길을 가리킨다. 네에? 자세히 보니 교차로 가로등에 핸로미찌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서둘러 짐을 꾸려 떠나려고 보니 아까 그 아주머니가 길 건너편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내 말 이해했어요? 괜찮겠어요? " 큰 소리로 묻는다. "네. 감사합니다." 참 친절하고 사려 깊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정이 많고 친절하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지는 않는데 싶었다.


35번 기오타케지(清瀧寺) 역시 언덕 위에 있었다. 고속도로 교각 아래를 통과한 뒤 산 위로 올라야 한다. 산길 입구에 어둡고 음산한 묘지가 있었다. 땀 깨나 쏟으며 경사면을 한참 오른 뒤 기오타케지까지 500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고는 맥이 풀렸다. 마지막 100 미터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 올라갔다. 고치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코보 대사가 금강장으로 대지를 찌르니 푸른 폭포가 생겼다는 전설에서 청룡이라는 절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참배하고 하산하다 보니 오후 5시 시보가 울려 퍼졌다. 이 동네에서는 '안개 낀 밤의 데이트' 차임벨 연주다. 애수(哀愁)라고 적고 싶은 그런 쓸쓸한 감정이 밀려왔다. 동네마다 매 시각 시보를 울리는 건 같은데, 어떤 곳은 사이렌을 어떤 곳은 학교에서나 쓰는 딩동댕동 실로폰 연주, 또 이렇게 귀에 익은 경음악들을 트는 곳도 있다. 감상적인 기분에 휩싸여 언덕을 내려온 뒤 자전거에 올라탔다.

  

니요도가와(仁淀川) 강변 캠프장까지는 직선거리로 4km 떨어져 있다고 GPS가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리 돌아가도 7km는 넘지 않겠지. 30분 정도면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중에 편의점 스리에프에 들러 쌀을 사려고 했으나 2kg 들이만 있어 포기했다. 한 끼에 200g 남짓 먹을 텐데 내내 무게를 달고 다닐 게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대신 사찰 주변 숙박업소와 식당 등을 안내한 가이드북, 우유 1리터, 주스, 식빵 등을 샀다. 퇴근 시간인지 차량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다시 빗발이 굵어졌다. 가다(加田) 캠프장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가 다 돼서였다.  강변으로 내려가기 전 둔덕 위에 있는 화장실과 강변에 수도꼭지 대여섯 개 달린 급수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강변에서 플라이낚시를 하는 이들이 세워둔 서너 대의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텐트도 한 동 세워져 있었다. 

텐트를 세우고 있는데 작은 트럭이 다가왔다. 순박한 표정의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여기서 캠핑할 거냐?" "네 캠핑해도 되나요? "  "됩니다. 바닥에 물이 있으니 텐트를 뒤쪽으로 옮겨요." 조언을 하고는 차를 몰고 떠났던 그가 잠시 뒤 다시 돌아왔다."술 마시냐?" 이 질문의 요지가 무엇인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캠핑장에서  술 마시면 안 된다는 말인지 파악이 안 돼 "조금..." 이렇게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는 이 동네 토산품이라며 사케 한 팩을 주며 "푹 자라"며 두 손을 포개 얼굴 옆에 대며 자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귀엽다. 그리고 충분히 합법적인 야영을 하게 됐다 싶으니 긴장도 풀리고 마음이 푸근해졌다. 가끔 왜가리 같은 물새들이 느릿느릿 날아다니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저녁 풍경. 이제 부러울 게 없는 밤을 보내면 된다. 다만, 쌀이 떨어진 게 허전했다. 첫날 다카마쓰  A마트에서 산 1Kg을 다 먹은 것이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어 지는 법이니라" 어머니가 내게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늘 사는 게 아슬아슬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더 막막해졌다. 1985년에 셋째 형을 그나마 몇 백만 원짜리 전세방을 구해 장가보낸 뒤 서울에 남은 어머니와 나는 갈 곳이 막연했다. 막막한 심정으로 단칸방을 구하러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기 이전의 방학동, 의정부 등으로 버스를 타고 많이 돌아다녔다. 그때 내가 방을 구하면 뭐도 필요하고 뭐도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을 하니까 그 말씀을 하셨다.  

텐트를 다 설치하고 나서  짐을 정리하고 난 뒤 빈 자전거를 타고 이웃 동네에 가보았다.  다행히 골목 안에 작은 가게가 있었다. 초로의  아주머니께 쌀이 있는가 물었더니  5kg들이 밖에 없다며 얼마나 원하냐고 했다.  1kg이면 좋겠다고 하니까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가게 안 채에 있는  남편과 상의했다. 도시에서 만나던 어딘지 소심해 보이던 남자들과 달리 가장의 권위가 여전히 등등해 보이는 아저씨가 아뭇소리 없이 5kg 쌀 포대를 들고 나와 저울에다 1kg이 훌쩍 넘게 달아서 비닐봉지에 담아주었다. 껍질째 먹는 줄콩과 바나나 한 송이, 정어리 통조림까지 먹을 것을 조금 더 샀다. 주판을 꺼내더니 계산을 하더니 1500엔인데. 1000엔만 받겠다 한다. 또 잠시 실랑이를 했다. 그럴 수 없다고 1500엔을 내겠다고  한사코 500엔은 오셋타이(お接待)라고 하신다. 코끝이 찡하다. 그뿐 아니라 자전거에 매달고 떠나려는 나를 따라 나오더니  단팥빵 하나를 쥐어주고는 내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한다. 감동이다.

키미산 어린이 숲 (月見山 こどもの森)에서 구워 먹으려다가 갑자기 탈출하는 바람에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닌 돼지고기 200g.  호텔에서 끓는 물에 데쳐서 후추를 뿌려 꽁꽁 싸매고 왔는데  다행히 상한 것 같지는 않아 토스터에 구웠다. 정어리 통조림과 남은 김치, 가게에서 사 가지고 줄콩을  넣고 찌개를 끓였다. 관리인 아저씨가 준 사케까지. 게다가 캠핑장은 무료였다. 다만 샤워시설이나 충전을 할 수 있는 콘센트는 찾지 못 해 밤 10시가 넘어서 급수대 옆 가로등을 끄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코펠에 물을 받아 샤워를 했다. 일본에 와서 노천에서 너무 자주 벗는다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캠핑장을 전세 낸 날이었다.


#9 고치시  도사지 호텔~ 니요도 강 (仁淀川가다 캠핑장(加田キャンプ場)

운행 거리 62.5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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