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는 외롭고, 이 세상을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내 속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미쳤고, 정신분열증 환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미친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며, 어리석은 일에 빠지기보다는 이 사실과 관련된 무언가를 하려 한다.
나는, 상처를 받으면서 그 상처를 이겨 내는 동안에도 글을 쓴다. 그 상처가 나를 강하게 만들고 집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때 돌아가는 집이, 내가 영원히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진짜 집이 될 것이다.
위의 문장들은, 나의 문장이 아니다. 평생을 선(禪) 명상과 글쓰기를 병행한, 아름답고 강한 영혼을 가진 한 미국 작가의 고백이다.
그리고 그녀의 문장들을 가져온 이유는,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와 그녀의 이유가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외로웠고, 여전히 외로우며, 나는 미쳤었고, 나는 분열증과 신경증을 앓았었고,
그 사실로부터 한시도 빠져나갈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너무 많은 어리석은 시간들을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그 모든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던 건 글을 쓰는 것이었고, 그 상처들이 글로 태어난 후에야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며, 그 집에서만 나는, 진짜 휴식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 큰 형상으로 되살아나 나를 삼켰던 그 겨울의 상처 앞에서도 나는 결국, 글을 썼었다.
더 이상은 그것에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것을 끝장내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나를 씀으로써 나는, 내 안에서 솟아날 더 큰 생명을 얻고자 하였었다. 그 힘으로 그것들을 압도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쏟았고, 토해내었고, 그 시간들을 통과하여 내가 잉태한 그것을 나는 지금 바라본다.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는 그것을, 나의 모든 고통과 분열이 탄생한 그 자리를, 그럼에도 세상을 껴안고자 하였던 그 마음을, 내가 손 내밀었던 작은 반짝임들을, 그것들이 비추는 모든 것을.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원래 아무런 꿈이 없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었다. 나는 나를 알고 싶었다. 고통으로 가득 찬 내 마음과 내 곁의 삶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고통을 소멸시키고 싶었다. 그것이 다였다. 그렇게 세상을 여행했다. 많은 곳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그 무엇으로도 나의 아픔은 해소되지 못했다. 오히려 나의 물음들은 매번 거대한 메아리가 되어 나를 쓰러뜨리곤 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다시 '나를 썼다'. 아니, 쓸 수밖에 없었다. 나를 쓰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다시 돌아와 나를 썼을 때, 비로소 나는 오래전 잊고 있었던 환희를 돌려 받았다. 그것은 글을 쓸 때 비로소 나는, 오롯이 나 자신이 된다는 기쁨이었다. 그러한 기쁨, 그러한 충만감이 나를 어루만졌음을 안다. 그것들이 결국 나를, 나의 글을 완성했다는 것을.
한 때는 스스로를 언제나 '시인'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어떤 핵심, 그것들이 나를 통하여 표현되고자 할 때마다 나는 '시인의 언어'로 그것을 말하였었기에. 그렇게 사물을 세상을 바라보았었기에.
하지만 너무 오래 나는 나를 떠나 있었고, 너무 오래 많은 시간을 허비했었다. 너무 오래 나는, 나의 '진짜 두려움'과 대면할 용기를 처박아 놓았었고, 내 본연의 목소리가 내 심장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었다. 그렇게 나는 들판에서 흐느끼는 썩어가는 나뭇잎보다도 더 존재감 없이 황량해져만 갔다.
그렇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그것도 모자라 독을 매번 바꿔치기까지 했다. 아무런 의미도 만들어내지 않기 위하여. 나의 숨소리를 듣지 않기 위하여. 아침에 눈을 떴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위하여. 그것이 나의 이십 대의 시간들이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가장 어두운 골목 위에 황망하게 서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럼에도 내 안에는, 어떤 막연한 소망 같은 것이 늘 있었다. 그것은, 나의 외로운 시간들을 통해서 나는,
사람들을 안아줄 수 있는 어떤 힘을 갖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를 지닌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믿고 자신의 목소리를 사랑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다부진 바람을 품었었다.
이십 대의 끝자락, '치유 글쓰기'라는 글쓰기 모임에서 글을 쓰던 날들, 그때 이미 나는 그들 앞에서,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이미 얘기했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내 안에 막연히 품고 있었던 그 '오래된 소망'이었다.
나를 치유하고, 세상을 치유하고 싶다는 바람.
그렇게 모든 생의 순간들을 소중하게 껴안고 싶다는 바람.
뒤늦게 다시 글을 쓰면서, 나는 나의 그 소망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거창하고 어려운 것을 해냄으로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은 너무도 가까이,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 불러온다. 내 마음의 소리를. 꿈을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젊은이에게 한 선사가 건넨 이 말을. 내가 앞으로 가지고 가야 할 단 하나의 작은 등불을.
"만약 그것이 당신을 쓰러뜨린다면 당신은 일어나야 합니다. 그들이 또다시 당신을 쓰러뜨린다 해도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쓰러지든, 당신은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만이 당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나는 최고의 글을 쓰고 있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낀다"
다시 그녀의 문장. 이 아름다운 문장이 나의 심장을 미어지게 하는 건, 나는 언제나 그 누가 아닌 나 자신에게, 최고의 글을 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최고의 글을 쓰고 있을 때, 나는 가장 고요한 곳에 머물며, 비로소 '나의 집'에 있기 때문이다.
* 모든 그림 : Maxfield Parr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