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렌즈에 담으려고 가만히 다가가면 보이지 않던 미세한 털이 보인다. 저 가는 줄기에 섬세한 털을 보고 있자면 한 송이 꽃을 지켜내기 위한 줄기의 정성이 느껴진다. 모든 생명체에는 자기 보호 능력이 탑재되어 있을 텐데, 유난히 나는 자기 보호보다 자기 객관화를 명분으로 하는 자기 검열, 자아비판의 능력이 뛰어났다.
나 자신에 엄격한 편이라 그런지 늘 그런 시기에 휘말렸고 그때마다 한없이 가라앉았다. 자기 객관화로 인해 얻는 자아 계발, 자아 성취도 있겠지만 어설프게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면 이처럼 숨 막히는 것도 없다. 내 안을 샅샅이 뒤져 단점을 끄집어내는 이가 내 안에 있는 건데 이 내부의 적에겐 내 단점을 숨길 수조차 없다. 내부 카메라로 마음의 소리까지 녹화하고 있으니 나를 감시하는 내 안의 내가 있는 셈이다. 숨 막힐 정도로 조여 온다.
인간관계에서 타인과 갈등을 겪고 나면 나는 나와 2차전을 했다. 때로는 왜 제대로 못 받아쳤냐? 하며 나를 몰아세우고 또 때로는 왜 그리 속이 좁냐며 상대방을 좀 더 배려해 주지 그랬냐며 나 자신을 질책하곤 했다. 상대방에게 1차 공격당한 것보다 내가 나를 공격하는 2차전이 더 지난했고 나를 지치게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나이가 들수록 이런 시기가 짧고 연해진다는 것이다. 요즘엔 그 2차전 없이 상대방과의 1차전으로 종료하고 나를 다독이는 때도 있다. 힘들었지? 안 맞는 사람 대하느라 힘들었겠다. 토닥토닥하며 내가 나를 위로해 주는 때도 제법 있다. 물론 소나기가 온 뒤, 구름이 사라지듯 어느 날 갑자기 내부 감시자가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날이 개며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듯 나를 이해해 주고 토닥여주는 또 다른 내가 서서히 떠올랐다. 이런 시간은 상대방과 갈등으로 피로가 쌓인 나를 자책으로 또 한 번 소모하는 대신 귀한 충전을 해주었다.
내 인생을 돌아볼 때도 그렇다. 내 인생을 작게 보는 사람을 마주하고 나서 평온을 찾는 시간이 빨라졌다. 잠시 출렁이다가도 이내 그렇구나.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며 넘길 수 있다는 점에 뿌듯하다.
중년의 초기를 지나 중기로 넘어설 때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그동안 내가 견디고 버텨왔던 시간들이 문득 떠올랐다. 여기저기 부대끼며 애써온 세월이 스쳐 지나가며 더 이상 나까지 나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느꼈다. 요즘도 사는 것은 버겁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평온해진 데에는 이렇듯 나를 이해해 주는 내가 있어서이다.
한번 나와 화해를 하고 나니 그다음엔 좀 더 수월했다. 가끔 예전의 내가 튀어나와 난 왜 이것밖에 못 이루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마음이 자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찬찬히 원인 분석하게 됐다. 왜 내가 생각했던 인생길과 다른 곳에 도달해 있지? 하며 되짚어보면 역시 나름의 원인이 있다.
난 목표를 세우고 강하게 나를 채찍질하며 나아가지 못한다. 그냥 하루하루 성실히 걸었지, 목표를 정하고 나를 다그치며 쉼 없이 달리는 타입이 아니다. 무작정 걷는 산책가 스타일이라고 할까? 한발 한발 내딛다가 도달한 그곳에 서서 자리를 펴고 놀곤 했다.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공부하면서 내가 알아듣고 받아들인 부분까지만 제대로 아는 데에 주력했다. 모든 내용을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관심 있는 분야를 좀 더 파고들곤 했다. 여기까지가 내 능력이자 인연이라 믿었던 것 같다. 벅찬 감동이나 뿌듯한 성취감은 없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난 목표보다는 나 자신이 더 소중한 사람으로 태어났을 뿐이다. 목표에 도달하는 것보다 내 인생의 하루하루가 소중한 걸 어쩌겠냐 싶다. 목표에 매여 질질 끌려다니며 나를 채찍질하고 싶지 않다. 그 결과로 손에 쥔 게 별로 없는 나를 끌어안는다. 그게 나고 그런 나를 온전히 받아들인다. 게다가 목표를 향해 나를 내몰지는 않지만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넘나드는 일은 안 하고 살아왔다는 자부심도 있다. 단지 하면 좋다는 것을 치열하게 해내는 것보다 해서는 안 좋다는 것을 안 하는 것에 더 특화되어 있을 뿐이다.
이제 내가 내디뎠던 모든 발걸음의 자취를 소중히 여기려고 한다.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이해해 주어야 한다, 는 생각이 자연스레 내 바탕에 스며들었다. 더 이상 나까지 나를 몰아세워서는 안 되겠다, 싶었던 것 같다.
수십 년 동안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자책과 울분의 시선을 더해주었던 나는 이제야 내가 할 일이 뭔지 알게 된 것 같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나를 이해하고 토닥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나를 아끼고 있고 누구보다 내가 잘살기를 바란다는 것을.
내게도 저 들꽃처럼 솜털이 생겼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