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보다 현재, 희망보다 현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 컸던 나는 20살 때까지 내방이 없었다. 부모님과 거실에서 또는 안방에서 20년을 지냈다. 나만의 공간에서 나의 감정을 돌보지 못했고 사춘기 없이 보냈다.
나는 내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는 것보다 가족들의 눈치를 많이 봐왔다. 누나들의 사춘기 시절을 몸소 경험했던 나는 누나들이 무서웠다. 누나가 화내며 싸우는 소리, 우는 소리, 집 나가는 소리를 매번 들었다.
그 소리를 여과 없이 듣던 나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나는 떨고 있었다. 두 누나의 사춘기로 힘들어하신 부모님에게 나까지 걱정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두려움과 무서운 감정들을 부모님에게 표출하지 못했고 억압해 왔다.
어렸을 때부터 감정을 억압한 습관이 성인이 돼서도 내 감정을 스스로 억압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11살, 9살 터울인 막내아들로 태어나 부모에 대한 기대가 컸다. 자연스럽게 우리 집안의 경제적인 문제를 내가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감정의 억압과 남자로서 부담감 속에서 부모님에게 반항 없이, 사춘기 없이 살아갔다.
20살이 되자 작은누나가 먼저 결혼해서 분가하여 내 방이 처음으로 생겼다. 21살에는 학교 기숙사로 독립했고 24살에는 자취하게 됐다.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이 생겼고 부모님과 떨어져 사니 너무 좋았다. 이때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처음으로 생겼다. 알바하고 싶었지만 허락하지 않는 아빠가 무서웠고 내 의견을 관철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내 욕구를 충족하고 싶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내 욕구를 마음껏 표출하고 싶었다. 돈이 많으면 독립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부자를 목표로 대학교 때 열심히 살았다. 투자와 창업이 즐기는 수단이 아닌 독립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학교생활을 열심히 보냈다.
학기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나는 본가로 돌아왔고 지친 심신을 휴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여전히 나를 독립한 성인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고 아침만 되면 잠자고 있는 나를 계속 깨우셨다.
엄마는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두지 않으셨다.
방학 동안에도 열심히 살라고 압박을 계속 주셨다.
어렸을 때는 반항 없이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지만, 성인이 된 나는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 20대가 되자 처음으로 사춘기를 겪은 나였다. 30대에서는 엄마와의 갈등, 친구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고 공황 장애까지 겪었다. 공황 장애를 겪음으로써 나의 과거를 돌이켜봤고 이제는 나의 감정과 욕구를 인정하고 표출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