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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우 Jul 23. 2022

1999년, 현주 누나

누나, 괜찮아요? 내가   구해올게요, 여기 가만히 기다려요.”


​종로 5가에서부터 전투경찰에 쫓기던 누나와 나는 시위대와 함께 퇴계로에서 골목을 따라 뛰다가 동국대학교 담을 넘었다. 그날따라 전경들은 시위대를 해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끝까지 따라붙어 시위 학생들을 체포하고 있었다. 함께 대학교 담을 넘던 몇 학생들은 전경이 휘두르는 방패에 다리가 찍혀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누나와 난 간신히 담을 넘어 어둠이 내린 캠퍼스를 뛰어 법학과 건물로 몸을 피했다. 불이 꺼진 지하 강의실 구석에 등을 붙이고 우리는 숨을 죽였다. 밖에서는 전경들의 고함소리와 학생들의 발소리로 소란한 가운데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붙인 채 전경들이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누나는 땀에 어깨가 축축하게 젖은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크게 숨소리를 내지 못한 채 숨을 고르는 누나가 나 때문인 것 같아 안쓰럽고 미안했다.


“아냐, 조금만 더 숨어있자. 너도 가만히 앉아 있어.”


나가서 물을 구해오려고 일어서는 나를 누나는 끌어 앉혔다. 시간이 얼마가 지났을까, 군화발과 운동화발 소리가 잦아들고 밖은 어둠의 정적만이 남았다. 누나와 난 정적 속에서 어깨를 마주 댄 채 서로의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누나의 규칙적인 숨소리와 따뜻한 어깨 감촉에 난 스르르 눈이 감겼다. 강의실 문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복도의 불빛이 왠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눈을 감은 채 설핏 잠이 들었을 때 누나의 숨소리가 내 어깨에서 입술로 옮겨왔다. 믿을 수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내 입술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누나의 숨소리가 다시 어깨 위로 돌아가서도 난 한참을 눈을 뜰 수 없었다. 어두운 강의실을 가득 채운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에 경찰이 우리를 찾아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심장은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의 어설픈 고백을 거절했던 현주 누나는 사학년이 되자 더 중요한 조직에서 일하게 됐다며 휴학을 하고 학교를 떠났다. 새로 창립된 진보 정당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건네 듣기도 했지만, 누나는 내가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 돌아오지 않았다. 학생회실의 가죽이 다 떨어진 소파에 앉아 누나의 기타 소리와 담배 냄새를 떠올리며 나의 대학생활에 그리움과 아련함의 감정이 짙어졌었다. 그리고 세월속에서 그 그리움과 아련함은 추억이 되었다가 그리고 잊혀짐이 되었다.


20년만에 현주 누나의 이름을 대학 동문회 부고 문자에서 확인하는 순간 잊혀진 아련함이 가슴 깊은곳에서 올라왔다. 오년전에 끊었던 담배를 입에 물고 무심히도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날 어둠속 누나의 숨결에서 맡았던 담배냄새가 떠올랐다.


보고 싶었다. 내 첫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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