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막 생겨났을 때
누군가와 진짜 틀어져서, 마음이 안 맞아서, 나도 그도 서로를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서로 미워할 수 있다. 혹은, 내가 진짜 잘못을 했는데 그것을 상대가 용서하기 힘든 종류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전자라면 그와 어떻게든 대화를 하고 타협을 하면서 화해의 지점을 찾아야 할 것이고 후자라면 최선을 다해 용서를 구하고 그가 용서를 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전자도 후자도 아닌 경우가 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혹은 무슨 일이 있었는데 서로 사과하고 풀었는데도 상대가 계속 나를 미워하는 경우이다. 나는 바로 이 경우였다.
미움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사건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에, 사건을 구체적으로 말할 생각은 없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같은 어린이집 엄마와 아이 때문에 갈등이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오해가 있긴 했지만 나는 오해를 일으킨 것에 대해서도 사과했고 그도 사과했다. 나는 잘 해결이 된 줄 알았고 그후로 그 엄마 태도가 약간 미적지근해서 아직 찜찜한 게 남았나 싶었지만 내게 따로 별말은 없었기에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해결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결이 되기는 커녕, 마치 부러진 팔이 점점 아파오는 것처럼 그의 태도는 점점 냉랭해졌다. 내가 어떤 연락을 해도 받지 않았고 먼저 인사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마음이 풀리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인가 싶었다. 나 역시 아이 문제로 다른 엄마와 마음이 불편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화로 잘 풀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금세 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엄마와 계속 안 좋게 지내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후로 그 엄마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어도 참고 웃으면서 대화도 나누었었다. 현재 그 엄마와는 매우 잘 지내고 있고 아이들 사이에 문제도 없다.
그런데 나를 미워하는 그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갈등이 있기 전, 그는 참 나에게 잘해 주었었다.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잘 지냈던 사람이 한순간에 돌아서니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마음이 힘들었다. '내가 그때 많이 잘못한 건가?' '그런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을 그랬나?' 나는 그와 갈등이 있었을 때 했던 말들을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아무래도 그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았을 거라고, 아마도 그 말 때문에 마음이 돌아섰을 거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는 부인하고 싶었다.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다. 연락이 되지 않으니 어린이집 등하원 때와 같을 때 그와 만나면 일부러 더 인사를 하고 그의 눈을 보고 말을 걸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냉랭하게만 대할 뿐이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대할 때의 표정이 근본적으로 달랐고,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저런 안부를 묻거나 웃거나 하는데 내게는 전혀 그러지 않고 그저 인사를 하면 받기만 하고 외면했다. 그럼에도 나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는 무심히 대하는데 내가 민감한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렇게 믿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누가 봐도 그는 이전의 그와 달랐고, 그것은 나와 그가 갈등을 빚은 그날로부터였다. 나는 또다시 자책을 했다. 그러니까 그 말은 괜히 한 거야. 나는 상처받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결국은 상처를 받고 마음을 닫아버렸어.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가고 싶어. 그렇다면 절대 그 말은 하지 않울 텐데. 나는 대체 왜 그런 말을 해서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실은 이 패턴은, 13년 전에 겪은 패턴과도 같았다. 13년 전에 나는 교사였는데, 한 선배 교사가 내게 교사로서 부족한 점을 이것저것 알려주고 나서 내가 그대로 하지 않으니 그때부터 나를 미워했었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게 처음 이것저것 알려주었을 때, 제대로 했으면 이런 지경까지는 안 왔을 텐데. 그러니 내가 열심히 하면 이 미움이 거두어질 수 있을 거야.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이 미움이 시작된 거니까. 그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잘못은 내게 있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이것을 해결할 수 있어.
나는 해결하지 못했다. 이 생각은 전제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미움이 시작된 것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바로 '미워하는 자'가 선택하는 것이다. 원인은 밖에 있어도 감정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는 정말로 사람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일이 있었던 상황은 제외하고서이다. 내가 과거에 겪은 일도, 그리고 지금 겪은 일도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큰 일이 아니다. 13년 전에는 내가 그 교사의 꼭두각시도 아닌데, 그 말한 것을 내가 다 지킬 이유도 없고 또 안 지킨다고 미워할 이유도 없다. 부모도 자식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데, 동료 교사가 어떻게 다른 교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미워할 수가 있겠는가? 얼마 전에 겪은 일도 마찬가지다. 아이끼리의 트러블이 있긴 했지만 사과했고 훈육했고 그후로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되지 않는다. 그 엄마와 나도 서로 사과하고 풀었다. 사건은 종료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나를 미워하며, 그 미움을 내가 알 수밖에 없도록 행동하고 있다. 이것 역시 그가 나를 미워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러니 첫 단추는, 내가 이 상황을 해결하는 열쇠를 이곳에서 찾아야 한다.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가 그 감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미움을 유발했던 사건은 종결되거나 더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가 미워하는 상황은 그대로 두고 거기에 대한 내 선택을 결정해야 한다.' 미움 자체는 없앨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눈을 외부에서 내부로 돌려서, 과연 내가 미움에 왜 이토록 휘둘리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왜 미움을 받기 전과 후, 내 생활은 이토록 달라졌으며 미움을 받은 후 내 머릿속은 오로지 그의 생각들로 가득한가? (미움을 받기 전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저 오며가며 인사하거나 모임 때나 같이 놀던 사람이었음에도) 내가 미움을 받는다는 것이 내게 대체 어떤 의미인가? 내가 이 상황을 그대로 두고 이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 단추를 이렇게 꿰었을 때에야 나머지 단추들도 제대로 꿰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