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그녀는 터미널의 표 창구에서 일했다. 그녀의 일은 간단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표를 주고 돈을 받아두면 된다. 하루 일이 끝나고 계산만 정확하면 큰 문제가 될 일은 거의 없었다.
터미널은 지역의 주 버스회사가 운영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그녀 역시 버스회사 소속이었다.
그녀가 송준태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한 건 정말 별 게 아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점심을 먹기 위해 도시락을 가지러 창구에서 나왔을 때였다.
도시락은 든 여자 직원 하나가 간드러지게 웃음을 흘렸다.
“송차장님. 식사하셨어요?”
“아, 먼저들 해. 난 나중에 약속이 있어서.”
멋쩍게 웃으며 손을 흔들던 그는 달리 눈에 띄는 생김도 차림도 아니었다.
“송차장님. 먼저 식사하겠습니다.”
“응. 난 아까 했어.”
다음에 또 본 장면이었다. 그때까지 그와는 말을 나눠 본 적도 없는 김영희는 그 말도 스쳐 지났다.
“송차장님은 점심을 안 먹는대.”
“왜?”
“도시락이 없다나 봐.”
“도시락이 없다니?”
“…….”
“월급도 우리보다 많고, 사장님이 그리 각별하게 예뻐하는 동생인데 왜 점심을 못 먹어?”
“여기 사람들이 나가서 밥을 안 먹잖아.”
“그렇지.”
“그렇다고 늘 밖에서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응.”
“도시락을 안 싸서 다니신대.”
“아니 그러니까 왜에?”
“와이프가 도시락을 안 싸준다는 거 같았어.”
일부러 와이프라는 단어를 멋들어지게 써볼 심산 같았다. 하지만 듣는 이들은 그걸 쉽게 수긍하지 못했다.
“응? 밥을 왜 안 싸주는데?”
“그 속이야 우리가 어찌 알아?”
“별일이네.”
“송차장이 생긴 건 무서워도 말 섞어보면 다정하고 똑부러지던데. 집에서랑 다른가?”
“다르다고 밥을 안 싸줘? 네 남편 꼴 보기 싫다고 도시락을 안 싸나. 너는?”
“하긴, 아무리 꼴 보기 싫어도 밥은 싸게 되는데….”
“밖에서 많이 먹는다고 생각해서 그러나?”
“김전무 님이 오히려 밖에서 많이 먹잖아. 그런데도 도시락은 늘 있던 걸?”
“하긴…….”
떠들던 사람들은 말끝을 흐렸다.
김영희는 그 말을 들으며 가만히 있었지만, 사실 그녀조차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반찬이 허술해서 그런가? 그렇다기엔 하나같이 좋은 반찬이라곤 없었다. 계란말이나 고기볶음이라도 넣으면 엄청 훌륭한 고급 반찬이 되곤 했으니까. 송준태보다 높은 자리의 부장들도 김칫국물이 계란말이 자리까지 넘어가는 일도 허다했다.
그와 말을 섞을 기회는 의외로 찾아왔다.
창구를 지휘하는 서대리가 결근을 하게 된 날이었다. 사실 이제껏 한번도 김영희와 송준태가 같은 사무실에서 일을 해본 적은 없었다.
김영희의 교대 시간과 엇갈리기도 했고, 보통은 외부 일을 보러 송준태는 출장이 잦았다.
창구에서는 종종 사람 수와 표를 속여서 보고하는 사람들이 있는 관계로 지휘자가 꼭 하나씩은 상주하게 되어 있었다.
말을 듣기론 송준태는 그런 데에 관대하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가 창구에 오는 걸 반긴다고도 했다.
“오후에는 임부장이 내려온대.”
“나쁜 놈들, 지들이 빼먹는 건 더 많으면서. 우리가 조금 빼먹는 건 꼴을 못 보고.”
유난히 까탈스러운 임부장을 떠올리며 입을 삐쭉거렸다.
“송차장은 웬만하면 눈 감아주니까 그 전에 할 수 있으면 해. 대신 너무 많이 하지 마. 그럼 더 티 나니까.”
창구 앞의 여자 중 선임 격인 홍여사가 떠드는 소리를 막고 조용히 일갈했다.
점심이 되어 모두가 도시락을 꺼내는 판이 되자, 송준태는 어김없이 엉덩이를 일으켰다.
그를 잡은 건 홍여사였다.
“우리 밥 많아요. 같이 드세요.”
아니라고 거절하려던 눈빛이었는데 여자들의 눈길이 쏠리자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지 허허 웃으며 근처로 와서 앉았다.
그날 김영희의 반찬은 멸치조림이었다. 엊저녁에 먹던 거라 한 번 더 먹으라며 어머니가 아침에 도시락에 넣었다. 멸치고추조림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김영희는 그냥 김치와 밥을 먹기로 했다.
“이거 먹어봐도 되나?”
조금 쑥스러운 말투였다. 어쩐 일로 젓가락을 든 송준태가 저에게 말을 붙였다.
“드세요.”
김영희가 반찬을 내밀자, 망설임 없이 멸치와 고추를 같이 집어 입으로 밀어 넣은 송준태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내가 멸치랑 고추 조림을 진짜 좋아해서.”
한번 더 젓가락이 조림을 향했다.
“안사람한테 해달라고 해요.”
그 소리에 젓가락이 잠시 멈췄다. 그러나 다시 슬쩍 웃고는 오물오물 반찬을 씹었다.
“집사람도 밖에 나가 일하겠다고 해서 미안하니까.”
“우리도 다 밖에서 일하는 걸요.”
“애들도 셋이나 되고.”
“…….”
사람들의 입이 점점 조용해졌다.
“난 밖에서 먹을 일도 많아서.”
이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은 채 도시락만 먹기 시작했다.
머쓱해졌는지 송준태가 일어섰다.
“잘 먹었어요. 난 외근 나가봐야 해서. 덕분에 오늘 점심 든든하게 먹었어.”
송준태의 뒷모습이 문밖으로 사라지자 여자들이 다시 웅성대기 시작했다.
“봐봐 이상하지?”
“저번에 모임에서 봤다는데 둘이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던데.”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사실… 저번에 나이트에서 송준태 안사람 같은 사람을 봤다던데….”
갑자기 주변이 썰렁해졌다. 사람들은 함부로 뒷담화를 더 얹지는 않았다. 어쩌면 김영희의 앞이라 그런지도 몰랐다.
*
김영희는 작게 태어나 여전히 젖살도 없는 갓난이를 바라봤다.
겨우 두 사람이 누울 만한 방한칸이 전부였다. 한쪽으로는 옷 가방 하나만이 달랑 놓였다.
아이도 겨우 낳았다. 어머니가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아이를 낳다가 죽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김영희의 머리맡에서 한참을 우셨다. 아무리 가진 게 없는 집이라지만, 오빠도 좋은 회사에 다니고 먹고 살기 힘들 만큼은 아니었다.
굳이 유부남에게 빠져서 이 사달을 내지 않아도 될 팔자라고 내내 말했다.
그러면서 우는 어머니를 김영희는 말릴 재간도 의지도 없었다. 사실 입이 있어도 할말이 없었다.
김영희는 ‘불륜’이라는 세간의 손가락에도 당당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송준태는 한 여자의 남편이라기엔 너무 외로웠다. 그는 차라리 홀아비들보다 더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부인 이야기가 나오면 그는 할말이 없는 듯 늘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에게 측은지심이 생긴 게 언제부터일까? 어쩌면 멸치조림 때부터는 아닐까? 김영희는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어느날 김영희는 멸치조림이 든 도시락을 두 개 준비했다. 아니나 다를까 송준태는 그걸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아마도 멸치조림이라면 거절하지 않았으리라 직감했던 건지도 모른다.
무언갈 바라는 관계가 아니었다. 그저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는 김영희의 품에서 위로받았다.
‘불륜’이라는 관계를 시작하고 그는 양쪽의 생활비를 책임지게 되어서였을까?
김영희의 임신에 송준태는 이혼을 결심했다. 그래서 부인과 이혼을 준비하는 별거 상태에 들어갔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사기를 당했고 그것은 사업 부도로 이어졌다. 결국 송준태는 이혼은커녕 영창에 갔다.
지인에게 속았다고 했다. 그것도 친한 친구였다고. 평소의 그가 일처리 하는 능력은 누구나 인정할 정도인데 어쩌다가 그런 꼬임에 빠졌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김영희와의 관계가 그의 판단력에 영향을 주기도 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한 적은 있었다.
김영희는 마른 몸을 기다시피 해서 작은 부엌으로 나가 보리쌀이 든 장독을 열었다. 바닥까지 텅텅 비었다. 이제 더는 먹을 게 없었다. 어제도 겨우 젖을 먹였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송준태는 옥에 들어갔다가 한 달 전에 나왔다고 들었다. 아직 아이 얼굴도 한번 보지 못한 상태였다.
눈물이 터졌다. 원래부터 살집이 없는 체질이지만,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나면 그나마 있던 기력도 전부 없어질 것만 같았다.
어머니가 몰래 쌀을 가져다줬지만 이미 동이 났다. 더 달라고 연락하기엔 너무 염치가 없었다. 가족들은 아이를 버리지 않은 거면 집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김영희는 아이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누가 뭐래도 사랑해서 낳은 아이다. 그 사람이 아무리 나쁜 인간 취급을 받는다 하더라도 자신만은 그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싶었다.
마지막 만남 때 송준태가 물었다.
“우리 아이들을 키워줄 수 있을까?”
김영희는 고민하지 않았다. 송준태가 있고, 배 속의 아이만 무사하다면 뭐든 할 준비가 되었다.
하지만 이젠 그가 저에게 올지, 못 올지, 안 올지 김영희는 무섭기만 했다.
오지 않는다면 혼자라도 아이를 키울 것이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아이를 키우기도 전에 아이를 죽이게 되는 어미가 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