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람 보육원의 대모 정사라(정말임) O형, 큰딸 도다리 AB형, 큰아들 고대로 B형, 늦둥이 고자비 A형. 우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고, 각자의 혈관을 흐르는 그 피의 유형 또한 딴판이었지만 사라 수녀님과 도다리, 고대로는 명백한 나의 가족이었다. 그걸 눈에 보이게 증명하라니, 그 법이 내게는 곧 불법이었다. 보호자를 함께 적어내야 하는 병원 접수증 안에서도 나에게 가족이란 빈칸이었다. 그곳을 그들 이름으로 채워봐도 피, 그러니까 법이 정의한 가족이라는 의미 안에서 나는 결국 혼자였다. 나는 증명되지 못했다. 세상이 그어놓은 가족의 한계, 그 테두리 안에서도 밖에서도. 나는 그 테두리로만 증명되었다. 그런 내게 법적 가족이라니. 말만 들어도 배가 불렀다.
"오케이!"
그들의 입양 제안에 나는 바로 오케이 했다.
"단, 조건이 있다."
헉, 고대로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한 옥타브는 내려갔다. 제법인 그의 목소리에 놀라 나는 오렌지와 함께 혀를 씹고 말았다. 저작운동이 저절로 멈추었다. 가만 보면 고대로는 꼭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내 입맛을 달아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고기반찬과도 바꾸지 않을 오렌지를 입 안 가득 넣고도 나는 어쩐지 속이 허했다. 삼겹살 파티라길래 두 끼 굶고 갔더니 비계만 잔뜩인 기분. '높은 도' 목소리의 소유자 고대로가 '낮은 도'까지 쥐어짜 낸 기름기 흥건한 목소리. 그건, 그의 잔소리가 예열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무사히 스무 살이 되어야 한다. 나는 오래전에 다짐했다. 그때가 오면 널 입양하리라고. 어느 날 내 앞에 뚝 떨어진 네가 전투적인 숨소리로 잘 먹고 잘 자고 마침내 잘 싸는 걸 넋 놓고 바라보다. 문득. 물론 다리는 나의 '고자비 후원 선언'에 이은 '고자비 입양 선언'에도 바로 오케이 했었다. 그때라면 다리와 나는 보육원 퇴소를 앞둔 고3, 자녀 계획은 고사하고 서로가 결혼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은 때였는데 말이지. 아니, 목구멍이 포도청이었으니 언급할 수 없었다고 해야 할까. 훗."
고대로의 목소리가 지하 세계를 향해 하염없이 굴을 팠다.
하아, 또 그놈의 신생아 시절 타령. 당장 입양이 될 줄 알았는데 나는 김이 샜다. 열아홉 살이 되면 어차피 보육원을 떠나 자립해야 할 테고, 게다가 그들이 날 입양하겠다는 스무 살은 뭐든 할 수 있는 법적 어른 아닌가? 엄마 아빠, 양친이 멀쩡한 애들도 스무 살이면 집을 떠나는 마당에 다 커서 하는 입양이 무슨 소용이람. 나는 서서히 재생되는 저작운동에 우물우물 말을 섞었다.
"입양은 최대한 어릴 때 하는 거 아냐? 사람들 말마따나 뭘 모를 때……"
"일단정지."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던 고대로의 목소리가 마침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지하 세계에 입성했다. 끼익- 고대로가 차를 정지시켰다. 끙, 내가 정지되었다. 어째선지 도다리는 아까부터 정지되어 있었다. 내 목구멍에 걸린 오렌지만이 정지되지 못하고 미끄덩미끄덩했다.
열세 살 그즈음은, 그들 부부가 내게 총체적 상담사로서의 열망을 막 드러낸 때이기도 했다. 상담엔 소질이 없을뿐더러 마땅한 일거리도 없는데 그들은 내 상담사를 자처하며 걸핏하면 찾아왔다. 그것도 쌍으로. 어설프게 탐정 흉내를 내며 자꾸 내게서 뭔가를 캐내려 했다. 그들은 그 아이를 알 리 없는데, 이상하게도 그 아이가 떠오르는 질문만 던져오는 식이었다.
속는 셈 치고 소소한 고민을 몇 차례 털어놓기도 했다. 상담 결과는 매번 처참했지만. 변비에 걸려 죽을 맛이라는데, 응원한다고? 석 달 만에 8킬로가 쪘다는데, 응원한다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들은 내 신입 상담사였던 그때도 상담 주제와는 상관없이 '응원'이나 '사랑' 따위만을 운운하며 그걸 답이라고 내놓았다. 그럼 나는 에에에- 안 들려- 안 들려- 마음속으로 바로 귀를 닫곤, 찬란한 태양 아래서 물기를 머금은 채 반짝이는 야생의 생과일을 떠올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내게 그들의 사랑은 오래된 식빵 같았고, 그래서 누리끼리하고 푸석푸석했다. 내 안에 막 싹을 틔운 그 아이의 푸릇한 사랑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됐다.
이제 나는 보육원에 놀러 온 그들이 빨리 자기 집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지경이었다. 웃는 얼굴엔 침 못 뱉는다던데, 매번 똑같은 탐정 흉내를 볼 때마다 처음인 듯 내는 것도 참 재주긴 재주라고 오히려 나는 그들의 웃는 얼굴에 침 튀기며 소리치고 싶었다. 이젠 내가 변비로 고생하든 설사로 고생하든 그만 묻고 신경 끄라고 대들고 싶었다. 나 좀 내버려 두라고 퍼붓고 싶었다. 나는 실제로도 그들에게 퍼부었다. 그래도 우리가 서로 약속한 게 있지 않냐고. 놀이공원엔 꼭 데려간 뒤에 나를 좀 내버려 두라고. 이놈의 집구석, 지긋지긋하다고. 바로 그런 때, 내가 실제로 뱉든 뱉지 않든 고대로는 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 일단정지,라고 말하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면 내 의식은 백이면 백, 그의 말대로 일단정지되었다. 나는 그들의 탐정 흉내보다도, 뒤이어 닥칠 고난을 뻔히 알면서 고분고분 정지되는 내 의식의 그 착실함을 더욱 견딜 수 없었다. 하이 톤 고대로의 가래 끓는 톤. 왜냐하면 그건, 고대로의 잔소리 예열이 끝났다는 신호니까. 일단정지, 다음에 이어질 그의 설교를 나는 그때도 달달 외우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열 살 때였다. 옆 동네 아이들과 축구 시합을 하던 날 나는 기가 막힌 오버헤드 킥으로 자살골을 넣었다. 죽을 둥 살 둥 뛰어 연장전에 만회골을 넣었는데, 또 자살골이었다. 관중의 응원은 야유로 바뀌었고, 나는 엎드려 울었다. 처음엔 괜찮다고 등을 쳐주던 같은 팀 선수들은 두 번째엔 엎드린 나를 그대로 떠메다가 경기장 밖에 내려놓았다. 머지않아 경기는 0:2로 종료되었고, 관중의 야유도 얼추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엎드려 있었다. 쪽팔린 건 여전했으니까. 그만 집에 가자는 소리에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도저히. 결국 관중과 선수들은 먼저 집으로 돌아갔고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래도 고개를 들 수 없어, 나는 한참 뒤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서 앞을 보는데, 보이는 게 없는 거다. 눈앞이 깜깜-한 거다. 눈을 비벼도 비벼도 말이다. 훗, 밤이었다. 둥그런 보름달이 축구공처럼 뜬 밤. 나는 엎어져 잔 거다. 대낮부터 그때까지.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도다리가 저쪽에서 두 눈에 불을 켜고 서 있었다. 처음부터 다 지켜보고 있었다고. 진짜 봐줄 만했다고. 뭘 그렇게 섰냐고. 집이 없냐고 발이 없냐고. 가자고. 그래도 폼은 두 번 다 마라도나, 그러니까 지금의 메시였다고. 자비, 진짜 응원이 필요할 때는 골을 넣기 전이 아니라 선수가 넘어진 뒤다. 나를 모르는 것과 나를 잊어버리는 것은 준비 자세부터 다르니까. 도다리, 패스."
"우리는 마땅히 너를 보호해야 하고 너는 기꺼이 우리에게 보호받아야 해. 우린 가족이니까. 아- 오렌지-"
고대로의 패스를 받은 도다리가 나를 향해 입을 벌렸다. 엄청 크게 벌렸다. 나는 흘러내리는 과즙을 닦느라 끈적해진 두 손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오렌지 귀신의 수중에 걸려든 오렌지가 그리 오랜 시간 남아났을 리는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목구멍에 걸려 미끄덩미끄덩하던 것도 사라지고 없었다.
끼익- 고대로가 일단 정지한 우리의 차는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