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네 명이 방 하나를 쓰는 게 자람 보육원의 규칙이다. 작년까진 나도 동생들과 한방을 썼었는데 열여덟 살이 되면서 지금의 독방, '자립방'을 배정받았다.
퇴소 1년 전에 배정받는 자립방은 사수가 직접 고안해 낸 자람 보육원만의 전통이다. 사수는 이곳이 곧 단체 생활에서 벗어날 보호아동이 퇴소 뒤의 주체적 삶을 미리 계획하는 뜻깊은 공간이 되길 바랐다. 이러한 사수의 바람에 응답이라도 하듯 17년 전 고3이었던 도다리는, 이 방에서 맞은편 자립방 남학생 고대로와 사랑을 키워나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체적이었다. 자그마치 중 2 때부터였다나. 결국 둘은 스물두 살에 서둘러 결혼했고, 한 달 전엔 결혼한 지 14년 만에 첫아기를 품에 안았다. 어쨌든 이 자립방에서 작당 모의한 그들의 계획을 제대로 이룬 셈이었다.
신생아인 내가 자람 보육원에 입소하던 해, 열아홉 살이 된 고대로와 도다리는 퇴소했다. 태어나자마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과 가족사진이란 걸 찍게 된 운명에 동질감을 느꼈던 걸까. 퇴소하던 날 고대로는 내 후원자가 되겠다고 선언했고, 도다리는 자신도 함께하겠다 흔쾌히 약속했다. 감격한 사수는 내가 자식 농사 하나는 기똥차게 지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나. 어떻든 그 약속은 그들이 서른여섯 살이 된 지금도 굳건히 지켜지고 있다. 내 책상 유리 밑엔 그날 찍은 빛바랜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이 끼워져 있다. 싱그러운 열아홉 살 도다리와 고대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웃고 있는 중년의 사수. 분명 사수의 품에 안겨 울고 있었다는데 강보에 싸여 사진상에선 생략된 나.
"고대로, 어쩌다 날 후원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거야?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하물며 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은 신생아를 말이야."
"더 살아본 사람으로서, 돌이켜 보면 이유랄 게 없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이유를 모르는 게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일. 그 일 자체가 그 일의 이유인 일. 왜,냐고 묻는다면 그냥,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일."
"흠…… 고대로, 고자비. 내가 같은 고 씨라서 마음이 갔던 건 아닐까? 뭐, 널리 보면 우린 모두 단군의 자손이기도 하고……"
"네가 고 씨였든 비타민 씨였든 그건 후원과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털끝만큼도. 그때 난 퇴소를 앞두고 있었는데, 달력 날짜 지워가며 기다린 그날이 막상 코앞으로 다가오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대학에 가든, 군대에 가든, 어디로 가든 도다리는 딴 놈한테 가버리고…… 폐인이 된 나는 거리를 전전하고…… 충격으로 사수는 쓰러지고…… 그 충격으로 도다리도 쓰러지고…… 그 충격으로 나도 쓰러지고…… 다 쓰러지고…… 다 가버리고…… 아무것도 안 남고…… 먼지만 남고…… 그러다 보면…… 아침이었다. 훗. 그때, 내가 너와 만난 거다. 어느 아침에. 쌔애액- 쌔애액- 숨소리가 어찌나 의욕적인지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됐다는데 족히 백일은 돼 보였다, 넌. 꿰애액- 꿰애액- 울음소리는 또 어떻고. 밥때가 조금만 지나도 사흘은 굶은 듯 울어대는데, 주위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네 울음소리밖에 안 들렸다. 끄으응- 끄으응- 쌀 때는, 말도 마라. 얼굴 벌게지게 힘주다 결국엔 기를 쓰고 해내는데, 나도 모르게 물개박수를 치고 말았다. 너는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기를 쓰는 너를 보면 자빠져 먼지 마실 시간에 밖으로 뛰쳐나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고 뭐라도 할 때면, 기를 쓰고 해내는 네가 보고 싶어서 얼른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방전된 내가 순식간에 완충되는 느낌. 모든 현실로부터 나를 해방한 게 바로 너였다. 꼭 요정이 뭉텅이로 부어주는 요술 가루 같았달까."
"아, 뭐래."
격변의 중1 겨울방학, 이마 한가운데에 난 커다란 여드름을 짜며 내가 물었을 때 이젠 모든 신체 조건이 자신과 비등비등해진 내게 고대로는 답했다. 뼛속까지 진중한 고대로답게. 농담은 진담처럼 진담은 진담처럼, 고대로답게. 그러곤 얼른 내 손에 휴지를 쥐여주며 덧붙였다. 거 봐라. 피난다. 걱정하지 마라. 온다. 제아무리 기세등등한 대왕 여드름이라도 저절로 사그라드는 날은, 반드시 온다. 미리 아프지 마라.
갓 첫돌을 넘긴 내가 도다리를 발음했다는 소식에 고대로는 진지하게 좌절했다. 아직 앞니 몇 개로 이유식을 녹이는 내게 도다리와 함께 경쟁적으로 자기 이름을 가르쳐왔던 고대로는, 내 입에서 누구 이름이 먼저 나올지 내기까지 건 참이었다. 질 경우, 도다리가 원할 때마다 업어주어야 했으므로 평생 허리 건강이 걸린 문제였다. 좌절한 고대로는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내 발음에 귀 기울여보았다. 훗. 역시 내 입에서 나는 소리는 도다리가 아니었다. 몇 번을 들어봐도 그건 '고도리'였다. 고대로는 신이 났다. 어서 이 소식을 도다리에게 알려야 했다. 하지만 그만두었다. 고대로는 도다리와의 내기에서 알아서 졌다. 이건 그만두는 거지, 좌절이 아니었다. 그게 고도리가 아닌 고대로여도, 도다리가 도다리라면 도다리인 거니까…… 그렇게 어차피 질 내기에서 미리 진 고대로는 수시로 허리 숙이게 되었고, 그로부터 얼마 뒤 그 허리에 어린 내가 매달려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가 그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나…… 아주 뿌리를 내렸다나…… 여하튼 내기에선 졌지만 기쁨은 오래 기다린 이에게 더욱 큰 법이라며, 진정한 승자는 바로 자신이라며 고대로 역시 앞으로도 쭉, 내가 그를 이름 그대로 불러주길 바랐다.
도다리가 나만의 호칭이듯 고대로 역시 나만의 그것이다. 너덧 살 무렵 쫄래쫄래 사수 뒤를 밟다 도착한 성당에서 한 아이와 다퉜을 때, 우리 아빠에게 이른다는 그 아이에게 나는 우리 고대로한테 이를 거라고 응수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난 아빠가 뭔지 엄마가 뭔지도 몰랐는데 말이다.
쏟아지는 업무에 임신과 출산까지. 요즘에야 뜸하지만 내가 중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도다리 부부는 옛집인 자람 보육원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어린아이들과 살을 부대끼며 놀아주었고, 그 아이들이 자라 이차 성징이 나타날 무렵이면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은, 총체적 상담사의 역할도 자처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현재 자람 보육원 모든 보호아동의 후원인인지도 몰랐다.
격변의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 한꺼번에 커진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다리 상담사를 찾았다. 내 발로 찾은 건 처음이었다. 방학 시작과 함께 승모근부터 솟기 시작했다. 방금 방학했는데 벌써 개학이 걱정되었다. 나는 순식간에 짧아져버린 내 목이, 내게 남은 삶의 길이처럼 느껴졌다. 이 막막함은 지금 나의 최대 고민거리였다.
"도다리, 사는 게 지겨워."
"지겹다니?"
"결론은 같으니까."
"자세히."
"나를 결론짓는 건 내가 아니라 내 환경이야. 내가 멀쩡하면, 보육원에 사는데도. 좀 어긋나면, 보육원에 사니까."
"더 자세히."
"내 모든 건 보육원과 연결돼 있어. 심지어 내가 땀이 많은 이유조차도. 어떤 애들은 보육원에서 하도 굶겨 속이 곯아 그렇다고 해. 하지만 어떤 애들은 저게 하도 굶은 비주얼은 아니지 않냐고, 땀 많은 건 타고난 불치병이라고 하지. 어이없는 건, 대립각을 세우던 그 애들이 결국엔 한뜻으로 뭉친다는 거야. 어쨌든 고자비 쟤는 버림받은 운명인가 보다고."
나는 승모근 봉우리에 숨은 목을 픽 숙이며 시무룩하게 물었다.
"나는, 버림받은 걸까……?"
마주 앉은 도다리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쌌다. 그러곤 천천히 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끙…… 나는 점점 목이 당겼다. 그래도 도다리는 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끄으응……? 벌써 내 목이 다 당겨졌다. 그래도 도다리는 계속 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끄으으으응……! 나는 몸 둘 바를 몰라하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도다리는 그제야 조금 놀란 듯 내 얼굴에서 손을 뗐다. 그러면서도 할 말은 끝까지 했다.
"자비, 나를 버릴 수 있는 건 나뿐이야. 나를 버리느냐 마느냐는 내가 결정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냐, 말 것이냐. 자세히 말하자면 그건……"
하아, 심지어 그거였다. 도입부만 들어도 졸린 그거. 중1인데 가끔 애국가 가사도 헷갈리는 나는 상담사 도다리의 18번 레퍼토리만큼은 줄줄줄 외었다. 더 들어보나 마나 그건 어렵고도 복잡하며 하품이 절로 나는, 공감의 탈을 쓴 훈계일 뿐이었다. 분량 또한 어마어마했다. 나는 잽싸게 도다리의 말을 끊었다.
"도다리, 그래, 그래, 알지, 알지. 그건 그렇고, 이거나 좀 자세히 봐봐…… 요즘 같아선 뭐 하나 제대로 받아들이고 싶은 게 없어……"
나는 목을 최대한 뻗어내며 말했다. 목울대가 찌릿하도록 쭉 뻗어봤지만 목 길이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자비, 응원해."
'으응원……?'
뻗어낸 목이 바로 회수되었다. 입이 자동으로 다물어졌다. 바로 이게 상담사 부부의 한결같은 상담 방식이었고, 상담은 이렇듯 어이없는 물음표만 남긴 채 종료돼버리기 일쑤였다.
자칭 총체적 상담사 부부는 누구 하나 의뢰인의 고민과 그 본질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어딘가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느라 상담 시간을 다 잡아먹거나, 생업인 외국인 노동자 센터 일이 바쁘니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자기들 할 말만 하고 자리를 떠버리기도 했다. 커져가는 몸을 내가 암만 들이밀며 물어도 그들은 하나같이 응원 운운, 그야말로 일심동체였다. 도대체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는 내 목과 그들의 응원을 어떻게 연결해야 한단 말인가. 더 짧아지라고 응원하겠다는 건가? 아예 붙어버리라고? 그들에게 나는 어떤 크기와는 상관없이 늘 어린애였다. '도다리' 아니면 '고도리'로 말을 트던 그 작은 애 말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그만인.
그렇다고 고민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을 얻고자 상담을 신청한 건 또 아니었다. 내가 그들에게 바랐던 어떤 답이 있었나? 없었나? 지금은 그것조차 가물가물하다. 응원,이라는 뻔한 레퍼토리를 타고 어디선가 사수표 제육덮밥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내 모습이 떠오를 뿐…… 사수에겐, 날마다 1등급 고기를 볶던 때가 있었다. 저녁마다 내 식판에 자신이 볶은 간장 제육덮밥을 소복이 퍼담는 것으로 나를 응원하던 때가. 지긋지긋한 간장 냄새에 그때 나는 어쩌다 특식으로 나온 간장 치킨만 봐도 헛구역질을 했고 말이다.
그렇지만 진심이었다. 고기라면 환장하는 나로서는 매번 똑같은 사수표 제육덮밥의 간장 양념이 지겨웠을 뿐, 1등급 고기 자체가 지겨운 건 아니었다. 이쯤이면 찔 수도, 구울 수도, 삶을 수도, 튀겨버릴 수도 있는 그 귀한 1등급 국산 고기를 허구한 날 간장에 볶아버리는 사수의 일관된 요리 방식이 지겨웠을 뿐, 나를 위한 사수의 마음이 지겨웠던 건 아니었듯이.
어쩌면 나는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응원을 멈추고, 그저, 나를 오래오래 바라봐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