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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은 Oct 27. 2024

4화 (4)예수님은 없으니까 십자가는 세우지 않았다

사수표 제육덮밥, 그 요물의 역사는 이랬다.


때는 중학교 입학을 앞둔 열세 살, 강풍이 몰아치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평생 자잘한 감기 한 번 앓은 적 없던 나는 그때 난생처음 독감에 걸렸다. 시름시름 앓는 나를 보며 잠깐 애를 태우는가 싶더니, 사수는 주방으로 달렸다. 그러곤 1등급 고기를 볶기 시작했다. 정확히 기억한다. 사수가 1등급 고기를 볶은 건 180일, 딱 반년만이었다. 고기반찬을 기다리며 내가 다이어리에 헤아려온 날들이었다. 사수는 큰마음을 먹은 게 분명했다.


나는 그 사수표 제육덮밥을 연거푸 리필했고 그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문제는 사수가 한번 먹어버린 큰마음을 쉽사리 내려놓지 못했다는 거였다. 그날부터 사수는 저녁마다 1등급 고기를 볶았다. 오로지 나를 위해. 어느새 봄이 되어 유행하던 독감이 자취를 감추었고, 내가 아픈 곳 하나 없이 중학교에 입학했는데도 쭉. 나는 저녁마다 곤욕이었다. 수북한 그걸 남기자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기를 볶던 사수의 뒷모습이 눈에 밟혔고, 어떻게든 비우자니 살다 살다 고기반찬에 물릴 판이었다.


사수표 제육덮밥이 내 독감 치료에 크게 이바지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저녁마다 불 앞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사수 역시 이젠 자신의 제육덮밥을 나의 만병통치약이자 예방 주사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래도, 내가 암만 고기를 사랑해도 이건 아니지 않나. 피가 나게 양치해도 간장 양념 특유의 쿰쿰함이 가시지 않았다. 남기기도 뭐해서 꾸역꾸역 비웠더니 담기는 양은 갈수록 많아졌다. 그렇게 인고의 세월을 지나고 지나던 어느 날, 마침내  순간 맞았. 사수표 제육덮밥을 거부하기에 딱인 대대적 명분을 찾은 순간.


"사수, 나 석 달 만에 8킬로 쪘어요."


사수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이만하면 됐는데 됐는데 하면서도 저녁만 되면 나도 모르게…… 내가 미쳤었나 봐. 이제 볶아. 적자야, 적자. 이제 못 볶아. 암만, 암만."


사수의 한계였을까. 나의 한계였을까. 어쨌든 그때 나는 사랑은 영원할 수 없다는 걸 배웠다. 또한, 동시에 다른 하나도 배웠다. 사람은 하나를 배우면 마땅히 둘 정도는 깨달아야 하니까.


열외…… 아니, 뭐였더라? 아, 예외. 예외는 어디에나 있다는 걸, 사랑의 한계를 배움과 동시에 나는 처절히 깨달았다. 영원한 사랑도 있다는 걸. 사랑에도 예외가 있다는 걸. 어떤 사랑은 그 자체가 예외였다. 사랑은 아예 나에게서 예외 되었다.  아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만을 사랑할 거라던  아이. 나는 그 아이의 사랑만은 영원할 줄 알았다. 그 아이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도 등교할 땐 보육원 앞에서, 하교할 땐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말없이, 오래된 나무처럼 내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걸었다. 8킬로가 쪘다고 투덜대는 내게 그 아이는 마침내 말했다. 전혀 몰랐어.


그날은, 대수롭지 않게 맞잡아온 그 아이의 손이 전에 없이 믿음직해 보인 날이었다. 나도 전혀 몰랐다. 매끈한 줄로만 알았던 그 아이의 손등에 그토록 거친 혈관이 숨어 있었다는 걸.


중1 가을 소풍날이었다. 나는 도시락을 열었다. 그러자 아까부터 내 옆을 알짱거리던 몇몇 아이들이 집이 보육원이라 도시락도 그 모양이냐고, 생트집을 잡으며 나를 에워쌌다. 그때 홀연히 나타나 나와 그것들 사이에 끼어든 그 아이. 그 아이는 그때까지만 해도 수척했던 내 어깨를 감싸 나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나를 뒤에 두고 한 발 한 발 그것들에게 다가가는 그. 불끈 쥐어진 그의 두 주먹. 혈관 치솟은 그 주먹으로 그는 그것들의 멱살을 닥치는 대로 쥐고 흔들었다. 꺼져.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 아이는 그것들에게 한 번 더 주먹을 들어 보인 뒤 나를 제 옆자리에 앉혔다. 피카츄 얼굴이 커다랗게 프린트된 자신의 노란 가방 옆에. 그 아이가 노란 가방을 열자, 윙크하는 피카츄가 그려진 노란 도시락이 나왔다. 혈관 울뚝불뚝한 그 손으로 노란 도시락을 연 그 아이는 그 안에서 꺼낸 앙증맞은 김밥 하나를 내 입에 먼저 넣어주었다. 나는 김밥이 노란 건 처음 보았다.


"내가 피카츄 엄청나게 좋아하잖아. 우리 엄마가 새벽부터 만들었어. 너랑 먹을 거라고 김밥 하나하나에 피카츄 얼굴 넣어달라고 주문했는데 엄마가 맞고 싶냐 그래서 어떻게든 노랗게만 해달라고 했어. 알지? 난 피카츄보다 네가 더 좋아."


노란 김밥은 대체로 먹을 만했다. 그 아이와 함께였으니까.


심혈을 기울였다며, 사수가 가방에 넣어준 도시락이 사실 내게도 있었다. 조금 전  도시락이 그거였다. 도시락 안에는 먹음직스러운 김밥과 함께 방아깨비, 고추잠자리, 사슴벌레, 귀뚜라미, 왕거미, 호박벌, 그 귀하다는 꼬리명주나비까지…… 죽은 곤충들이 고명처럼 올라와 있었다. 그것들이 꾸민 짓이었다.


나는 놀라기는커녕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관뚜껑을 덮듯 조심스레 도시락을 도로 닫았다. 한없이 너그러운 한량의 마음으로, 나로 인해 유명을 달리한 곤충들의 명복을 빌며 나는 그들을 김밥째 묻어주었다. 예수님은 없으니까 십자가는 세우지 않았다. 밥이, 더군다나 김밥이 아깝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그 아이는 다음 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보육원 앞에서 나를 기다렸. 그날부터 나는 그 아이가 먼저 내밀어온 그 손을 먼저 내밀기 시작했다. 내 두 가슴에서 자그마한 몽우리가 생겨나고 있었.


그렇게 격변의 중1 겨울방학을 맞았다. 나는 자고 일어나면 커져 있었다. 아직 내 변화에 대해 모르는 그 아이는 방학 내내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결국 전화를 받지 못했다. 중2 때도 같은 반이라니, 꿈만 같다는 문자에도 답장하지 못했다. 쓰기만 했다. 첫눈이 오던 날에도, 함박눈이 내리던 자신의 생일날에도 그 아이는 내 소식을 기다릴 뿐이었다.


마침내 개학 날, 나는 지옥문을 여는 기분으로 교실에 들어섰다. 짝꿍도 나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방학 내내 17센티가 자라 178센티를 넘긴 키, 키를 넘치게 뒷받침하는 몸무게와 골격, 촘촘한 화농성 여드름까지…… 성장기 청소년의 애환이 짙게 드리운 내 몸뚱이를 그 아이는 눈을 여러 번 비비고 나서야 스르르 올려다보았다.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그 아이의 입술이 뭍에 던져진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뻐끔거렸다. 그게 끝이었다. 그게, 다였다. 할 말 없음. 그것이 그 아이가 내게 남긴 마지막 속삭임이었다.


그날 하교 뒤 그 아이는 나를 기다리지 않았고, 나는 내가 모르는 개구멍을 통해 이미 학교를 빠져나간 것만 같은 그 아이를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 말이 봄이지,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에 대낮에도 오소소 닭살이 돋는 3월의 초입. 저녁 어스름이 내리자 손이 시렸다. 그 아이는 밤이 깊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겨우내 차가운 금속으로 뼈마디를 도려내는 듯하던 성장통은 그 아이의 냉담함에 비할 게 아니었다.


호오오, 손에 연신 입김을 쐬던 나는 그 아이에게 전화라도 걸어볼까 싶어 휴대전화를 열고 1번을 길게 눌렀다. 잘 안 눌려서 손가락 하나에만 입김을 쐰 뒤 다시 눌렀다. 그 순간 액정에 1이 끝없이 생겨나며 휴대전화가 버벅거리더니 그 아이의 전화번호가 삭제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나는 어질어질해서 눈앞이 뿌예졌다. 그 아이를 기다린 반나절 사이 한량의 피가 한꺼번에 증발해버렸다. 나는 이미 그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결정적 사건은 바로 다음 날 터졌다. 이유 없이 나를 괴롭히는 그것들과 맞서왔던 그 아이. 언제나 내 편이었던 그 아이. 내게 다정했던 그 아이는 이제 나와 당당히 맞섰다. 커져버린 나를 콕 짚으며 얘랑 사귀는 거 아니었냐고 비아냥거리는 그것들에게 개소리하지 말라며, 내가 눈깔이 삐었냐며 혈관이 터져라 두 주먹을 쥐고 몸을 떨었다. 나를 바로 눈깔 앞에 두고. 그 아이는 내가 아닌, 그것들이 아닌, 그것도 눈깔이라고 달고 다닌 자신에게 분노하는 듯했다. 한량의 피가 한 방울도 남지 않은 나는 쓰러질 듯 사물함에 기대 이마를 짚었다. 아직 아물지 않은 대왕 여드름 자리를 건드리는 바람에 이마 한가운데가 욱신욱신했다. 중학교 입학식 날, 놀이터 벤치에 마주 앉아 붉은 티 하나 없이 반드르르한 내 이마에 수줍게 입을 맞추던 그 아이. 대왕 여드름의 흔적 위로 그 아이의 감촉이 되살아났다. 어떻게 네가, 라고 울먹이며 나는 그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아이는 눈깔에 힘을 빳빳이 주고 이제 와 내게 조소를 흘렸다. 스윽 까치발을 들며 뇌까렸다. 나야말로, 어떻게, 네가.



*



내가 자람 보육원 대문 앞에서 발견된 건 태어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나는 한 장의 편지를 이불처럼 덮고 고 있었다. 가장 작았을 때였다.


『고자비. 어제, 5월 22일 오후 1시 46분에 태어났습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못난 부모를 용서하길 바라며 지은 이름은 아닙니다. 배 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떠오른 이름입니다. 아빠의 정확한 성을 몰라 엄마인 제 성을 붙였습니다. 그 이유는……』


편지는 이것이 전부였다. 찢긴 자국이 뚜렷했다. 더 하고픈 말을 낳아주신 엄마가 끝내 삼켜버린 것 같다고, 오래전 사수는 내 손에 편지를 쥐여주며 말했었다. 전부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자고. 사수도 그랬다고. 맞다. 사수는 그날도 1등급 고기를 볶았었다. 부지런히. 꾸역꾸역.


'얼굴도 모르는 내 부모가 내게 남긴 것은 '고자비'라는 이름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큰 몸뚱이와 무성한 이 털뿐일까. 그들은 알까. 친구들은 여자인 나를 '고자'라고 부른다는 걸. 나는 자비라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 나는 왜 하필 고 씨일까. 태어나 보니 고 씨였다……'


나는 더욱더 깊은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쪽으로 짚어봐도 저쪽으로 짚어봐도 까슬까슬한 턱을 무심히 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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