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미 경험해 본, 8살의 유니버스

내가 감정의 중심이 아니라, 아이가 감정의 중심이 되길


내 눈에 비친 둘째는 작고, 여리며, 항상 친구들에게 끌려다니기만 하는 것 같다.

생일이 빠른 강자에게 약하고, 또래 비슷한 친구들이랑 놀 때는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한다.



최근 친하게 지내는 둘째의 친구가 있다.

엄마들끼리 친구이고, 고로 둘은 만날 때마다 손을 잡고 다니며 손꼽놀이를 하면서 잘 지냈다.



나는 그 친구와 함께할 때면,

내 부족한 면이 보여 마음이 조금 힘들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없는 (나에게는 없는) 아이 맞춤형 보육을 하는 친구를 보면

내 육아 성적표가 F점인 것 같아 스스로에게 실망스럽고 아이에게도 미안하다.

(아이가 둘이라는 것은 핑계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건 분명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맞기도 하다.

친구를 보며 아이에게 더 잘 맞춰줘야지 결심을 하지만, 동시에 부족한 엄마라 스스로 실망스럽기도 한다.


‘그리고 엊그제 외부 행사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친구와 아이를 보고 너무 반가웠고,

둘째도 당연히 반가워할지 알았다.


하지만, 둘째는 친구를 모른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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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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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당황스러웠다.

친구를 모른 척하는 모습을 처음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 그 친구랑 놀고 싶지 않다는 둘째의 말이 그때서야 귓가에 맴돌았다.


아이들은 놀면서 삐지기도 하고, 이내 풀기도 한다.

그걸 너무 크게 받아들이는 건 어른… ‘나’다.



그날 저녁 아이에게 왜 친구를 모른 척했냐고 물어보았는데

“아빠랑 똑같은 질문 그만해. 그날은 그냥 안 놀고 싶었어.”라는 말을 했다.

남편마저도 나처럼 아이를 추궁했구나.



아이가 안 놀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는데

내 입장에서 어른 입장에서 아이가 마음을 무시하는 건가..

하지만 이내, 자신의 아이를 모른 척했던 것을 목격한 친구의 마음도 신경 쓰였다.


지온이에게 그런 감정이 들었구나.

존중하고 싶지만, 참 내 마음이 (아이가 아닌, 순전히 내 상황) 편치 않다.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주고 싶다.

1980년대 태어난 나는 이미 경험했던 8살의 유니버스

그때로 돌아가보면

어제는 잘 놀았던 친구가 미묘한 감정으로 안 놀고 싶어질 때도 있고,

미웠던 친구가 이내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도 했었지….

내가 심각해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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