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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다림 Oct 22. 2021

단군신화는 언제 기록되었을까?

   우리 역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단군조선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오늘날 역사 기록이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일부 기록에 신화 형태로 간략하게 전할 뿐이다. 


   단군신화하면,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고려 충렬왕 때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를 떠올린다. 삼국유사가 편찬된 지 6년 후인 1287년에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편찬하였는데, 거기에도 단군신화가 실려 있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와 제왕운기의 단군신화는 큰 줄거리는 같으나 세부 내용에 있어서는 다르다. 이 책에서는 삼국유사보다는 제왕운기의 단군신화 기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것이다.


   한 때 일본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단군신화가 고려 때 몽골의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창작된 것이라는 학설이 제기되었고, 이것이 거의 통설처럼 받아들여진 적이 있었다. 아직도 일반인 중에는 이와 비슷한 인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고대사 학자들 중에 이러한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명확히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나는 위와 같이 전해지고 있는 단군신화는 고구려 때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본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많지만, 여기서는 그중 구체적으로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 하나를 제시한다. 




   이승휴는 제왕운기에서 ≪단군본기(檀君本紀)≫에 기록된 단군신화 내용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데, 그중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名檀君. 據朝鮮之域, 爲王. 故, 尸羅, 高禮, 南北沃沮, 東北扶餘, 穢與貊, 皆檀君之


※ 앞으로 특별한 언급이 없으면, 사료는 모두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혀 둔다.


   위 구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이름이 단군이다. 조선의 땅에 도읍하고 왕이 되었다. 그리하여 시라, 고례, 남북 옥저, 동북 부여, 예와 맥은, 모두 단군이 수()하였다(혹은 단군의 수이다)."

   여기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글자 '수()'의 해석이 문제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는 이를 "모두 단군의 후손이었다."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과연 타당한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제왕운기의 단군신화와 거의 동일한 내용이 실려 있는 '세종실록 지리지/평양부' 부분을 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단군고기(檀君古記)≫의 내용이 적혀 있는데, 그중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名檀君. 立國號曰朝鮮. 朝鮮, 尸羅, 高禮, 南北沃沮, 東北扶餘, 濊與貊, 皆檀君之理.


   앞서 본 제왕운기의 ≪단군본기(檀君本紀)≫와 표현이 일부 다르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동일하다. 위 문장은, '이름이 단군이다. 나라를 세워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 조선, 시라, 고례, 남북 옥저, 동북 부여, 예와 맥을 모두 단군이 다스렸다.'로 해석된다.


   이 구절에서는 마지막 글자가 '목숨 수(壽)' 자 대신 '다스릴 리(理)' 자로 되어 있다. 그런데 '리(理)' 자는 고려 시대 사람들이 고려 성종의 휘 '치(治)' 자를 피휘(避諱, 왕이나 황제의 이름에 들어간 글자를 쓰지 않는 것) 하기 위하여 사용한 글자다. 이것은 제왕운기에서 '일천 삼십팔 년을 다스렸다'는 구절을 '一千三十八年'이라고 표기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위 皆檀君之理는 원래 皆檀君之治였는데, 이를 피휘 하여 위와 같이 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이 고려 성종의 휘를 피휘 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위 세종실록 지리지에 실린 ≪단군고기(檀君古記)≫는 고려 성종 즉위일(981년)로부터 고려 멸망 시기(1392년) 사이에, 고려 성종 즉위일 이전에 기록되어 있던 책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거나 인용을 하면서, 성종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원래 책에 있던 '치(治)'자를 같은 뜻을 가진 '리(理)'자로 고쳐 썼고, 이것이 그대로 세종실록 지리지에 다시 기록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여하튼, 세종실록 지리지의 위 구절을 보면, 제왕운기의 '목숨 수(壽)' 자는 "다스린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한국사데이터베이스와 같이 '후손'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위 글자에는 '목숨, 수명, 장수'의 뜻은 있어도 '후손'이란 뜻은 없다. 




   그런데 '목숨 수(壽)' 자에 "다스린다"는 뜻은 더욱 없다. 어떻게 된 것일까? 혹시 '리' 자처럼 '수' 자도 피휘를 한 글자는 아닐까? 피휘를 할 때 동일한 뜻을 가진 다른 글자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글자의 획을 생략하거나 획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하기도 한다. 고려 왕들을 아무리 살펴봐도 이와 유사한 이름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런데 삼국사기 장수왕 본기를 보면, 뜻밖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장수왕 23년(435) 여름 6월에 왕이 사신을 위(魏)에 들여보내 조공하고, 또 그 나라의 휘(諱)를 청하였다. 세조(世祖)가 그 정성을 아름답게 여겨서 황제 계보와 휘(諱)를 기록하여 주게 하였다.


   위 기사는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한 장수왕 15년(427)으로부터 8년 후의 일이다. 위 기사에서 말하는 위나라는 선비족의 탁발씨가 세운 북위(北魏)를 말하는데, 북위 세조의 휘는 탁발도(拓跋)다. 그런데 '도()'라는 글자에서 아래쪽의 "灬"(이는 '불 화'자의 다른 모양이다)를 뺀 글자가 '목숨 수(壽)' 자다. 한편, '도(燾)'라는 글자는 '비추다. 덮다. 비호(庇護)하다. 편들어서 감싸 주고 보호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다스린다는 뜻과 통한다.


   결국, 앞서 본 제왕운기의 '수(壽)' 자는 '도(燾)' 자의 일부 획을 생략하는 방식으로, 북위 세조의 휘를 피휘 하기 위하여 사용한 글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단군이 '시라 내지 예맥' 지역 전체를 영역 지배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 지역을 그 세력권 내에 복속시켜 간접 통치하였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달리 말하면, '시라에서 예맥까지'는 단군의 직접 통치 영역이 아니라, 단군의 교화를 받는 단군의 천하(天下)에 속해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과 '시라 내지 예맥'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직접 통치한 것처럼 '다스릴 치(治)'자를 쓴 세종실록 지리지보다는 '조선' 지역과 '시라 내지 예맥' 지역을 구분하여 후자에 대하여는'비출 도(燾)'자를 쓴 것이 훨씬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광개토대왕비문에서 백제, 신라, 동부여를 '속민(屬民)'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고구려 사람들의 인식과 매우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광개토대왕비문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첨언을 하면, 제왕운기의 위 구절 중에 '예()'라는 글자가 나오는데, 고려 때에는 이 글자가 종족 명칭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대신 삼국사기나 세종실록 지리지에 보이듯이 '예()' 자가 쓰였다. 그런데 광개토대왕비문에는 한예(韓)라고 하여 앞의 글자가 보인다. 이 점에서도 제왕운기의 위 기록은 고려 때가 아닌,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문 작성 무렵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북위는 534년에 멸망하였으므로, 그 이후에는 북위 세조의 이름을 피휘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제왕운기에 인용된 ≪단군본기(檀君本紀)≫의 위 구절은 435년부터 534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만일 말로 전해지던 이야기를 위 기간 중에 처음 문자로 기록하였다면, 표현하려는 내용에 맞는 적절한 글자를 바로 찾아 쓰면 되므로, 굳이 뜻이 통하지 않는 '목숨 수(壽)' 자를 쓸 이유는 없다. 따라서 435년 이전에 위 구절이 기록된 어떠한 원전(原典)이 있었는데, 그 후 435년과 534년 사이에 위 원전의 내용을 옮겨쓰거나 인용할 때, 원전에 있던 '도(燾)' 자를 피휘 하기 위해 '목숨 수(壽)' 자를 대신 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제왕운기에 인용된 ≪단군본기(檀君本紀)≫의 원전(原典)은 장수왕 23년(435년) 이전에 기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원전은 어떤 책일까? 혹 국초에 편찬되었다는 유기는 아닐까? 지금으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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