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는 일이 수령이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이주시키는 일처럼 힘이 듭니다. 이불을 걷어내는 일도, 그 따스하고 평온하고 달콤한 침대 위에서 어깨를, 엉덩이를, 그리고 뿌리내린 지 백 년은 된 듯한 발을 침대 아래로 들어내게 한 뒤 다시 이불을 침대 모서리에 맞춰 파 놓은 자리도 어색하지 않게 이끼가 자라나고 다시 작은 풀들이 돋아날 동안 침대에 걸터앉아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 넘기며 이 숲을 떠나지 않을 수 있는 방도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수요일 아침이었습니다. 갑자기 차가워진 가을에 잘 훈련된 조교처럼 커피 포트에 물을 올리고 소파에 앉습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음악을 듣다가 음악 소리는 켜둔 채로 외투를 걸치고 신발을 신으며 생각합니다.
오래전 어릴 때부터 몸이 아파 15살이 되어서 중학교 검정고시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각각 패스해 버렸던 아주 예쁜 여자친구를 두었던 친구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학창 시절이라는 게 없었으므로 학교 다녔던 얘기들 주로 공부와는 별개의 얘기들을 해주면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쩜…. 어쩜 진짜 그럴 수 있단 말야...
를 연발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특히 봄 소풍이나 수학여행 얘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웃었다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흥미롭지 못했지만, 그녀는 친구의 이야기에 참석하지 못한 신나는 파티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그녀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 달라고 조를 때마다 그는 모든 이야기를 한 것에 후회한다는 얘기와 간혹 얘기를 시작하며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와 그녀는 부부가 되었구요 아직도 그녀는 그의 학창 시절이야기를 들으며 행복해한다고 하였습니다.
아직도 사랑스러운 친구의 아내에게 사기결혼을 말하곤 하지만 그녀는 사기꾼인 남자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일상은 매일 반복되며 새로운 얘기는 이미 해버렸고 특별한 얘기는 모두 다 써버렸습니다.
아침 산책을 하다가 백 원짜리 동전을 바닥에서 발견했습니다. 하늘은 아직 회색빛이어서 흐린 날에 잘 어울리는 동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떨어진 동전 하나를 그것도 일이라고 주위를 둘러본 뒤 허리를 숙여 주웠습니다.
그리곤 다시 걸으며 생각합니다. 이걸로 무얼 하지?
딱히 쓸 곳이 생각나지 않았으며 동전은 줍히는 일이 전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