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눈 오는 밤

점 점 사물에서 멀어지는 시

by 적적

신축 빌라 공사장에서 사는 검은 고양이는 공사장에서 키우는 고양이인지 공사장이라는 새로운 집에 이사를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전학 온 아이처럼 검은 고양이를 따라다니거나 맴돈 건 나였다. 눈 한 번 마주치는 일도 없었다 집으로 초대해 같이 저녁을 같이 먹자는 말도 못 했다 고양이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는 소름이 돋을 만큼 달랐고 돋아난 소름은 하나씩 닻을 내리고 흔들리지도 않았다.


종이컵을 잘라 사료를 덜어 고양이의 길에 놔두며 겨울이 잘 지나가길 건물모서리마다 숨어서 훔쳐보았다. 공공연한 밤들이 지나고 고양이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자는 걸 알아차리던 아침.


처음으로 발목에 제 몸을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가던 날 닻을 내린 소름이 돛대를 세워 바람 가득 돛을 부풀려 사라지는 밤이었다.


가로등 아래

흰 발등 쌓이네

불빛도 쌓여가는 시간


검은 고양이 누운 체온 위로

눈송이 뜬 눈을 감긴다.


한 잎 한 잎

뜯어낸 국화 꽃잎

향불 위 젖은 먼지

흰 상여


소리가 없는 장례식

조문객이 봉분을 만드는

keyword
수, 토 연재
이전 12화마크로스코의 일요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