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점 사물에서 멀어지는 시
신축 빌라 공사장에서 사는 검은 고양이는 공사장에서 키우는 고양이인지 공사장이라는 새로운 집에 이사를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전학 온 아이처럼 검은 고양이를 따라다니거나 맴돈 건 나였다. 눈 한 번 마주치는 일도 없었다 집으로 초대해 같이 저녁을 같이 먹자는 말도 못 했다 고양이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는 소름이 돋을 만큼 달랐고 돋아난 소름은 하나씩 닻을 내리고 흔들리지도 않았다.
종이컵을 잘라 사료를 덜어 고양이의 길에 놔두며 겨울이 잘 지나가길 건물모서리마다 숨어서 훔쳐보았다. 공공연한 밤들이 지나고 고양이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자는 걸 알아차리던 아침.
처음으로 발목에 제 몸을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가던 날 닻을 내린 소름이 돛대를 세워 바람 가득 돛을 부풀려 사라지는 밤이었다.
가로등 아래
흰 발등 쌓이네
불빛도 쌓여가는 시간
검은 고양이 누운 체온 위로
눈송이 뜬 눈을 감긴다.
한 잎 한 잎
뜯어낸 국화 꽃잎
향불 위 젖은 먼지
흰 상여
소리가 없는 장례식
조문객이 봉분을 만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