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조된 방식이 다른 것처럼.
사람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그 말투나 걸음걸이, 머리카락을 넘기는 방식보다 더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말하지 않는 습관. 질문을 받을 때 살짝 흔들리는 동공, 웃을 때 눈꼬리에 떠도는 미세한 슬픔, 그리고 말끝을 흐릴 때의 망설임. 거기에는 반드시 무언가 감춰져 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고요한 비밀. 그러나 그건 곧 사라지지 않는다. 형태는 바꾸지만, 패턴은 남는다. 비밀은 반복의 흔적으로 무늬를 만든다.
처음에는 몰랐다. 감추고 싶은 것들은 그저 검은 점처럼 조용히 마음 한구석에 박혀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조용히 퍼졌다. 때로는 행동이 되고, 말투가 되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그리고 어느 날,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드러났다. 좋아하는 색, 고르는 단어, 문장을 끝맺는 방식, 불쑥 끊어지는 대화. 비밀은 언제나 겉모습이 아니다. 그 사람 안에서 조용히 형성되는 결. 누군가는 그것을 성격이라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람 됨됨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건 결국 살아남기 위한 패턴이다. 오래된 비밀이 만든 무늬.
그렇다면, 비밀은 언제 생겨나는 걸까. 모두가 처음부터 마음에 굴곡을 가진 채 태어나는 건 아니다. 어떤 비밀은 타인의 말에서 시작되고, 어떤 비밀은 자신에게 실망한 밤에 생겨난다. 때론 사랑에서, 때론 상실에서, 혹은 아무도 보지 않았던 순간에 조용히 태어난다. 말해도 되지 않았던 마음. 울 수 없었던 저녁. 그 침묵들이 마음에 쌓이고, 어느새 삶의 결이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무늬가 더 뚜렷해진다. 한 번은 사랑하던 사람이 내게 말했다. "넌 항상 중요한 순간에 웃는구나." 그 말이 잔잔히 아팠다. 웃음이 아니라 방어였다. 정수리까지 차오르는 감정을 눌러두려는, 오래된 회피의 습관. 기쁨의 얼굴을 하고 있는 고통. 그 사람은 몰랐겠지만, 그 순간 나는 들켰다는 기분을 느꼈다. 들켰다는 건, 무늬를 알아차렸다는 뜻이다. 비밀은 형태가 없지만, 그 흔적은 문양처럼 남는다. 꿰뚫어 보는 이의 눈에만 보이는 잉크처럼.
거울을 오래 보면 자신의 표정이 낯설어진다. 웃고 있어도 눈동자는 웃지 않는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눈꺼풀, 살짝 마른 입술, 자기도 모르게 흘리는 한숨. 무심한 듯 보이는 일상의 제스처들에 얼마나 많은 비밀이 숨어 있는가.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니, 이야기할 수 없다. 그건 단순히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어떤 비밀은 말로 꺼내는 순간, 그것이 지닌 고유한 무늬가 사라진다. 마치 오래된 천의 염색이 빠지듯.
비밀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강하다. 그것은 균열을 만들고, 침묵을 길들이며, 결국 나를 나 아닌 것처럼 만든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에게서 도망치기도 한다. 관계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얼굴을 쓰고, 새 옷을 입는다. 그러나 무늬는 사라지지 않는다. 문장 속에, 목소리의 높낮이에, 시선을 회피하는 습관 속에 남는다. 감정이 방향을 틀 때마다, 무늬는 조금씩 진해진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그 무늬는 변화하기도 한다. 다만 그것은 누군가가 진심으로 내 안의 결을 쓰다듬어줄 때, 아주 서서히 가능해진다. 기억이 반복을 멈추는 순간, 무늬는 다시 짜이기도 한다.
사랑이 끝나면,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거야.” 그러나 원래 그런 사람은 없다. 다만 비밀의 무늬를 끝까지 읽지 못했을 뿐이다. 그 무늬는 표면 아래 있었고, 우리는 대화와 피부와 꿈속에서 그것을 놓쳤다. 사랑이 무너지는 데는 이유가 없다. 다만 무늬를 감당할 수 없었을 뿐. 그 사람 안의 비밀이 나와 다른 결로 짜여 있었을 뿐.
밤에 혼자 깨어 있을 때면 가장 선명하게 보인다. 책상 위의 그림자, 유리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 바닥에 떨어진 손톱 조각 같은 사소한 것들 안에서 과거의 무늬들이 떠오른다. 그때 했던 말, 하지 않았던 말, 끝내 묻지 못했던 질문들. 그 모든 것들이 얼룩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다. 지워지지 않는 감정의 잔흔. 비밀은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애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진한 자국이 된다.
이제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침묵’을 먼저 본다. 말보다 말 사이를 듣고, 설명보다 설명을 피하는 순간을 관찰한다. 그 속에 오래된 비밀이 있다. 그리고 그 비밀은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무늬가 되어 나타난다. 그 사람만의 감정의 직조. 우리는 모두 각자의 패턴을 입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것을 삶의 방식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살아남은 기억의 방식이다.
친구 중 한 명은 항상 이별을 앞두고 물건을 정리한다. 냉장고 자석 하나, 머그컵 하나, 카톡 배경 하나씩을 없앤다. 사소한 그 정리 속에는 말 못 할 예감과 감정이 담겨 있다. “그냥 미리 치우는 게 편해서.”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 습관이 슬펐다. 끝을 준비하는 방식조차도 비밀의 무늬였다. 상처를 입기 전에 스스로 결을 정리해 두는 방식. 애착과 회피의 모양이 겹쳐진 문양.
비밀을 갖고 살아간다는 건, 누구에게도 완전히 도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외롭다. 이해받는다는 건, 내 무늬가 다른 사람의 무늬와 맞닿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건 쉽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무늬는 서로 어긋난다. 같은 색이라 착각해도 결이 다르고, 촉감이 다르다. 그 어긋남을 사람들은 ‘오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은, 그건 너무나 정직한 진실이다.
내 무늬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건 기적에 가깝다. 말하지 않아도, 물어보지 않아도, 그저 나의 반복된 침묵과 흔들림 속에서 ‘무엇을 말하지 않고 있는지’를 알아봐 주는 사람. 비밀이 언어가 되기 전, 그것이 갖는 무늬를 포착하는 사람. 그런 만남은 한 생에서 몇 번 없고, 그마저도 대부분은 흘러간다. 그러나 그 희박한 가능성 때문에 사람은 또다시 관계를 시작한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무늬를 덜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무늬를 바라본다. 말이 없는 표정과 조심스러운 손끝, 의미 없이 반복되는 말버릇 속에서 오래된 감정의 자수를 읽는다. 그것은 어쩌면 사랑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말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무늬를 따라 손가락을 조심스레 얹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네 안의 어둠도 결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방식으로.
비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의 손길 아래, 결이 변하고 무늬가 바뀔 수는 있다. 언어 이전의 감각이 서로를 감쌀 때, 우리는 조용히 서로를 짜내려 간다. 서로의 비밀을 조금씩 덜어 내며, 새로운 무늬로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우리는 모두 그런 비밀의 직조물 안에서, 조용히 서로를 감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늬로 서로를 읽는다. 손가락 끝에 남은 감정의 요철을 따라, 다 말해지지 않은 문장 너머의 체온을 따라. 서로를 향해 건네는 말들은 사실상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리가 진짜로 나누는 건, 그 말이 닿지 못한 여백에서이다. 말을 멈춘 순간의 눈빛, 돌려 말한 감정의 곡선, 그 사람의 어깨가 아주 살짝 내려앉는 저녁의 자세. 그런 것들이 기억의 천 위에 실처럼 박힌다. 너무 얇아서 찢어질 것 같은 마음, 너무 조용해서 잊힐 것 같은 감정,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모여 비로소 한 사람의 결이 된다. 그리고 누군가 그 결을 만졌을 때,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것이 있다. 오래된 슬픔이 물처럼 스미고, 닿지 못했던 감정이 작은 떨림으로 응답하는 순간. 우리는 그제야 안다. 아무도 몰랐던 나의 비밀이, 누군가의 마음에서 조용히 해독되고 있었다는 것을. 이해란 말의 기술이 아니라 감각의 패턴이다. 그렇게
삶은 서로의 결을 더듬어가는 시간이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외면하며, 그러나 간혹 아주 드물게 맞닿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말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저 '알아차렸다'는 직감, 함께 무늬를 읽고 있다는 신호. 그것이면 충분하다. 비밀은 여전히 말해지지 않았지만, 그 결을 함께 짊어질 사람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조금 더 살아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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