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택 없이 오래가는 글에 관하여
빛이 가장 먼저 닿는 것은 금이 아니라 은이다.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 그 찬란함을 위해 어두운 손이 준비된다. 첫 문장은 항상 빛의 방향을 잴 수 없는 상태에서 나온다. 마치 깨어나지 않은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은세공사가 무겁고 고요한 숨을 들이쉬듯.
은은 부서지기 쉬운 금속이다. 부드럽고 연약하며 작은 힘에도 상처가 남는다. 그 미세한 상처로 들어간 망치는 방향을 잃지 않는다. 글 또한 그러하다.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문장을 향해 의식의 망치가 떨어질 때, 종이 위에는 일종의 울림이 남는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혹은 어디를 향해 가는지조차 모른 채, 단지 손은 움직인다.
새벽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업이다. 말이 식기 전에, 단어가 자신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 전에 다듬어야 한다. 은세공사가 도면도 없이 금속을 만지작거리는 것처럼, 글을 쓰는 자는 계획 없는 공간 안에서 가장 연약한 선을 고른다. 단단한 문장을 만들기 위한 가장 유약한 시작. 그 유약함이 없으면 문장은 부서진다. 혹은 아예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은은 공기 중의 황화수소와 쉽게 반응한다. 시간이 지나면 검게 변하고, 어두운 층이 얇게 덮인다. 쓰여지고 나서야 본색이 드러난다. 처음에는 그럴싸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의미가 바래거나, 생각보다 진부하거나, 누군가의 문장을 베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은세공사는 광을 낸다. 끊임없이 문지르고, 닦고, 다시 다듬는다. 글을 쓰는 손도 글을 다듬는다. 의미의 산화는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더 깊은 결로 바꾸는 일은 가능하다.
때로는 정교함이 감정을 지운다. 너무 매끈하게 가공된 문장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은세공사는 아주 미세한 결을 남긴다.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결을 따라 시선을 옮기게 만든다. 그래서 약간의 거침이 필요하다. 고의로 남긴 흠집. 계산되지 않은 여백. 그것이 문장을 살아 있게 한다.
은세공사의 손은 항상 무언가를 느낀다. 보이지 않는 틈, 미세한 균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굴곡.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 안다. 문장의 끝을 눈이 아니라 촉각으로 느낀다. 말이 끊기는 지점, 의미가 흐릿해지는 구간, 또는 문장 사이의 온도. 독자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글쓴이는 손끝으로 먼저 안다.
시간이 흐르면 은은 숙성된다. 그 빛은 처음보다 덜 눈부시지만, 더 깊어진다. 글도 그렇게 변한다. 초고는 번득이지만 얕고, 수정을 거듭한 문장은 빛나진 않아도 눅진하다. 다듬는 동안 단어들이 서로에게 기대고, 문장들이 서로를 밀어낸다. 그 속에서 균형이 생긴다. 절제된 문장. 감정을 절반만 드러낸 표현. 침묵이 깃든 단락. 이 모든 것이 오래된 은처럼 빛난다.
은세공사의 하루는 말이 없다. 작업실은 늘 조용하고, 가장 많은 소리는 숨소리다. 글을 쓰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무음의 반복. 생각은 소리가 없다. 그 대신 단어들이, 이미지들이, 문장들이, 형체 없는 무게로 머릿속을 떠돈다. 그들을 붙잡는 일은 생존처럼 치열하다. 가끔 손이 멈춘다. 은은 쉽게 찢어진다. 예상치 못한 틈에서 파열이 생기면, 모든 흐름이 끊긴다. 그 순간 은세공사는 모든 도구를 내려놓는다. 말 그대로 멈춘다. 의미가 더 이상 흐르지 않으면 펜을 놓는다. 억지로 이어가는 문장은 곧장 들킨다. 독자는 무감각하지 않다. 감정 없는 문장에 담긴 공허는 생각보다 더 크고 날카롭다.
글쓰기는 고치는 일이다. 처음 쓰는 것은 글이 아니라 재료다. 글로 만들기 위해 쓴 초고는 단지 무광의 덩어리에 불과하다. 다듬고 깎고 부순다.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부숴야 한다. 아까운 문장부터 없앤다. 화려한 단어부터 지운다. 너무 시적인 표현을 제거하고, 너무 친절한 설명을 덜어낸다. 그렇게 나머지만 남긴다. 불필요한 아름다움을 벗겨낸 뒤, 그 밑에 있는 진짜 문장을 찾는다. 장식을 줄이고, 본질만 남긴다.
작업을 끝낸 은세공사는 작품을 바라보지 않는다. 완성된 것에 오래 시선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시간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다 쓴 문장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히려 쓰지 못한 문장이 마음에 남는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표현, 아직 감히 시도하지 못한 문장들. 그것들이 다음 날의 작업실을 채운다.
은세공사의 손에는 언젠가 만들어진 수천 개의 무늬가 각인되어 있다. 작업실에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손은 기억한다.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쓰는 손도 과거의 문장을 기억한다. 독자에게 보이지 않는 기록들. 시도했다 실패한 표현들. 지워졌던 단어들. 떠오르다 사라진 이미지들. 모든 것이 손의 기억 안에 저장된다. 그 기억이 새로운 문장을 만든다.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이다. 그러나 외롭지는 않다. 금속을 다듬는 동안 은세공사는 세상과의 대화를 멈춘다. 그 침묵 속에서 금속은 말을 건다. 단어들이 조용히 속삭일 때, 문장은 살아난다. 그것은 세상의 언어가 아닌, 손과 금속, 손과 글 사이의 언어다. 완벽한 문장은 없다. 완전한 조형도 없다. 하지만 그 불완전 속에서, 은세공사는 다시 망치를 든다. 문장을 향해 손을 움직인다. 빛이 닿기 전, 어둠 속의 작업은 계속된다.
망치를 든다. 고요한 무게가 손바닥 안에서 재조정된다. 망치는 도구가 아니라 연장된 신체다. 힘을 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힘을 조율하기 위한 감각기관. 작은 흔들림에도 반응한다. 손목의 각도, 망치의 중심축, 날숨의 길이, 그리고 금속의 대기. 모든 요소가 한순간에 정렬될 때, 망치는 움직인다. 은은 저항하지 않는다. 저항하지 않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다.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힘을 빼는 것이 기술이 된다.
은의 표면 아래, 아직 드러나지 않은 형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도면에도, 상상에도 없다. 오직 반복된 망치질을 통해서만 발현되는 무언가다. 마치 잘못 두드리면 사라질 꿈처럼, 문득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을 안고 있다.
손은 더욱 조심스럽다. 리듬은 일정하고, 호흡도 일정하고, 망치의 진동이 팔꿈치까지 전해진다. 단어 하나가 어긋나면, 문장 전체가 비틀린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듣는다. 금속의 미세한 울림. 문장의 내장된 떨림.
작업대 위의 은은 점점 얇아진다. 얇아질수록 더 많은 것을 품게 된다. 강도가 약해지는 대신, 온도를 담고, 진동을 품고, 시간의 흐름을 흡수한다. 문장이 단순해질수록 더 많은 뜻이 들어간다. 수식이 사라지고, 형용사가 지워지고, 주어와 목적어만 남을 때, 그 속에 들어가는 의미는 오히려 늘어난다. 망치질은 점점 정밀해지고, 강도는 줄어들며, 움직임은 느려진다. 침묵에 가까워진다. 말이 아닌 침묵의 힘. 그것이 은의 결을 만든다.
어느 순간, 손이 멈춘다. 더 이상 두드릴 수 없다는 판단은 직감처럼 온다. 더하면 부순다. 덜하면 미완이다. 그 사이의 간극은 계산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경험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다. 일종의 시간의 밀도다. 손이 기억한 수천 번의 실패와 수백 번의 깨짐과 몇 번의 성공이 하나의 감각으로 모인다. 그 직감으로 인해 손은 멈춘다. 침묵이 다시 돌아온다.
은세공사는 작품을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작업대의 먼지를 닦는다. 사용한 망치를 닦고, 그립을 정리하고, 부러질 뻔한 날을 갈아둔다. 문장을 다 쓴 자가 텍스트를 덮고, 키보드를 닫고, 포스트잇의 자국을 지우는 것과 같다. 본질은 늘 뒤처리에 있다. 형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여백이다. 남은 자리를 비워두는 기술. 더하지 않음의 용기.
그날의 작업은 실패였다. 완벽하지 않은 균형, 미세한 틀어짐, 예상하지 못한 결의 번짐. 하지만 오히려 그런 틈에서 새로운 문양이 탄생하기도 한다. 의도와 어긋난 선. 계산하지 않은 결. 예술은 어긋남을 통해 움직인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비로소 생명이 들어간다.
은세공사는 다음 날도 같은 시간에 망치를 든다. 작업대 위의 조용한 전투. 진동을 통해 울림을 만든다는 것.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반복 속에서 나타나는 작은 차이. 그것을 포착하는 감각.
그것이 세공사의 하루, 글쓰기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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