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의 문장들

익는가 쏟아지는가.

by 적적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끝이 간지러워질 때, 문장이 비로소 시작된다. 무언가를 쌓는 일에는 대개 시간이 필요하다. 고추장을 담는 일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발효와 침묵과 기다림을 견디는 일이다.



단맛과 짠맛, 매운맛과 쿰쿰한 냄새. 그 모든 것이 항아리 안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말은 숙성되어야 한다. 한 번 끓어오른 열기를 지나, 미세한 발효의 흔들림이 멈출 때까지 고요히 있어야 한다. 고추장에는 시간이 필요하듯, 글에도 온도가 있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아야 하는 적정한 미온. 언어의 점도가 어느 정도 굳어지고 나서야 문장은 비로소 제 향을 품는다.



첫 문장은 소금을 넣는 일이다. 시작은 언제나 뻣뻣하고, 조금은 공격적이다. 말이 서툴고 날 것이어서, 혀를 찌르듯 짜다. 그러나 소금은 방부다. 문장이 부패하지 않도록, 가장 먼저 뿌려야 하는 보존의 의식이다. 소금은 말의 균형을 잡는다. 절여지고, 녹아들고, 감춰지면서 그제야 발효가 시작된다.



다음은 고춧가루다. 가장 눈에 띄고, 가장 쉽게 드러나는 붉은색. 열정과 분노와 감각의 층이 켜켜이 쌓인다. 격렬한 문장, 잘게 부서진 사유의 파편. 그러나 그 자체로는 아직 먹을 수 없는 상태다. 아직은 날 것이고, 아직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들. 고춧가루는 모든 말의 중심을 흔드는 불씨다. 이 붉은 언어가 없으면, 글은 제맛을 내지 못한다.



물엿은 감정이다. 끈적이고 투명하며, 문장 사이를 연결하는 감정의 맥. 고추장의 단맛은 물엿에서 오고, 글의 유려함도 거기서 온다. 억지로 붙인 문장은 들러붙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감정이 섞이면, 단어들은 서로 엉기며 하나의 맛을 만든다. 물엿은 연결의 기술이다. 뜨거운 마음이 녹아내리듯, 문장에 흘러드는 감정의 결.



메주는 기억이다. 오래된 사건, 쉽게 사라지지 않는 냄새. 발효를 위한 핵심은 언제나 이 오래 묵은 덩어리에서 비롯된다. 글은 결국 기억의 반죽이다. 이미 지나간 것, 이미 끝난 것, 그러나 여전히 언어 안에서 살아 있는 것들. 메주를 넣지 않으면, 고추장은 그저 양념일 뿐이다. 과거라는 단단한 메주가 없으면, 문장은 허공을 부유할 뿐이다.



이 모든 재료를 섞고 나면, 항아리가 필요하다. 그릇은 외부와 단절된 세계다. 글을 쓰기 위한 공간,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고, 아무 말도 새어 나가지 않는 봉인의 시간. 항아리에 문장을 붓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밀봉하는 일이다. 누구도 들여다보지 못하게,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이 침묵의 시기가 없다면, 문장은 발효되지 않는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문장은 더욱 무르익는다.



그저 붓고 기다리는 일. 말은 말 위에 덧대어지고, 생각은 생각 위에 겹겹이 앉는다.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짠맛은 감춰지고, 고춧가루의 거친 질감도 부드러워진다. 단맛은 더 도드라지고, 기억은 감정과 어우러져 깊은 향을 낸다. 고추장이 발효되는 동안, 글도 자란다. 문장 사이의 공백에 조용히 균이 번식하고, 독자가 모르는 사이에 뜻은 더 복잡해진다. 읽을 수 없던 문장들이 어느 날 문득 읽힌다. 이해되지 않던 말들이 미각처럼 감지된다.



모든 고추장이 다 맛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너무 빨리 담았고, 때로는 기다리지 못했고, 때로는 재료가 뒤섞이지 않았다. 그래서 실패한 글은 늘 있다. 냄새만 나고 맛은 없는 글, 외형은 그럴듯하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문장. 그런 문장들은 발효를 기다리지 못하고 쏟아진 말들의 잔해다. 읽는 이를 헛구역질 나게 하고, 쓰는 이마저 창피하게 만든다.



발효란, 시간을 건넌 감각이다. 고추장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동안 맛은 깊어지고, 침묵은 말을 이긴다. 좋은 글이란 그런 것이다. 쏟아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숙성된 것.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항아리 속에서 뭉근히 익은 것.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내부는 치열한 발효의 시간.



마지막 순간, 누군가 고추장을 한 숟갈 떠먹을 때, 단순히 ‘맵다’고 말하지 못한다. 짠맛, 단맛, 쓴맛, 그리고 묵은 냄새. 모든 맛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각. 좋은 글도 그렇다. 한 문장 안에 여러 결이 얽혀 있어, 어떤 독자는 단맛을 먼저 느끼고, 어떤 독자는 쿰쿰한 냄새를 먼저 맡는다. 그것은 읽는 이의 기억과 겹쳐져 다른 맛이 된다. 어떤 이는 울컥하고, 어떤 이는 웃는다. 고추장을 입에 넣고 흘리는 표정처럼, 글은 독자의 얼굴을 변하게 만든다.


가끔은 너무 오래 묵힌 고추장도 있다. 꺼내기도 전에 겁이 나고, 열자마자 이상한 냄새가 퍼지는 문장. 그러나 그런 글도 누군가에게는 유효하다. 오래된 말속에서 우연히 살아 있는 하나의 단어를 발견할 때가 있다. 언어는 죽지 않는다. 발효된 말은 어떤 형태로든 남는다. 그것이 고추장의 힘이고, 글의 힘이다.

결국, 하나의 고추장을 담는 일이다. 기꺼이 오래 걸릴 것을 감수하는 일. 즉시 맛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 그 기다림의 끝에서 누군가가 말한다. "이거, 어디서 배운 맛 같아." 낯선데 익숙하고, 진한데 부드러운 글. 발효된 언어가 독자의 혀를 감쌀 때, 글쓰기는 비로소 하나의 장이 된다.



다시 시작이다. 또 다른 항아리, 또 다른 발효. 늘 처음처럼 서툴고, 매번 새롭게 불안하다. 그래도 매년 장을 담는 이처럼, 누군가는 다시 빈 종이를 꺼낸다. 이번에는 더 오래, 더 깊게, 더 조용히. 단어들이 익기를 기다리며.



글을 쓴다는 건, 말이 아니라 시간을 담는 일이다. 감정이 아니라 기다림을 적는 일이다. 손끝에 남은 고춧가루 냄새처럼,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문장을 남기는 일이다. 매번 실패할지라도, 매번 너무 짜거나 너무 맵거나 너무 오래 묵힐지라도, 다시 항아리를 꺼내게 되는 건 어쩌면 그 실패 안에 숨어 있는 어떤 기척 때문이다.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들, 아직 발효되지 않은 마음들, 아직 입에 넣어보지 못한 의미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침묵이 있고, 견디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침묵도 있다.



좋은 문장은 화려한 문장이 아니라, 견딘 문장이다. 잘 발효된 고추장이 그 자체로 완성인 것처럼, 잘 숙성된 글은 독자의 안쪽으로 스며들어 돌아 나올 길을 잃는다. 한 문장이, 한 단어가, 혀끝이 아닌 심장에 눅진하게 들러붙는 그 느낌. 잊혔다가 어느 날 문득 다시 떠오르는 맛. 글은 그런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읽고 나서도 오래도록 입안에 남는 맛처럼. 그 여운을 위해, 오늘도 다시 장을 담는다. 말보다 느리고, 감정보다 깊고.



침묵보다 확실하게 오래가는 언어.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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