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문장들

기억과 상상 사이에 세운 공간

by 적적


물건을 줄이기 시작했다.

책장을 비우고, 오래된 옷을 내보내고, 기억에만 남아 있는 물건들에 손을 뻗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자주 손이 가는 것들만 남겼다. 매일 쓰는 컵 하나, 검은색 펜 두 개, 계절마다 반복해서 읽게 되는 문장 몇 줄. 삶의 외피를 벗겨내는 일이 아니라, 필수의 윤곽을 다시 긋는 작업이었다. 여백이 많아질수록 공간은 숨을 쉬었고, 그제야 작은 방은 제 목소리를 냈다. 비로소 존재의 형태가 드러났다. 무언가를 더 들여놓는 대신, 더는 쓸모없는 것들을 보내는 것. 글을 쓰는 일도 그와 같았다. 협소주택을 짓는 일처럼. 더는 들여놓지 않아도 될 문장과 불필요한 감정선, 지나치게 부풀어진 비유를 하나씩 덜어내는 일. 쓰지 않는 문장은 언젠가 벽이 되고, 쓰고 싶은 문장은 창이 된다. 그 작은 틈을 통해 바람이 드나든다.



처음에는 넓게 쓰고 싶었다.

풍경이 다 보이도록, 인물이 모든 방향에서 조명을 받도록, 설명이 독자의 숨결보다 빠르게 따라붙도록.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지나치게 넓은 글은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는 것을. 마음은 언제나 집보다 커서, 자꾸만 벽을 밀고 나가려 했다. 그러나 벽이 없으면 공간은 사라진다. 모든 것이 자유롭게 떠다니는 곳에는 중심도 없고, 돌아올 자리도 없다. 벽이 많으면 방은 좁아지지만, 그만큼 구조가 명확해진다. 작은 집에는 사치가 들어설 틈이 없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알아야 하고, 문 하나가 침묵의 규칙을 바꾸어놓는다. 글도 마찬가지였다. 첫 문장은 언제나 입구였다. 다락방으로 향할 수도, 어둡고 깊은 지하로 내려갈 수도 있었다. 그 문장을 통과한 뒤에는 되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독자는 신발을 벗었고, 방의 구조 안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가구를 놓는 법을 배웠다.

지나치게 무겁지 않아야 하고, 공간의 흐름을 막지 않아야 하며, 동시에 기능을 지녀야 했다. 글에서도 그런 문장을 만들고 싶었다. 장식적인 문장이 아니라, 자리를 차지하면서도 의미를 밀어내지 않는 문장. 때로는 아무것도 없는 벽처럼, 흰 공간이 말하고 있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문장. 문장들이 서로의 기능을 의식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구조. 마치 좁은 주방에서 손이 닿는 거리마다 필요한 도구가 놓여 있는 것처럼. 그래서 문장을 고칠 때마다 문 하나를 닫고, 창을 옮기고, 계단의 방향을 틀었다. 결국 단어 하나가 방을 바꾸었다. 어떤 문장은 너무 요란해서, 어떤 문장은 너무 어두워서, 글 전체의 균형을 흔들었다. 배치의 예술은 결국, 침묵이 있는 자리에 정확히 침묵을 놓는 일이었다.



높이를 의식하게 된다.

평면에만 집중할 수 없다. 좁은 집은 위로 자란다. 수직으로 쌓는 일은 균형의 문제였다. 문단 위에 문단을 올리며 어느 지점에서는 멈춰야 했다. 더 올리면 무너지고, 덜 올리면 설득력을 잃는다. 감정도 그랬다. 누적된 감정은 마치 무게를 견디는 기둥처럼 보였지만, 견고함이란 늘 예상보다 불안정했다. 너무 일찍 울게 하면 독자는 피로했고, 너무 늦게 울게 하면 이야기의 구조가 흔들렸다. 감정의 층위를 정확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이야기는 중심을 잃었다. 마치 머리 위의 다락에 올라서다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는 것처럼. 다락이란 언제나 위험과 기대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 문장들은 언제나 그 다락 끝에 닿아 있어야 했다. 미완의 완성. 올라갈 수는 있지만, 다 열어 보일 수는 없는 구조.



무엇을 감출 것인가. 무엇을 드러낼 것인가.

협소한 공간에서 비밀은 명확하다. 숨길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섬세하게 감춰야 했다.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 눈에 띄지 않지만, 꼭 필요한 서랍 같은 것. 글을 쓸 때 가장 공들였던 것은 그런 부분이었다. 독자가 문장을 지나치듯 읽다가 어느 순간 그 서랍을 발견하게 되는 것. 그것은 놀라움과 연결되어 있고, 기억에 오래 남는 문장은 대부분 그런 식의 감춤과 관련되어 있다. 드러낸 진실보다 숨긴 거짓이 더 오래 기억되는 법이다. 모든 것이 보이는 집은 빠르게 잊히지만, 어딘가 문 하나가 닫혀 있는 구조는 상상력을 부른다. 질문을 남기는 글, 대답보다 고요한 침묵이 길게 머무는 글. 그 작은 비밀 하나가 결국 독자와 글을 다시 이어주는 통로가 된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좁은 집은 그 자체로 불편했다. 움직일 때마다 타인의 호흡이 가까이 느껴졌고, 어떤 날은 이 벽 하나를 넘어설 수 있을까 생각했다. 글도 마찬가지였다. 이 문장이 과연 읽힐 수 있을까, 이 구조가 사람을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의심과 반복의 나날이었다. 좁은 집은 결국 살아내는 방식이 된다. 글도 마찬가지다. 쓰는 동안 자신이 만들어낸 방에서 살아야 하며, 그 삶은 어느 정도의 불편함과 타협에서 비롯된다. 중요한 것은 그 타협이 무너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감각이었다. 너무 편안한 글은 쉽게 소비되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한 번 읽고 잊히는 방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다시 열어보고 싶은 방을 만들고 싶었다. 협소하더라도, 다시 찾아오는 공간. 불편함은 그 공간에 눌러앉게 하는 중력이다.



벽을 손수 칠하고, 마감재를 고르고, 문의 손잡이를 직접 다는 일처럼, 문장을 쓰는 일은 디테일로 향했다.

초고를 쓸 때는 몰랐던 자잘한 리듬, 생략된 주어, 지나치게 무거운 부사를 다시 본다. 글의 톤이 벽지의 색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단어 하나가 전체 분위기를 바꾸기도 했다. 좁은 공간은 작은 변화에 민감하다. 단어 하나를 바꾸었을 뿐인데, 이야기는 전혀 다른 감정선으로 이어진다. 거실이었던 문장이 부엌으로 바뀌고, 독자가 앉을자리를 의식하며 마지막 문장을 닫는다. 독자는 들어와 앉고, 방의 침묵을 읽는다. 그렇게 완성된 글은 작지만 단단한 구조체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뼈대와 문장 사이의 숨결이 공간을 만든다. 어느 것도 우연으로 두지 않는 일. 그 불완전한 집에서 오래 살아내기 위해, 문장은 무수히 덜어지고 정돈된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그 좁은 데서 어떻게 살아?” “그렇게 단출하게 써서 무슨 이야기가 되겠어?” 하지만 정작 살아본 사람만이 안다. 작은 공간일수록 바깥을 더 넓게 상상하게 된다는 것을. 글쓰기도 그러하다. 협소하게 쓰면 쓸수록 독자의 상상은 확장된다. 모든 걸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여백은 기능을 얻고, 독자의 경험은 문장과 충돌하며 새로운 감정을 만든다. 쓰는 자는 구조를 설계하지만, 그 공간 안에서 살아갈 방식은 독자에게 남겨진다. 그들의 숨소리와 기억, 개인적인 상처와 고요가 글의 빈틈을 채운다. 작게 썼지만, 넓어지는 글.



그래서 다시 책상을 정돈한다.

최소한의 문장들로 최대한의 공간감을 상상하며, 창 하나를 단다. 그 창은 독자의 쪽으로 열린다. 바람이 드나들고, 밤이면 별빛이 스며든다. 어떤 날은 별 대신 비가 들고, 어떤 날은 그냥 흐린 마음이 들어와 눌러앉기도 한다. 그 문장이 작은 방에 빛을 더한다. 그렇게 글은 협소주택처럼 세워진다. 작고 단단하며, 오래 살아도 질리지 않는 구조.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만은 놓치지 않는 집. 지금도 그 집 하나를, 조용히 짓고 있다.



작고 낮지만, 무너지지 않는 문장으로.

좁지만 깊은 이야기로.

견고하지만 말없이 환대하는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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