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추출로 완성되는 문장의 방식
더치커피메이커를 처음 만든 날이 떠오른다. 투명한 페트병을 자르고, 필터를 고정시키고, 커피 가루를 채우는 일. 그 모든 준비는, 너무도 성실했지만 동시에 우스웠다. 전문가들이 쓰는 장비가 아닌, 재활용품으로 조립한 조악한 기계. 정성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서툴고 엉성한 문장이 모여, 어느새 하나의 문단이 되고, 하나의 문단이 문맥을 이루고, 결국 하나의 호흡을 만든다.
페트병을 조심스럽게 눕힌다. 손에 쥔 커터칼이 바스락거리며 플라스틱 표면을 스친다. 자를 위치는 대략 병의 윗부분, 라벨이 붙어 있던 경계선 근처다. 칼날이 파고드는 소리, 끼익, 미세하게 퍼지는 소리. 투명한 겉면이 뚝— 하고 갈라진다. 병의 윗부분을 잘라낸다. 그러면 길쭉한 컵처럼 된 아래쪽이 남고, 잘라낸 위쪽은 깔때기처럼 된다. 깔때기 쪽을 거꾸로 뒤집어 입구가 아래로 향하게 한 후, 그 끝에 작은 구멍을 뚫는다. 물이 아주 천천히, 방울방울 떨어질 정도의 구멍이어야 한다. 젓가락 끝이나 뾰족한 바늘로 꾹 눌러 만든다. 여기서 구멍이 너무 크면 실패다. 더치는 속도의 예술이니까.
그다음은 필터. 시중에 파는 종이 필터를 반으로 접어 고깔처럼 만들고, 병 입구 안쪽에 조심스레 끼운다. 고정되지 않으면 커피 가루가 새어 나오므로 접힌 부분을 바깥쪽으로 펼쳐 병 입구의 경계에 잘 밀착시킨다. 그 위에 갈아놓은 커피 가루를 천천히 붓는다. 너무 곱게 갈면 물이 내려오지 않고, 너무 거칠면 맛이 흐려진다. 중간 정도, 약간의 저항이 느껴지는 입자. 한 스푼, 두 스푼, 정량을 채운다. 커피 가루가 평평하게 깔리도록 젓가락으로 살살 다독여준다.
이제 잘라낸 병 아래쪽, 컵 모양의 받침에 커피 용액이 떨어질 수 있도록 깔때기 구조의 병 윗부분을 얹는다. 병 입구는 받침 바닥에 닿지 않도록 살짝 띄워줘야 한다. 잔이나 컵 받침을 끼워 각도를 조절한다. 그런 뒤, 물을 채운다. 윗부분, 깔때기의 바닥에는 작은 구멍이 있으니 물을 한꺼번에 넣으면 넘쳐흐른다. 천천히, 얇은 실처럼 물이 떨어지도록 해야 한다. 생수병에서 물을 따라 붓는 동작마저도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물줄기를 조절한다.
물은 커피 가루 위로 천천히 스며들고, 검게 물든 액체가 아래로 한 방울, 또 한 방울 떨어진다. 정확히 떨어지는 간격은 초당 한 방울 정도. 그 속도보다 빠르면 맛이 덜 우러나고, 느리면 쓴맛이 올라온다. 조율이 필요한 순간이다. 구멍이 막히면 바늘로 다시 찔러주고, 너무 빠르면 필터를 한 겹 더 얹는다. 손수 조립한 이 조악한 구조물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느리고 반복적인 작업 속에서 묘한 집중과 고요가 깃든다. 어느새 방 안은 고요한 방울소리로 가득 찬다. 커피가 추출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침묵이 병 속에 축적되고 있는 것만 같다.
시간이 천천히 떨어진다. 한 방울씩, 아주 조금씩.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투명한 물방울이 검은 가루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너무 느려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과연 변화인지조차 의심하게 된다. 그런데도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 없다. 재촉할 수도 없고, 속도를 높일 수도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어느 날, 문장 하나를 머릿속에 담은 채로 하루를 보내는 일이 생긴다. 아침 산책길에서, 창밖으로 스쳐가는 가로수의 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떠올랐던 그 말 한 줄. "모든 것은 흘러가되, 남는 것이 있다." 그 문장이 자꾸만 머릿속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그 문장을 시작으로 글이 터져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다. 다만 뚜껑을 닫아놓은 페트병 속의 찬물처럼, 그 문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조용한 밤, 불을 끄고 누워 있을 때,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톡… 톡…’ 더치커피가 추출되는 소리. 실제로는 아무 소리도 없지만, 그 이미지가 너무도 선명해서 귀가 간질거린다. 아마 이 문장을 쓰기까지 들었던 모든 음악과 대화와 뉴스의 말들이, 가라앉은 커피 찌꺼기처럼 어딘가에 쌓여 있었던 것이다. 그 밑바닥에서 무언가 끓는다. 끓지도 않고 식지도 않은 온도로, 시간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다.
커피는 기다려야 진해진다. 문장도 그렇다. 바로 쏟아지지 않는다. 말이라는 건 언제나 먼저 입 밖으로 나와야 하지만, 글이라는 건 반대로 시간을 견뎌야만 완성된다. 오늘 쓰지 못한 문장은 내일도 쓸 수 없다. 오늘 적지 않은 문장은, 언젠가 다시 나타나 더 진한 향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어쩌면 문장이 아니라,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누군가를 기억해 내는 것도, 그렇게 천천히 추출된 기억이기 때문이다.
더치커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향이 산다. 급하게 내린 커피는 텁텁하다. 삶도 그렇고, 글도 그렇다. 좋은 문장은 한꺼번에 쏟아지지 않는다. 한 문장을 쓰고 나면, 그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부른다. 가끔은 호출받지 못한 문장이 혼자 어울리지 못한 채 겉돈다. 그럴 때는 기다려야 한다. 그 문장이 언젠가 어울릴 자리를 찾을 때까지.
필터 위를 흐르는 물은 결코 커피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가능성이다. 글도 그렇다. 초고는 글이 아니다. 말들의 실루엣만 있다. 삭제하고, 고치고, 다시 쓰고, 지우고 나서야 비로소 한 잔의 커피처럼 완성된다. 그래서 글쓰기는 추출이 아니라 여과의 예술이다. 얼마나 많은 말을 걸러내는가. 얼마나 많은 문장을 거부하는가. 남는 것은 아주 적지만, 그것이 진짜다.
때로는 추출이 끝났는데도 글이 끝나지 않은 느낌이 든다. 그럴 땐 냉장고에 넣어둔다. 시간을 준다. 식히고, 숙성시키고, 다시 꺼내본다. 마치 어제의 문장이 오늘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온도를 달리하면 맛이 달라진다. 아침에 쓴 글과 밤에 읽는 글은 다르다. 같은 문장이 다르게 읽히고, 같은 단어가 다른 울림을 낸다. 그것은 물질의 변화가 아니라 시간의 결과다.
커피를 잔에 따른다. 적막한 소리. 침묵이 따뜻하게 가라앉는다. 그 한 잔을 입에 머금는 순간, 모든 기다림은 이유를 갖는다. 한 문장을 쓰기 위해 며칠을 걸었던 시간도, 결국은 이 한 모금의 감각으로 설명된다.
글쓰기는 더치커피메이커를 만드는 것과 같다. 서툰 손길로, 그러나 진심으로. 조립하고 기다리고, 가끔은 실패하고 다시 만든다. 커피가 흐르지 않으면 물의 양을 조절하고, 필터를 교체하고, 가루의 분쇄도를 바꿔본다. 그런 식으로, 계속 수정하며 고쳐 나간다. 글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문장을 수십 번 고치고, 다시 써보고, 버리고, 다시 꺼내든다.
결국 중요한 것은 흐름이다. 멈추지 않는 일. 비록 속도가 느릴지라도, 무언가 흘러야 한다. 정지된 글은 죽은 글이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흘러야 향을 낸다.
그리고, 끝내 한 잔의 커피를 얻는다. 그것은 맛의 완성이 아니라 기다림의 결실이다. 글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문장은 하나의 잔이다. 그리고 그 잔을 건넬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글을 쓰게 만든다.
모란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피해 가장 은밀한 장소를 탐색한다. 가장 높아 다다를 수 없어 쉽게 포기할 만한 그곳.
지금도 어딘가에서 더치커피가 추출되고 있을 것이다. 그 느리고 고요한 시간을, 누군가는 글로 바꾸고 있을 것이다.
아주 천천히.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