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저장되지 않은 메시지처럼
핸드폰 번호를 적으라는 말이 떨어졌을 때, 손끝이 잠시 멈칫거렸다. 펜 끝은 서류의 빈칸 위에 서 있었고, 검은 잉크는 흐르지 않았다. 숫자들이 잠시 머릿속에서 일렁였으나 곧 사라졌다. 뒷자리에 익숙한 조합 하나, 앞자리의 흔한 통신사 번호 두세 개, 그 사이가 텅 비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번호를 외우는 일은 멈춰 있었다. 통신사의 알림에 따라 기기를 변경한 이후, 연락처들은 저장되어 있었고, 불러야 할 일은 사라졌다. 엄마의 번호도, 여동생의 번호도, 언제부턴가 손가락에 기억되지 않았다. 이름을 누르면 뜨는 숫자들은 그저 하나의 주소처럼 작동했고, 눌러지기만 할 뿐, 외워지지 않았다.
가장 기억나지 않는 번호는 하나였다. 그 번호는 어디에도 저장되어 있지 않았고, 최근 통화 목록에도 없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지만, 가장 낯선 번호였다. 스스로의 번호를 적어야 할 때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화면의 설정으로 들어가 번호를 확인하는 과정은 늘 똑같았고, 낯설었다. 그건 마치, 이름표를 읽지 않고는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어떤 사람과 같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 번호로 전화를 건 적이 없었다. 반대로, 그 번호에서 걸려온 전화도 없었다. 진동이 울린 적도, 수신음이 켜진 적도 없었다. 늘 주머니나 가방 속에 있었고, 충전선 위에 올려져 있었지만, 그 번호는 묵음처럼 존재했다. 사용되지 않은 채 보존되어 있는 기록 같았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번호로 전화를 건다면. 정말 연결음이 울릴까. 신호음 너머로 어떤 음성이 들려올까.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기계음조차, 어쩌면 지금까지의 자신보다 더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것 아닐까. 적어도 그 음성은, 상대방이 부재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전달해 준다. 부재를 인정하고, 기다림의 구조를 만든다. 그러나 이쪽에서는 단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었다. 누구도 전화하지 않았고, 아무도 받지 않았다.
문자 수신 목록을 훑다 보면, 때때로 알 수 없는 번호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해 있다. 대부분은 광고 문자 거나, 기계적인 알림이다. 그러나 어떤 날엔, 이름도 없는 번호에서 한 문장이 도착해 있기도 했다. “잘 지내지?” 같은, 비문에 가까운 짧은 문장. 삭제된 연락처에서 온 것일지도 모르고, 실수로 보낸 메시지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날이면, 이상하게도 핸드폰을 들고 거울 앞에 서는 일이 많아졌다. 마치 그 문자 속에 응답해야 할 자신이 있었던 것처럼.
어느 날, 오래된 상자를 정리하다가 낡은 피처폰 하나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충전이 되지 않는 오래된 기종이었다. 손에 쥐자마자,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버튼을 더듬었다. 그 시절의 키패드는 몸에 익은 구조였고, 다이얼 소리는 기억 저편의 음악처럼 울렸다. 전원이 켜지지 않았음에도, 어떤 번호들이 떠오를 듯 말 듯 손끝을 맴돌았다. 거기에는 한 통의 문자라도 남아 있었을까. 수신자 없는 발신, 발신자 없는 수신, 그 둘 사이에 어떤 음성이 머물러 있었을까.
자기 자신의 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을 잃은 것과도 같았다. 주소를 잃어버린 편지처럼,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신호처럼, 통화 연결음조차 들을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있었다. 가장 가까운 존재에게조차 한 번도 말을 건 적이 없다는 사실은, 묘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전화기는 늘 충전되어 있었고, 신호는 꽉 차 있었으며, 진동 모드는 해제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울림도 없었다. 음성 사서함은 비어 있었고, 통화 기록은 말끔했다. 존재의 기록이 없음에도 기능은 온전했다. 누군가가 걸어오지 않는 한, 그 번호는 영원히 무음 상태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전화하지 않는 한, 그 음성은 발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 번호는 여전히 설정창 안에 있었다. 몇 번이나 스크롤을 내렸다가 올리며, 그 조합을 암기하려 애썼다. 그러나 숫자들은 자꾸만 흐릿해졌다. 잠시 후면 사라질 것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번호의 형식만 기억났고, 구체적인 배열은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얼굴을 흐릿하게 떠올릴 수밖에 없는 어떤 상황처럼. 눈, 코, 입의 위치는 알겠지만, 정확한 윤곽은 말할 수 없는 상태. 목소리는 떠오르지 않았고, 말투는 더더욱 잡히지 않았다.
지문 인식이 되지 않는 날엔, 이 기계가 나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눌러도 잠금이 풀리지 않는 화면을 보며, 지금 이 기계는 내가 나임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핀 번호를 잊고, 생년월일을 잊고, 비밀번호를 틀리는 사이, 나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점점 줄어들었다. 기계는 정확했다. 틀린 숫자에는 반응하지 않았고, 등록되지 않은 얼굴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기계적 정확성은 어쩌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일지도 모른다. "틀렸다"는 말을 아무런 감정 없이 내뱉고, "다시 시도하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는 불친절하지만 정직했다. 반면, 어느 누구도 그렇게 명확하게 "아니다"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아니란 말조차 듣지 못한 채,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 상태로 머무는 날들이 많았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전화를 걸 수는 없도록 세상이 설계된 건 아닐까. 기계는 자기 번호로의 발신을 허용하지 않고, 번호는 자신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다. 기계적 오류가 아니라, 인간적 오류. 자기 자신과의 통화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 그래서 누구도 자기 목소리를 자신이 처음으로 듣지 못하고, 거울 속 모습도 반사일 뿐 실재가 아닌 것이다.
스마트폰의 통화 버튼을 꾹 눌러, 숫자판을 띄워본다. 숫자들은 정렬되어 있고, 깔끔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어떤 조합도 완성되지 않는다. 번호의 배열은 매번 틀리게 입력되고, 다시 지워진다. 연결음은 울리지 않는다. 상대방이 없는 전화를 거는 일. 그것이 스스로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라면, 실패는 예정되어 있었다.
저편에서, 만약 어떤 연결음이 울린다면. 그건 어떤 음색일까. 낯익은 목소리가 받을까. 기계음은 어떤 감정도 담지 않지만, 그 말투에는 이상한 위로가 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말이, 그 자체로는 부재의 선언임에도 이상하게 따뜻하다. 어떤 식으로든 존재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 단지, 지금은 받을 수 없다는 문장. 그러니, 언젠가는 받을 수 있다는 의미.
언젠가, 정말 자신에게 전화를 걸게 될 날이 올까. 기계음 말고, 자신의 목소리로 연결되는 순간이 올까. 그 음성이, “잘 지내고 있니?”라고 말해올 수 있을까. 아니면, 아무 말 없이 그냥 울리기만 하다가 끊어질까.
발신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오래 머물렀다. 숫자들은 다시 배열되다 흩어졌고, 불현듯 전혀 모르는 번호가 화면에 완성되었다. 의미 없는 숫자의 조합인데도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한 번쯤 꿈에서 들은 것 같은 연결음, 어디선가 반복 재생되던 착신음. 눌러본 적 없는 조합이었지만, 그 번호는 언젠가 스스로의 손으로 만든 문 같았다. 거기에는 도착한 적 없는 목소리, 발화되지 않은 말들, 꺼내지 못한 안부 같은 것이 응고되어 있었다. 통화버튼을 누르는 일은 입을 여는 일보다 더 깊은 일이었다.
입술은 떨리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오직 화면의 불빛만이 희미한 대기 상태를 비추고 있었다. 상대방 없음, 통화 실패, 부재중 기록 없음. 통화기록이 없는 번호에는 감정의 이력도 없었다. 존재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무음의 흔적. 그러나 바로 그 무음이 가장 강하게 울렸다. 아무것도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발신되지 않은 호출이 가장 먼 데까지 도달하는 법이다. 침묵은 언제나 가장 정확한 메시지로 작동했고, 꺼내지 않은 말들이 그 어떤 말보다 깊었다.
여전히 번호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전히 발신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무음 속에는 묘한 울림이 있다.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하나의 신호처럼 다가오는 날도 있다. 실패한 통화 시도, 저장되지 않은 메시지, 기억나지 않는 숫자들. 모든 부재가 쌓여서 하나의 존재를 만든다.
그 존재는, 아직 연결되지 않은 상태로
여전히 발신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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