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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에서 일한다
by 에피종결자 Aug 08. 2018

연휴 30일에 병가까지 독일인은 언제 일하나

OECD 국가 중에서 연간 근무 시간이 가장 적다고 꼽힌 독일. 야근이 적다는 것 외에도 한 달 가까이 되는 유급 휴가가 그 이유일 것이다. 전 회사에서 독일 거래처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 자주 'Out of office(자리비움)' 자동 회신을 받고는 "아니 독일 사람들은 맨날 휴가야!? 도대체 언제 일하는 거야?" 라며 구시렁대던 상사의 불평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1년을 휴가 계획, 실행, 뒤풀이로 보내는 독일 문화 덕에 실제 휴가 일수보다 더 쉬는 날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독일에서 풀타임 근무자에게 법적으로 보장되는 연간 휴가 일수는 24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30일의 유급 휴가를 제공한다. (물론, 독일에 있는 한국 기업들은 대게 법정 휴가 일수 24일만 야무지게 딱 맞춰 주는 편이지만 연 10~15일인 한국 연차일수에 비하면 어쨌든 굉장히 크게 느껴지는 복지다.) 법정 공휴일이 많은 4월 ~ 6월 사이에 휴가를 쓰면 연차를 반 만 쓰고도 한 달 내내 노는 것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직원은 업무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연차를 마음껏 조정하여 쓴다. 상식적으로 다른 팀원들이 모두 같은 날짜에 휴가를 가거나 본인이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주요 이벤트가 있는 경우를 제외한다. 휴가를 승인하는 상사는 대단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아니고서는 휴가를 거부할 권리가 없다. 시답잖은 이유로 휴가를 거부했다 직원이 인사팀에 항의하면 본인만 경고를 먹을 뿐이다. 나아가 본인들도 다 휴가를 기대하며 매일을 견뎌 내기 때문에 태클을 걸기보다는 오히려 부하 직원이 충분히 휴식한 뒤 업무에 복귀하도록 장기 휴가를 장려하는 편이다. 


전 직장에서는 독일 노동법에 따라 휴가를 보장받았지만 '한국인 직원'이라는 이유로 본사에서 휴가 사용에 대한 압박이 끊임없이 있었다. 내 휴가를 승인하는 상사는 독일 법인장이지만, 본사에 있는 한국인 관리자와의 관계가 업무에 미치는 영향이 무척 커 눈치가 보였다. 예컨대 해외 법인에 자주 방문하는 본사 상무가 "월요일은 바쁘니까 제외하고, 금요일은 피하고 연휴가 낀 날은 업무가 많이 지연되니까 알아서 빼라"라고 한다거나, 본사의 내 업무 파트너가 연차도 못쓰고 반차를 써가며 버티거나 연차를 쓰고도 '긴급 호출'을 받고 본사로 강제 출근당하는 것을 보면 모른 척하다가도 늘 마음에 걸렸다. 인수인계를 아무리 해도 휴가 중 몇 번씩 오는 메시지나 시차를 고려하지 않은 모바일 메시지 공격은 '내가 이래서 한국을 떠났었던가..' 하며 향수병을 사라지게 만드는 치료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휴가를 방해하는 이런 지침이나 행동은 독일에서는 임원급 이상을 제외하고는 절대 받지 않는다. 휴가 중에 이사회 미팅에 온라인으로 참석을 한다거나 휴대폰으로 주요 업무 보고를 받는 임원들은 종종 있지만 나머지 직원들은 팀장, 부서장까지 모두 연락을 완전히 두절한 채 휴가에 집중한다. 이직 후 한국으로 장기 휴가를 갔을 때 혹시나 싶어 회사 노트북을 지참한 뒤 한가로운 저녁 시간에 이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을 보낸 적이 있는데 상대로부터 "너 왜 휴가 중에 이메일을 읽어? 복귀하고 답장해"라는 회신을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온전한 내 권리인데도 어쩐지 아직 회사에 대단한 신세를 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연차를 써야 하는 한국의 회사 문화에서 버리지 못한 악습이었던 모양이다. 

독일에서 휴가 외에 간섭받지 않는 것은 병가이다. 기본적으로 노동법에 따라 1년에 6주까지 급여 100%를 받는 병가가 보장되고 이 병가는 일반 연차에서 차감할 수 없다. 6주가 지나면 이후에는 의무로 가입된 보험에서 급여의 70%를 제공한다. 노동 계약서에 대부분 명시되어 있듯 아파서 출근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당일 오전까지 직속 상사에게 서면(이메일이나 문자)으로 통보만 하면 된다. 3일까지는 별다른 증빙 서류 없이 상사에게 보고하는 것만으로 병가가 인정되고 3일 이상 병가시에는 병원 처방전과 같은 증빙 서류만 인사부에 제출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내용의 법이 보장되어 있지만 사실 현실적으로는 병가를 쉽게 낼 수 없다. 그 차이가 법이 아니라 아픈 사람을 대하는 상사와 동료의 태도, 인식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프다는 것을 체력 관리를 잘 못한 개인의 잘못이나 무능력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있다. "몸이 그 지경이 되도록 뭐했는가?", "그 정도 아프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나. 나도 약을 달고 산다네.", "하필 이렇게 바쁠 때! 이건 급한 건이니까 병원에 다녀와서 이것만 처리해줘." 대놓고 내게 물어보지 않아도 얼굴에서 느껴지는 질문들. 눈치가 바닥을 치는 직원이라도 병가 낼 때는 눈치가 구백 단이 된다. "아이고 자네가 그동안 일이 많아서 그랬지, 이참에 푹 쉬고 쾌차한 뒤 출근해. 회사 일은 걱정 말고!" 라며 진심 어린 걱정과 함께 병가를 허락해 줄 상사가 몇 명이나 될까 싶다. 사람보다 일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과중한 업무로 바쁜데 누구 하나가 빠져 일 처리가 안되면 반길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선 직원들이 몸살로 열이 끓고 아파도 억지로 마스크를 끼고 출근해 점심시간이나 오전에 잠깐 병원에 들리나 보다. 병가를 내더라도 우선은 출근하여 상사 눈앞에서 아픈 모습을 보여주고(심지어는 실제보다 훨씬 더 아파 보이는 민낯의 부은 얼굴로) 등 떠밀려 조퇴를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독일에선 아픈 바이러스를 온몸에 휘감고 출근한다는 것을 무척 실례로 간주한다. 재채기도 입을 반드시 막고 해야 하는 마당에 출근 이라니! '나만 아플 수 없지, 다른 사람까지 아프게 만들 거야!'라는 강력한 전염 의지자로 비추어진다. 업무를 못 할 정도로 아픈 것이 아닌 경우엔 재택근무를 하면 된다. 게다가 미련해 보인다. 어차피 아파서 일도 제대로 못해 골골댈 것이라면 푹 쉬고 회복한 뒤 일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에도 꾀병으로 병가를 내는 직원들이 있다. 전날 술을 진탕 먹고 병가를 내는 직원, 장기 휴가에 이어 바로 병가까지 써서 한 달 꽉 채워 쉬는 얄미운 꼼수 직원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쉬운 병가 제도를 이용해 먹는 직원들은 대게 일상 업무 태도에서 어떻게든 상사에게 티가 나게 마련이다. 신뢰가 무너진 직원에게 좋은 업무 평가를 줄 상사는 없다. 따라서 악용 사례가 우려되어 병가 내기 어려운 문화를 굳이 만들 필요도 없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우선 신뢰하고 직원의 건강과 안위를 일처리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문화가 한국의 회사에서도 일반적인 것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는 이유다. 적어도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는 회사에 희망을 잃어 자살하는 집배원이 나오는 건 막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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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에서 일한다' 저자 > 해외에서 밥벌이 한 지 8년차. 서른이 훌쩍 넘은 노처녀 외국인 노동자가 들려주는 현실 백퍼, 환상 제로 해외 취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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