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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Sep 19. 2018

공감 백 프로 독일 삶의 장단점  

독일에서 한국인 친구들과 만나면 늘 우리 대화의 끝엔 "넌 언제 한국에 갈 거야?", "우리는 왜 독일에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남았다. 거창한 계획 없이 오게 된 곳인데 어쩌다 보니 1년이 2년이 되고, 2년이 3년이 되며 세월이 흘러갔다. 누구도 왜 그 긴 시간 동안 독일에 있는지 딱 부러지게 설명하진 못했다. 공부하러 온 사람 중에는 독일이 학비가 가장 저렴해서, 배우고 싶은 학문이 독일이 가장 유명해서라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그러나 유학생 중 졸업 후 끝까지 독일에 남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후배들은 사실 많이 없었다. 공부를 마친 뒤 또는 경력을 조금 쌓은 뒤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사람이나 이도 저도 마음을 잡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가장 특이한 건 '독일이 너무 좋아서' 평생 살고 싶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독일 생활에 '만족'한다는 것과 '좋아'한다는 것은 참 큰 차이인가 보다. 미국이나 멕시코에 있을 때만 해도 그 나라를 너무 사랑해서 영주권을 취득하여 평생 살고 싶다는 한인들을 많이 봤는데 독일이란 곳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역시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중간에 한 번 독일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한국에 갔다가 3개월 만에 돌아왔다. 독일을 애타게 사랑하지는 않아도 사는 데 단점보다는 장점이 조금이나마 더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회사 생활과 한국보다 저렴한 생활비는 삶의 질을 높여주는 큰 장점이었다. 반면 지루함과 외로움, 외국인으로서의 고충은 매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적이었다. 이런 것 외에 사소한 장단점도 몇 가지 소개한다. 


각종 사회적 압박으로부터의 자유 

한국에서 오래전 소개팅을 했을 때였다. 상대 남자가 물었다. "나이가 있으니 모아둔 돈이 꽤 있겠네요. 얼마나 모으셨어요?"라고. 당황스러웠다. 또 부끄러웠다. 나중에 듣고 보니 본인도 서른 중반을 향해 가고 있어 연애보다는 결혼을 생각하고 여자를 만나고 싶고 그래서 만나는 여자가 본인처럼 준비된 사람이었으면 좋겠단다. 

우리 사회에선 내 나이에 맞게 기대하는 것들이 다른 어느 곳보다 많은 것 같다. 스스로를 칭찬하다가도 주변에서 들리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위축될 때가 많았다. 질문을 받는 순간에는 잘도 웃어넘기지만 혼자 남겨지면 그 질문들이 다시 되돌아와 마음을 아프게 했다. 독일에선 적어도 이런 압박이 없는 데다 누군가 내게 가타부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없어 마음이 가볍다. 

근접 국가로 여행이 용이

유럽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장점이다. 마음만 먹으면 몇 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곳이 무척 많다. 뮌헨에 거주할 때는 한두 시간이면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이태리에 닿았고 서부 에센에서는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가 위치했다. 굳이 비행기를 타지 않고 몇 만 원만 내면 버스를 타고 로드트립도 가능하다. 연차를 하루만 쓰면 긴 주말 동안 우리가 사랑하는 유럽을 어디든 값싸게 다녀올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나 극심한 외로움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때가 많다.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경험

독일에 철학자가 괜히 많은 것이 아니다. 저녁이 있는 삶이 주는 많은 시간을 혼자 생각하고 고뇌하는 데 쓰다 보면 종종 자신의 끝을 보는 경험도 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들이 그렇게 우울증을 앓았나보다.) 그덕에 나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조금 더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가벼운 주제도 열심히 토론을 해대는 독일인들과 지내다 보면 어느덧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운다. '한국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했던 일들이 이 곳에서는 교양 없는 일이었구나!' 또는 '아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세상과 단절되는 느낌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했다 한들 독일에 살다 보면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정보도 잘 모르고 뭐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출근 준비하는 동안 한국 뉴스를 시청하고 휴가를 갈 때마다 한국에 있는 책을 한가득 들고 오지만 그래도 역시 시사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약해진다. 그렇다고 독일에 관해 그만큼 잘 아느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누군가 한국인은 고3 때 제일 똑똑하다던데 나는 요즘 종종 '한국에 살 때가 제일 똑똑했다'라고 얘기한다. 힘들여 찾아보지 않아도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높기 때문일까, 사람들과의 소소한 대화에서 얻어지는 것이 많기 때문일까, 아니면 워낙 경쟁 사회이다 보니 실제로 공부와 자기계발을 더 열심히 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벌어도 벌어도 모이지 않는 돈 

참 이상하다. 어느덧 독일에서 일한 지 5년 차에 접어들지만 통장의 잔액은 신입 때와 별 다를 게 없다. 한국보다 더 큰 월급을 받는데도 당최 생활이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세금을 반을 데어준 뒤 집세와 생활비, 각종 공과금을 내고 열심히 모은 적금은 한국에 장기 휴가를 한 번 다녀오면 금세 없어진다. 비행기 값과 선물,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 쓰는 돈, 독일에서 살 수 없던 소모품을 한국에서 쫙 사고 오면 그렇게 된다. 

더 괘씸한 것은 개미처럼 적금을 들겠다는데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지는 못할 망정 통장 관리 수수료를 매달 빼가는 독일 은행의 야박함이다. '이자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는 듯 날 비웃는 수수료에 짜증이 나 이럴 거면 개인 금고를 사서 돈을 저장하는 게 낫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게다가 스페인에서 유학하던 시절만 해도 1유로가 1900원에 육박하더니 독일에 온 이후로는 1유로가 당최 1300원을 넘질 못하니 외화벌이도 제대로 못하는 외노자가 되어 버렸다. 힘들게 1000유로를 들고 와도 100만 원을 조금 넘는 값어치밖에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보잘것없는 잔고가 아프게 한 내 맘을 위로하는 건 세상 둘도 없이 달콤한 독일 초콜릿이다. 


한국 복귀의 어려움 

독일에 체류하는 기간이 길수록 한국에 복귀가 쉽지 않다. 한국과 독일의 일, 기업 문화, 직급 체계가 많이 다르다 보니 복귀 후에도 후회 없이 적응할 수 있을까 노파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먼저 독일에서 받은 연봉을 기준으로 한국 연봉을 책정하기가 쉽지 않다. 세전으로 책정하면 독일 연봉이 한국보다 월등히 높고 세후로 측정하는 건 일반적 기준에 어긋난다. 그렇다고 유로로 받던 연봉에 환율을 곱해 그것보다 많이 받겠다고 할 수 없으니 지인들의 경우 대부분 연봉을 한국의 평균 임금 수준을 고려하여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직급 체계가 많이 다른 것도 한국 회사 입장에서는 어떤 직급을 주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 그래서 복귀 후에도 한국 기업보다는 다국적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을 하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하다. 마지막으로 독일에서 편하게 일한 분이 힘든 한국 회사에서 다시 일할 수 있겠냐는 의심을 받는다. 결국 언젠간 또 나가지 않겠냐는 합리적 의심이다. 


더없이 좋은 직장과 따뜻한 동료, 아낌없이 사랑을 베푸는 친구와 연인이 있는데도 돌아서면 마음이 한없이 허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두고 온 사람에 대한 미안함일 테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인 가족과 바꿀 만큼 좋은 걸까? 

원하던 모험 실컷 했으니 이제는 나이 들고 약한 부모님께 보답할 때가 아닐까?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실 때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 

독일에서 여기까지 왔다면 한국에서는 더 많이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독일 생활은 더할나위 없이 안정적이고 평화롭지만 딱 그만큼 몸과 마음이 춥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독일에 살고 있는 우리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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