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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Sep 12. 2018

인종차별을 통해 보는 독일의 또 다른 얼굴

"독일에도 인종차별이 심한 가요?" 

아주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였다. 이런 질문에 오랫동안 내 주관적 경험에만 비추어 "아뇨~ 미국이나 호주 같은 곳에 비하면 독일은 양반이죠!" 라며 말했었다. 조금 창피하지만 가끔 "솔직히 인종차별은 한국이 훨씬 심한 것 같은데요~"라고 경솔하게 대답한 적도 있다. 


그러다 누군가 페이스북에 '인종차별은 마치 성추행이나 성차별처럼 당하는 사람, 즉 피해자가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누가 인종차별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을까요..?'라고 써놓은 글을 보고 반성했다. 피해자가 그렇게 느꼈다면 인종차별인 거고 아니면 아니라는 말. 다른 사람들이 '뭐 그 정도 갖고 차별이라고 하느냐..'라는 건 또 다른 2차 폭력과도 같다는 것이 마음을 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상황을 겪어도 각자가 느끼는 감정은 천차만별이었다. 예컨대 한 번 꼴로 겪었던 일- 젊은 취객들이 내가 지나가면 '칭챙총', '링랭롱', '니하오' 같은 대도 않는 중국어 드립으로 놀려대는 일-이 내게는 '저 무식한 게르만 놈들..'하며 금세 잊히는 해프닝에 불과하다면 또 어떤 이들에게는 몇 날 며칠 이가 갈릴 정도로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쁜 일이기도 했다. 


독일 내에서 대부분 직접적인 인종차별은 동유럽 난민이나 무슬림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다. 독일 내 제1 이민자가 터키 사람들이고 그들 중 대부분이 여전히 이슬람교를 따르고 있어 터키 사람들이 겪는 차별이 가장 체감하기 쉽다. 독일 내 터키 이민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다수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은 '많은 터키 이민자들이 독일에 넘어온 이후에도 독일 사회와 문화에 흡수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살아간다'며 부정적 메시지를 던진다. 베를린 지역의 터키 사람들이 사용하는 독일어가 품격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터키인들은 '나 네가 어디 사는지 알아(Ich weiß wo du wohnst)'라고 하지 않고 '나 네 집이 어디 사는지 알아(Ich weiß wo dein Haus wohnt)'라고 말한다며 비웃는 식이다. 함께 일하던 직장 동료 중 한 명은 부모님이 아프가니스탄 사람으로 독일에서 태어난 '독일인'이었지만 바꿀 수 없는 외모 덕에 클럽 입장을 거부당하거나 입사 면접에 불이익을 당한 적이 여러 차례 있다고 했다. 그의 부모는 독일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려면 무조건 의대나 공대에 진학해야 한다고 어려서부터 압박을 했다고 한다. 어쩐지 남일 같지가 않았다. 


이 중 최근 악화된 동유럽 난민에 대한 공포와 혐오는 바이에른 주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앙겔라 메르켈이 모든 난민을 수용하겠다고 용감하게 발표할 때만 해도 이렇게 많은 수가 유입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수의 난민이 쏟아져 왔고(독일 신문에선 2014년에 하루 1만 명이 유입되었다고 했다) 그들을 수용할 시설이나 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이 시기 쾰른에서 68명의 난민이 독일 여성을 상대로 집단 성폭행을 한일이 보도되며 난민에 대한 반감과 우파 지지자들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물론 독일인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난민이 저지르는 범죄보다 훨씬 많지만 아무래도 외국인 특히 난민이 저지르는 범죄는 처벌이 까다롭고 어려워 행여 법을 잘 적용해 구치소에 간다 한 들 그들을 위해 내 세금을 납부하고 싶지 않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난민에 대한 반감이 외국인 전체로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될 수밖에 없었다. 반이민 정책을 대놓고 선전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당시 미국을 마구 비웃고 비판하던 독일인데, 작년에 치른 총선에서 '반무슬림, 반이민자' 슬로건을 외친 극우파 정당에게 무려 12.6%의 표를 주며 큰 충격을 주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대놓고 반감 정을 드러내는 대상이 아시아인인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시아인의 이민을 제한해야 한다던지, 아시아 입학생 할당률을 제한시켜야 한다던지의 운동이 다른 나라에서는 일어난 적 있지만 독일에선 아직 한 번도 없었다. 아시아인들이 그룹 지어 다니고, 시끄럽거나 더럽다며 비판하는 사람은 있어도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인종은 아니라는 인식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오히려 아시아 사람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인 편인 경우가 많다. 아시아인이 일을 아주 열심히 하고 꼼꼼하게 잘한다, 사람들과 갈등을 잃으키기 싫어해서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채용 시에도 언어가 약점이 아니라면 단지 아시아인이라는 인종적 이유로 불리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인종차별을 대놓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회에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저소득 또는 저 교육 계층을 일컫는다. 평균 이상 소득을 지닌 직장인들이나 대학생, 상류층이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속으로는 아주 싫어하며 극우 정당을 지지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인종차별을 드러내는 것을 교양 없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악명 높은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을 오랜 세월 겪고 반성하는 동안 특정 집단에 대한 직접적인 반감 정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문화가 형성된 탓도 있다. 


그러나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이게 인종 차별인가' 하고 곱씹어 생각하게 만드는 일들은 종종 있다. 특히 이런 것들은 제대로 따지기에도 애매해 참 기분이 스멀스멀 하게 나쁘다. 가장 생각나는 일은 프랑크푸르트 마인강 축제를 남자 친구와 돌아다닐 때였다. 어떤 중년의 남자 두 명이 다섯 발치 근처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길래 남자 친구에게 "저 사람들 나 너무 쳐다보지 않니?"라고 했더니 자신도 그런 것 같다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 남자 중 한 명이 남자 친구에게 다짜고짜 "네 여자 친구 아시아 사람이니?"라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에 곧바로 "오 내 지금 여자 친구도 캄보디아 사람인데, 네 여자 친구랑 내 여자 친구랑 친하게 지내면 좋겠네!"라는 것이었다. 이건 뭐지.. 남자 친구가 황당해서 대답을 못하자 다시 한번 쐐기를 박는 그 남자. "네 여자 친구는 중국인이야 아니면 태국인이야? 너 여자 친구 친구들 있으면 소개하여 주면 좋겠다" 고 말했다. 듣고 있던 내가 기분이 나빠져 그들에게 다가가 "너한테 소개하여 줄 친구 없으니, 카탈로그에서 찾던지 니 알아서 해라" 라고 소리치곤 남자 친구를 끌고 이동했다. 돌아서니 더욱 기분이 나쁜데 이걸 인종차별이라고 할 수 있는지, 혹시 내가 은연중에 중국인이나 동남아시아 사람으로 오해받는 게 기분이 나쁜 건지, 그럼 나야말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닌 지하는 온갖 생각이 다 들어 몸서리가 쳐졌다. 


또 다른 건 뮌헨에서 집을 구하던 중 집주인의 초대를 받고 방문을 한 날이었다. 그 주인을 날 실제로 보고는 적잖이 당황한 내색이었다. 내가 한국사람인지 몰랐단다. 내가 아시아 사람인 줄 알았으면 초대하지 않았을 텐데 불러 놓고 미안하지만 아시아 사람은 세입자로 들이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왜냐고 물었더니 아시아 사람들은 바닥에 침을 뱉고, 화장실도 집도 모두 더럽게 쓰는 데다 실내에서 담배를 피기도 한다며 안 좋은 소리를 워낙 많이 들어서 싫단다. 아 그전에 안 좋은 경험이 참 많이 있었나 보다 생각하며 알았다고 쿨하게 돌아섰지만 왠지 그 집주인이 묘사한 사람들과 한 묶음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 언짢긴 했다. 그 집주인 아주머니 심정이야 이해했지만, 그래도 보통 다른 이유를 둘러대며 거절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내가 한국인이라 싫다고 이야기해주니 조금 더 충격적이기도 했다. 


여전히 독일 내 인종차별에 어떤 가에 대해 한 마디로 답하기는 어렵다. 다만, 독일에 가는 사람들이 지레 겁먹거나 앞서 걱정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분명 외국인으로서, 특히 아시아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기분 나쁜 일들이 많이 있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지 않은가. 더러운 똥 같은 사람도 있고, 복수하고 싶을 만큼 미운 사람도 있지만 돌아서면 또 한편엔 가슴 따뜻하게 친절한 사람들도 많으니 그저 두터운 자존감과 튼튼한 정신으로 무장하여 극복해 낼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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