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생일쯤 내가 알게 된 것

나르시시스트 아빠

by 지피지기

몸만 어른인 내가 벌써 올해로 마흔 살이 되었다.

내 생일은 여름 한가운데라 거의 남편의 휴가와 겹친다.

남편과 나는 지독한 집돌이, 집순이인지라 올해 휴가도 여전히 집에서 각자의 핸드폰을 붙잡고 뒹굴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르시시스트'라는 단어에 꽂혀서 나는 나무위키부터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이 단어를 나무위키에 검색해 본 게 처음은 아니었다.

처음 찾아봤을 땐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지고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지 감이 오지 않아서 그냥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인가 보다 하고 접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홀린 듯이 유튜브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이게 이런 사람을 뜻하는 말이라니!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우리 아빠였다.



나르시시스트 아빠의 모습


아빠는 8남매 중 장남으로, 6.25 전쟁이 한창일 때 태어나셨다. 나에게는 고모만 여섯 분 있다.

고모들이 아마도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셨을 것이고, 아빠가 대학에 갔을 땐 같이 상경해서 살림도 해주시고 학비도 대주셨다고 한다.

언뜻 어렸을 때 친척들께 듣기로는, 맛있는 게 있으면 할아버지부터, 그다음 아버지, 그다음 장남 순서로 먹었던, 그 시대 흔한 가부장적인 집안이었다고 한다.

서울의 손꼽히는 명문대를 나오셨고, 그 후 대기업에 입사하셔서 임원으로 퇴직하셨다.

퇴직 후에 잠시 사업을 하다가 접으시고 운 좋게 지방의 한 사립대학교에서 교수 제의를 받아 몇 년간 교수생활을 하시다가 다시 퇴직하셨다. 일흔이 넘으신 지금은 평일 저녁마다 우리 집에 오셔서 둥이들과 내 저녁을 차려주시고 우리 집의 쓰레기도 버려주시며 둥이들 어린이집 가방까지 챙겨주신다. 다른 사람한테 이런 얘기를 털어놓으면 세상에 그런 친정 아빠가 어디 있냐고 입이 닳도록 칭찬을 한다.


비록 감정표현 없고 무뚝뚝하지만 나한테는 이렇게 잘해주시는데 어떻게 아빠를 의심할 수가 있을까?

누가 알면 천하에 배은망덕한 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유튜브를 보면 볼수록 거의 대부분이 내가 엄마한테 들어왔던 아빠의 모습과 똑같았다.

엄마한테 들었던 아빠의 모습 중 가장 의아했던 것은 연애기간에도 전화를 잘 받지 않았으며 나중에는 딱히 바쁜 것도 아닌데 귀찮다는 이유로 전화선을 뽑아버렸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연락을 이어나가신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임신 기간에 뭐가 먹고 싶다고 사달라고 부탁을 하면 꼭 그건 안 사 오고 아빠가 좋아하는 과자만 몇 개 달랑 사들고 와서 혼자 TV를 보면서 드셨다고 한다. 유튜브에 나르시시스트 남편을 둔 사람의 매우 비슷한 경험이 나왔다.


세 번째, 엄마가 갑상선 암에 걸리셔서 아빠가 간병을 하셨는데 옆에 붙어 계신 게 아니라 자꾸 휴게공간에 가서 TV를 보셨다고 한다. 심지어 핸드폰으로 연락해도 잘 안 받으셨다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엄마가 나한테 아빠 얘기를 하면서 분통을 터트리셨다. 나르시시스트인 남편은 아내 간병을 해도 옆에 붙어있는 게 아니라 자기 볼일을 보러 돌아다닌다고 한다.


네 번째, 우리 가족은 내가 다섯 살 때부터 25평쯤 되는 아파트에 살았는데, 어느 날 이 집에 갑자기 낯선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왔다면서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나서야 엄마는 아빠가 혼자서 집을 팔려고 부동산에 내놓은 것을 알았다. 나르시시스트는 집이나 차 같은 중요한 것들도 사고파는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린다고 한다.


다섯 번째, 외출할 때 어디에 가는지 물어도 행선지를 밝히지 않고 언제 들어올지도 알려주지 않으셨다고 한다. 너무 평범하고 상식적인 일인데 나르시시스트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자신을 통제한다고 생각하며 기분 나빠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여섯 번째, 아이들을 봐달라고 맡기면 정말 눈으로만 보셨다고 한다. 이건 맘카페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는 일이라 나르시시스트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고, 육아에 서툰 아빠들이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 같다.


일곱 번째, 생활비를 주지 않으셨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결혼하자마자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았는데 아빠가 생활비를 주지 않으셨다고 한다.

물론 처음부터 생활비를 주지 않은 건 아니다. 그렇지만 생활비를 주면서 가계부를 꼭 쓰도록 했고 매일 가계부 검사를 하셨는데 가계부를 엉터리로 쓴다면서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유튜브 '토킹닥터스, 토닥'채널에서 '독선적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영상에 똑같은 설명이 나온다.)


여덟 번째, 친정으로 자기 돈을 빼돌렸다고 의심

어느 날, 자기 돈이 없어졌다면서 엄마한테 친정으로 빼돌린 거 아니냐고 의심을 하셨다고 한다. 엄마의 친정, 즉 우리 외갓집은 원래는 부유했는데 외할아버지가 장기간 암투병을 하면서 집이 파탄날 정도로 가난해졌다고 한다. 엄마는 자기 친정이 가난해서 그런 의심을 받은 것 같다고 하셨다. 일곱 번째에 쓴 것과 마찬가지로 나르시시스트는 돈이 권력을 가진 것을 알고 그것을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에 가정의 경제권을 혼자 장악하고 다른 가족에게 돈을 안 주거나 아니면 겨우 생존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만 돈을 준다고 한다.


아홉 번째, 자신의 잘못이 밝혀져도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여덟 번째에 쓴 이야기에서 다행히도 아빠가 잃어버렸던 돈을 찾으셨다고 한다. 그럼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말씀하실 법도 한데 한 마디 사과도 없이 넘어갔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은 완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잘못은 부정하려고 하며 따라서 웬만한 일로는 절대로 쉽게 사과하지 않는다.


열 번째, 책을 읽지 않는다.

이건 우리나라 성인들이 대다수가 해당될 수도 있다. 옛날 분이고 교육을 제대로 못 받으신 분이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우리 아빠는 명문대(SKY) 출신이셨고 교수까지 하셨는데도 그렇다는 것은 약간 의아했다. 엄마 말씀으로는 평생 책 한 권도 안 읽으셨다고 했다. 본인만 안 읽는 게 아니라 우리들 책도 못 사게 하셔서 우리가 어렸을 땐 그 일로 자주 다투셨다고 한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지적 수준(지식수준과 다르다. 자신이 아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키지 못하며 자기 성찰 능력이 없다.)이 낮기 때문에 독서를 싫어하지만 아는 척하는 것은 매우 좋아해서 책을 안 읽고도 읽은 척은 할 수 있다.


열한 번째, 엄마가 이가 아프다고 해도 병원 다 쓸데없다며 보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가 원래 잇몸이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나를 낳고 이가 안 좋은 것 같아서 스케일링을 받아야겠다고 해도 다 쓸데없는 짓이라면서 치과를 보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 말씀으로는 그때 치과를 못 가서 이가 다 빠졌다고 한다. 내 추측에는 엄마가 풍치 때문에 이가 안 좋아서 사십 대 후반쯤부터 틀니를 끼기 시작한 것 같다. 말은 내가 대학생일 때 들었던 것 같은데 그땐 나르시시스트가 뭔지를 몰라서 무슨 성인이 치과에 간다고 허락을 받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한테 "왜 다 큰 어른이 치과에 허락을 받고 가? 그냥 가면 되지."라고 받아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한테 죄송하다.



다 생각이 나지 않아서 생각나는 것만 적어보았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아빠가 특이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무뚝뚝한 성격에 공부만 하셔서 인간관계가 서툴러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었다. 그렇게 넘겼던 말들이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알고 나니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빠가 왜 그러셨는지 마흔 살이 된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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