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은 엄마에게 전해 들은 우리 아빠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반전은 우리 엄마도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잘 하지만 그들의 거짓말은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거짓말이 아니라 원래 있던 일을 과장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 글에 적은 것을 아주 거짓이라고 볼 수 없으며 다만 과장이 섞여있을 수는 있다.
그리고 전 글을 적은 이유는, 나르시시스트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다른 이들에게는 쉽게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들보다 약한 사람, 희생양에게는 본모습을 드러내는데 우리 아빠의 경우, 아빠의 희생양은 엄마였기 때문이다. 동생과 내가 있을 땐 절대 소리치거나 흥분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아빠를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엄마일 것이다.
사실 나는 우리 아빠의 나르시시스트적인 면모를 많이 보지 못했다. 심지어 나는 아빠한테 혼나 본 적도 없다.
우리 남편도 '장인어른 참 젠틀하시다'라고 할 정도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겉모습부터 태도까지 신사적이다. 그리고 밖에서는 엄마한테도 손 하나 까딱 안 하게 잘해주신다고 한다.(엄마는 이것 때문에 매우 억울해하신다.)
그리고 도박, 폭력, 알코올 중독, 외도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전혀 없다. 이 때문에 엄마가 이혼하고 싶다고 해도 외할머니가 '외도, 폭력, 도박 이런 거 아니면 그냥 참고 살아라'라고 하셨다고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없으니 당하는 사람만 분통이 터질 지경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빠가 나르시시스트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다른 사람들 평가를 많이 한다.
아빠는 직장을 퇴직하신 후에 엄마를 따라 교회에 나가셨다. 신앙심 때문에 다니시는 것 같진 않았고, 이제 직장을 안 나가시니 심심하셨나 보다 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시면서 교회의 다른 성도들을 평가하셨다. 그것도 뭐 남 얘기하길 좋아하시나 보다 하고 넘길 수 있는데 교회에 오래 다니셔도 신앙에 대한 이야기는 1도 하지 않으시고 다른 성도들의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하셨다. 이 사람은 속이 없다, 수준이 낮다 등등 주로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둘째, 옷차림에 신경을 많이 쓰신다.
이건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그럴 수 있지만 우리 아빠 같은 경우 패션에 관심이 많다거나 패션감각이나 센스가 뛰어나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겉모습으로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 옷차림에 신경을 많이 쓰신다. 요즘 유행하는 꾸안꾸에 굉장히 능하시다. 어떤 동네 엄마가 집 앞에서 우리 아빠를 보고, 현직에 계실 때 혹시 공무원이셨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니 옷 입으신 것도 그렇고 이미지가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딱 보면 전형적인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연상되게 입고 다니신다. 대놓고 화려하게 겉치장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함부로 대하기 어려울 정도로만 깔끔하게 선을 갖춰서 입으신다.
셋째,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항상 계획적이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늘 꾸준히 운동하시고 건강관리를 하신다. 나르시시스트를 알기 전에는 내가 MBTI에 빠져있어서 아빠가 철저한 J라서 그러신 줄 알았다. 물론 이건 J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걸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계획이 우선인 그런 계획이다.
독선적 나르시시스트는 겉보기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고 법도 잘 지키는 편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계획적이고 철저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린다는 것이다.
아빠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써보려고 한다.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아빠 이야기가 아주 안 나올 수는 없겠지만 아빠를 주제로 다루는 것은 여기까지 할 예정이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경험으로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니 주로 단점을 적게 되어, 가족의 단점을 까발리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나의 주 양육자는 엄마였기 때문에 사실 아빠 얘기로 쓸 내용이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가족 욕을 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단순히 가족을 욕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우리 가족은 겉보기에는 거의 완벽에 가깝고, 막장일 정도로 심각한 상태도 아니다. 그렇지만 심각하지 않으니 나 한 사람 그냥 참고 넘어가도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아서 계속 적어본다. 누군가는 이 글을 실마리 삼아 자신과 자기 가족의 문제를 알아차리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