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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문꾼 Oct 12. 2021

좋은 게 좋은 게 아닐 때 1

전지적 '좋아요' 시점


 동진은 두 뼘 남짓 돼 보이는 저 조그만 창문으로 밀려오는 빛이 싫었다. 햇살은 방을 한가득 채웠고, 특히 아침이 이른 여름이면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는 게 억울해 암막 커튼을 쳤다. 이제 더 이상 그를 깨울 햇볕은 없다. 7시 40분. '좋아요' 알림에 실눈을 뜨며, 그들의 게시물에 '좋아요'로 답한다. 한 뼘도 안 되는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불빛 때문에, 동진은 유난히 눈이 시리다.


 동진은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며 손가락으로는 피드를 넘긴다. 훔쳐보는 것이 금지된 세상에서, SNS의 관음은 합법이다. 헤어지자고 한 건 그였지만, 이기적인 미련으로 희정을 훑어본다. 하지만 곧 짜증이 밀려오며 후회한다. 그녀의 배경이 캐리비안 베이라는 게, 그리고 구명조끼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한 그녀의 검은색 비키니가 거슬린다.



 희정은 아까 업로드했던 캐리비안베이에서 찍은 사진과 핫도그 사진을 한 장씩 넘겨본다. 올해는 휴가다운 휴가를 다녀와 안심했다. 남들만큼은 잘 지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불속으로 들어와 새우처럼 몸을 옆으로 말아 눕는다. 오늘 올린 게시물의 '좋아요'를 정산하고 피드를 넘긴다. 동진이 올린 팥빙수 사진이 보였다. 자신과 동진을 동시에 팔로우하는 누군가가 동진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나 보다. 희정은 숟가락이 2개인 게 신경 쓰였다. 나를 버리고 가신 임이 잘 계신지 염탐하는 내가 싫지만, 모두 공개를 해놓은 그놈의 계정을 마저 본다.


 희정은 작년 이맘쯤을 떠올렸다. 저 두 개의 숟가락 중 하나가 자신의 것이었을 때를. 사실 동진이 먹을 팥빙수 한 입마저 희정의 권한이었으니, 동진의 숟가락도 그녀의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직 먹지 마."


 그녀는 사진을 찍는다. 자랑이 팔불출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SNS의 자비만이 그녀를 포용한다. 예쁜 카페에서 그 집의 시그니쳐를 인증한 게 전부지만, 칭찬을 받는다. 노력을 따져보면 꽤 괜찮은 가성 비다.


"먹는다?"


 동진이 팥빙수 세 숟가락을 뜰 동안 그녀는 '좋아요'를 생산 중이다. 사진을 고른 뒤, 갈고닦는다. 촌스럽지 않으면서 노출이 많이 될 만한 헤시테그를 쥐어짠다. 희정은 눈으로만 먹어도 배부르다. 과연 사람들이 진짜 좋아서 '좋아요'를 누르는지 의심이 들면서도, 쌓여가는 '좋아요'를 보면 흐뭇하다. 그래서 나만 보기 아까운 것들은 일단 자랑하기로 했다. 데이트와 생산을 동시에, 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하지만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듯, 그녀는 맞은편에서 동진이 '좋아요'를 소비 중인지 모른다. 동진은 예쁜 여자가 가슴이 훤히 드러난 옷을 입고 밥을 먹는 사진에 '좋아요'를 물쓰듯 썼다. '좋아요'가 돈이었다면, 원금과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파산 직전까지 가지 않았을까.


 물론 그는 저렇게 예쁜 여자가 자기 주변에는 한 명도 없기에 현실과 이상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본인이 데이트하는 와중, 친구 커플의 데이트를 실시간으로 구경하는 게 아이러니라는 건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너 같은 애를 찬 거 보면 그 새끼는 굴러들어 온 복을 찬 거야."


 희정은 '나 같은 여자'와 '복'이라는 단어가 잘 이해되진 않았지만, 심심한 미진의 위로가 듣기 싫진 않았다. 인정받고자 하는 세상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복(福)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두 달 전 무당 할머니에게 들었던 말이 곧 떠올랐다. 


"복이 넘쳐버리면, 그 복에 깔려 죽어 이년아." 


 동진의 이별통보는 충격이었다. 만나면 할 말도 없고, 맨날 연락 가지고 싸우는 게 지쳤다고 한다. 희정은 거절의 원인을 자기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왜 이리 카톡 답장을 늦게 보내느냐고 묻는 자신이 성가셨고, 내가 뭐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으냐 되묻는 스스로가 가여웠다. 자책으로 시작했지만, 동진이 여자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했던 추억들을 떠올리기 시작하니 가슴 아팠다. 


 지금 이 상황에서 동진을 향한 생각은 전혀 득이 될 게 없었다. 늪에 빠진 희정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용하다는 선녀 보살님을 찾아 망원동에 갔다.


 "너 복권 당첨된 사람들 중에 불행한 사람이 왜 그런지 알아?"


 "..."


 "그걸 횡재운이라고 하는데, 복이란 게 담을 만한 그릇이 안되면 깔리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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