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가 두려운 그대에게

「소유냐 존재냐」 서평

by 산문꾼


Photo by Finding Dan | Dan Grinwis on Unsplash

그대가 만약 나처럼 모범답안에 길들여져 있다면, 제목을 보는 순간 이미 견적은 나왔을 것이다. ‘당연히 소유보다 존재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세상에 물질 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다는 얘기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다. 뻔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은 다음의 책이 다소 진부할 수 있다.

모범답안은 지루하다. 저자는 존재적 실존 양식의 전제조건으로 독립과 자유, 그리고 비판적 이성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p.129) 그 외에도 베풀고, 나누고 희생하려는 의지, 실재로서의 존재 등 바람직한 가치들을 말해준다. 그러나 헬조선이라 불리는 오늘날, 그가 말하는 존재양식은 상당히 거창해 보였고, 돌려줄 만한 답장은 냉소뿐이다.


어제의 갑질은 그래도 남들에 비해 가진 자로부터 나왔다. 현실은 늘 답안지를 따라가지 못했다. 땅콩 때문에 비행기를 돌리고, 부하 직원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장님의 태도는 마땅했다. 연초에 있던 신정부의 5대 적폐 청산 (병역기피,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인사 청문회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양반들은 이미 신뢰를 잃었다. 한쪽에서는 소유를 무기 삼아 상처를 주고, 소유를 바탕으로 혜택을 거둬들이고 있다. 맥락이 결여된 존재양식은 눈 가리고 아웅 이였다.


해답과 현실의 괴리감은 우리를 늘 고통스럽게 한다. 때론 급하게 답지를 들추기보다, 의심하고 되묻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 이롭지 않을까. 나는 근심과 걱정이 생길 때마다 백지를 펼친다. 이때 느끼는 내 감정과 앞으로 일어날 것 같은 일을 종이에 나열해보는 것이다. 두려움은 예측하지 못하는 막연함에서 생긴다는데, 일단 한번 써보는 것이다. 공포가 정리되어 백지에 드러나는 순간, 나는 관객이 되어 두려움을 구경한다. 이것들은 손바닥 위에 올려진 채 예측 가능한 무엇이 된다.

우리는 왜 소유로부터 고통받을까. 소유의 방식은 보통 나만 바라보지 않는다. 내 선에서 끝나지 않고, 남의영역까지 침범하여 비교의 결과물로 나타난다. 프롬의 어깨 위에 올라 고통의 두려움을 낱낱이 나열해 보자.

소유는 나를 만들기도 한다. 프롬은 당시에 자동차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인간의 심리를 냉철히 분석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반복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자동차는 내가 애착을 느끼는 구체적 대상 이라기보다 나의 신분과 나의 자아의 상징이요, 나의 힘의 연장이다. 자동차를 구입함으로써 나는 사실상 새로운 한 부분적 자아를 취득한다. 프롬은 소유주가 새 차를 구매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모델로 관심이 바뀌는 사실에 대해 5가지의 근거를 들며 수수께끼를 풀어준다. (p.109)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남의 돈을 빌려 자아를 구입하고 있으며, “압류”와 “강제 경매”의 덫을 지나가고 있다.


소유는 나를 넘어 너와 우리 사이에 끼었다. 소유 지향적 인간은 자기가 사랑하거나 찬양하는 사람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양편이 그 어느 쪽이든 상대를 자기 휘하에 두고 싶어 하며, 다만 상대와 가까이 있음을 즐기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중략) 소유 지향에 근본을 둔 관계는 억압과 부담을 주며, 갈등과 질투로 채워지게 된다.(p.163)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깎아 내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누군가 한 사람의 생각에 불과한데, 남들 대부분의 의견인 것처럼 둔갑해 상처를 주거니, 받는다. 동지를 소유하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았는가. 오늘도 나는 이 소유 지향적 관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경쟁심, 적대감, 두려움 (p.163)으로 살아가고 있다.


소유의 파장은 넓게 퍼져 가치(value)까지 집어삼킨다. 목표를 이룩했을 때 우리는 흥분이나 강렬한 만족감을 느낄 것이고, 절정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것이다.(p.169)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시작해, 취업, 승진에 걸친 성공 신화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지금껏 온갖 자기 계발서의 법칙은 목표에 대한 강박을 심어 놓았다. 서바이벌 식의 아이돌 양산 프로그램에서는 목표를 달성한 이에게만 조명을 비춘다. 젊은이들은 꿈이라는 달콤한 말에 현혹되어, 열정이라는 페이를 버는 현상도 종종 일어난다. 프롬은 이를 격정이라 불렀다. 격정이란 인간적인 것이기는 하되, 그것이 실제적으로 인간의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로 통하지 않는 한 병적인 거라고 비판한다. 채워지지 않은 우리의 욕망은 라틴어를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모든 동물은 성교 후 우울하다.(Omne animal post cointum triste)”

50년 전의 그는 역사가 반복될 줄 알았을까. 과거의 생산자는 필요를 팔았다면, 지금의 생산자는 욕구를 판다. 오늘의 신상품은 내일의 재고품이며, 꼭 사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기도 한다. 오늘날 이런 현상을 예건이라도 한 듯, 그는 상품광고와 정치 선전을 “최면술적 방법”이라 정의했으며(p.256), 이것이 모든 국민을 바보로 만든다고 비판했다. 우리는 최면술 같은 선전 방법에 조작당하여 온전한 정신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2018년도 대한민국은 워라밸, 소확행이라는 최면 속에서 힐링을 사고팔았다.


당연시 여겨왔던 (소유적) 가치들을 의심해 본다면, 책은 우리 안에 꽁꽁 얼어있는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될 것이다. 게다가 난해하게 쓰이지 않은 프롬의 세계관은 지금껏 많은 사람들에게 철학 입문서로서 두루 읽혀왔다. 만약 당신이 오늘도 누군가와의 비교로 인해 소외받았다면, 이 책을 통해 그 원인을 나열해 보자. 그대는 해답을 찾을 것인가, 마천루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것인가.

keyword
이전 05화다른 갈등, 같은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