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서막- 네 마리의 고양이 식구
“아아아악!!!”
한밤중에 엄마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 한마리가 엄마의 침대 머리맡에 자다가 엄마의 가슴팍 위로 냅다 뛰어내려 유유히 방을 떠난 것.
엄마는 동물과 상성이 맞지 않는 사람이다. 훈련도 훈련이지만, 똥오줌이나 털 문제 등, 집안이 동물로 인해 더러워지고 냄새가 나는 것을 극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내가 서울에서 엄마 집으로 내려오게 하기위해 분명 고양이 네마리도 함께 내려갈 것을 약속을 했고 난 그 말을 믿고 데려왔을 뿐인걸…?
물론 나도, 엄마도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는 강아지나, 새는 겪어봤어도, 무섭고 징그럽다며 싫어한다던 고양이를 내가 그것도 네마리나 한꺼번에 데려왔으니 말이다.
직접 겪고 보니 오밤중에 야행성으로 인해 활동하던 녀석들이 주방이며 식탁이며, 엄마의 침대며 머리맡이며 활개를 치고 다니다 사고를 기어코 친 것이다.
엄마도 이해해 보려 했지만, 우리 둘다. 그 정도일거라고는 예상치 못한것이다.
엄마도 받아들이려 해봤지만 고양이의 습성을 몰랐었고, 나도 엄마가 그정도로 고양이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거란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엄마의 약속을 믿었을 뿐이고, 엄마는 그저 고양이들이 얌전히 앉아만 있는 생명체인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결국, 드디어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야 당연히 힘도 키도 모든 게 약했던지라 감히 엄마의 말에 반박을 하거나 반항할 엄두조차 못냈다.
그러나 32살에 엄마 집으로 합가하게 되었으니, 키도 덩치도 힘도 모든게 월등히 이제는 엄마보다 위였다.
그래서 였을까?
어린 시절 겪었던 엄마의 강압적인 태도와 말에 늘 마음 속 깊이 상처를 끌어안고 있던 나는 어쩌면 당당히 폭발한건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었다면 당연히 생각하지도 못했을 반발.
그러나 지금은 확실히 상황이 많이 변했다. 그걸 나도 인정한다.
어린 시절 엄마가 나에게 상처와 트라우마를 잔뜩 안겨줬다는 핑계하에 엄마에게 잔뜩 풀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서울살이 하면서 정신적으로, 멘탈이 이렇게나 붕괴된 탓은 모두 엄마로부터 온 것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 하고 핑곗거리를 매번 찾아 복수라도 하듯 온갖 분풀이를 한 것이다.
지금에서야 깨달은 거지만 32살 그때의 나는 그것조차 몰랐다.
진심으로 엄마때문이라고만 여겼고, 그것은 그때 당시에는 진실이 되었고 사실이었다.
내가 그렇게 믿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데리고 온 고양이 네마리로 인해 시작된 전쟁.
어쩌면 고양이들로 다툼이 생길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나 또한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엄마가 화가나고 스트레스를 받을 줄을 몰랐기에 답답했다.
그때의 우리는 서로 의견조율이라던가 제대로된 대화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몰랐던 미숙했던 어른 두명일 뿐이었다.
당연히 서로 각자 자기의 입장만 얘기를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하여 얘기하니, 싸움이 되고, 싸움이 더욱 극심한 갈등을 불러오기만 했다.
우린 격렬하게 싸웠다.
나는 그때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와 트라우마를 무기 삼아 엄마에게 조목조목 따져대기 바빴다.
내 멘탈이 가장 힘들 때 고양이 한 마리를 운좋게 지인분을 통해 입양해왔다.
내가 보살펴야 하는데, 오히려 이 녀석은 날 위로했다. 그러니 내 입장에선 10년이나 넘게 서로의 가족으로 살아오고 서로를 위로한 존재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엄마보다 오히려 이 아이 때문에 내가 지금껏 살아있는 거라고 말이다.
나는 자살충동까지 심하게 느낄정도로 심각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안은 채 서울살이를 마치고 엄마 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고양이를 포기할 수 없었던 나와 두마리라도 다른 곳으로 보내자는 엄마의 의견이 결국 싸움이 되면서 우린 서로를 원망하며 매번 싸워야만 했다.
누가 싸우고 싶을까.
알면서도 서로 헐뜯고 싸우기만 바빴던 우리.
그런말이 자주 생각났었다.
원래 부모자식은 전생에 원수지간이라서 신께서 현생에 둘을 붙여놓는 것이라고. 업으로 갚으라고 말이다.
공감이 되지만서도,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우린 서로를 생각하면서도.
우린, 그렇게나 싸우기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