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이 아닌 먹덧 수행자

2019. 7. 11(목)

by 스튜디오 포카

나는 모든 음식을 다 잘 먹는 편이다. 가리는 음식도 없었고, 그만큼 특별히 고집하는 음식도 없었다. 다만 기력을 보충하고 싶을 때 먹는 음식 몇 가지 정도만 정해둔 편이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는 연어 초밥을 먹거나, 중요한 일을 마친 날엔 토토와 소곱창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임신 후로는 이전보다 굉장히 구체적으로 음식에 대한 갈망을 느끼는 기분이다. 아침은 거르고, 느지막이 아점을 챙겨 먹던 평소의 습관과 달리, 아침 8시부터 아침 밥상을 거하게 차려놓고 밥숟갈을 뜰 때마다 '아... 임신하면 이렇게 되는 거구나' 싶다. 내 생애 먹는 일이 이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졌던 적이 없었다.

한 편으로는 평소에 안 먹던 음식이 땡기기도 했다. 고춧가루와 무, 두부, 파를 듬뿍 넣어서 끓인 뒤 냉장고에 넣어서 차게 식힌 시원한 콩나물국이라던가... 엄마와 나는 음식 취향이 참 달랐는데, 콩나물로 만든 음식만큼은 예외였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던 계절, 학교에서 돌아와 냉장고에서 차게 식힌 콩나물 국에 밥솥에서 갓 꺼낸 따끈한 밥을 말아먹는 것은 마음까지도 배부른 일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시원한 콩나물국을 마신다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울렁거림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나의 이런 증상을 '먹덧'이라고 불렀다.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오늘처럼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하는 음식이 떠오르는 경우엔 좀 곤란해진다. 요리도 창조적인 활동이라, 기력이 충분치 않은 요즘 같은 날에는 도무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겨우겨우 마을버스를 타고 인왕시장에 들러 줄기가 굵은 콩나물을 천 원어치 사 왔다. 하지만 나의 에너지는 거기까지였다. 도무지 요리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콩나물을 야채 통에 고이 넣었다. 콩나물이 콩나물국이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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