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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Oct 28. 2019

남들은 지나친 고민이라지만 어쩌겠어요

2019. 8. 26(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오래도록 앓던 이가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아이의 신체변화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던 분들이 아니었기에 치과 검진은 고사하고, 이가 아프다고 해도 치과에 데려가 주지 않았다. 해가 거듭할수록 어금니 근처의 이는 심하게 썩어 잇몸이 붓고 냄새가 났다. 매일매일 어느 정도로 부어있는지를 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 많은 언니에게 입을 크게 벌려 보여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명절에, 외할머니댁에서 오래도록 흔들리던 이를 화장실에서 혼자 뽑았다. 세면대 위로 피가 흘렀다. 수돗물로 입 안을 꼼꼼히 헹구고, 뽑은 이를 휴지에 싸서 들고 나왔다. 이것 때문에 그렇게 아팠다니. 앓던이의 뿌리는 울퉁불퉁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꽤 길었다. 치아에는 그간의 고생의 흔적이 여기저기에 담겨있었다. 이를 뽑았다는 나의 말은 친척 언니, 오빠들의 입을 타고 어른들에게 퍼졌고, 그중에 누군가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지만, 다수의 어른들은 괜찮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우리 부모는 스스로 해결한 것(?)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속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자라면서 이가 흔들리거나, 커터칼에 베이거나, 티눈이나 종기가 나거나, 무릎이 까지거나, 손바닥에 가시가 박히는 등의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자연히 깨달았다. 몸에 난 상처들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여섯 살 위인 언니의 도움을 받아 상처를 소독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으니 다행인 일이었다. 나는 특별히 크게 다칠만한 사고를 겪지도 않았고, 심각한 병치레도 없어서 감사히도 잔상처들만 치료하며 살아왔다. 또 의외로 덤덤한 성향이라 다치고 아픈 일에도 어지간해서는 겁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임신한 나의 몸은 이전과는 또 다른 문제이더라. 그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임신은 몸에난 생채기도, 그저 출산의 고통만이 아닌, 3n 년 동안 익숙했던 나의 몸과 하루하루가 멀어지는 경험이다. 아무리 임신 경험이 있는 자매라 해도, 나의 경험과는 또 다르기에 조언을 구하는 것에도 한계를 느낀다. 더구나 내 자궁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들여다볼 수 없기에 때로는 눈뜬장님과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다. 임신의 증상 중 하나인, 속이 불편한 기운이 말끔히 사라지는 날에는 마음이 마냥 편한 게 아니라 혹시라도 태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임신은 나의 미래가 예측 불가능하고, 종종 건강이 취약한 사람으로 취급되며(몸조심해라, 건강 잘 챙겨 등등의 인사말을 받는다), 나의 몸임에도 어리숙 할 수밖에 없고, 누군가의 조언을 찾거나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태이며 또한 나라의 관리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돌봄을 받기도 하는... 여하튼 모든 면에서 생경한 경험을 하게 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나의 상태를 이전의 몸과 비교하여,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아이에게 장애가 발견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쉽게 떨칠 수가 없다. 최근의 병원 검진에서 기형아 감별 검사를 1차만 마친 상태고, 아직 최종 검사 결과는 모르는 상태이다. 나는 결혼 초기에 남편과 '만약 임신을 하게 되어도, 태아에게 장애를 가진 것이 판별된다면 임신 중절을 하는 것'으로 약속을 했다. 이것은 온전히 나의 결정이었으나, 그 역시도 수긍한 부분이었다. 토토는 지금의 직업을 가지기 전, 다큐멘터리 방송의 방송작가로 일하며 모금방송을 만들어 왔다. 후원이 필요한 가정을 수차례 취재해왔는데 장애, 의료의 지원이 부족한 상태 등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가정들과 복지의 사각지대를 보아왔기에 내 말에 수긍했고, 또한 나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 결정권이 우선하는 것임을 지지했다. 한 편으로 나는 반려견을 기르며,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검은 개(의외로 검은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으며, 한국인들은 하얀 개를 선호한다. 가정에서 하얀 개가 태어나면 행복한 일이 생긴다는 속설도 있다)이자 몸무게 20kg의 중형견(이지만 한국에서는 초대형견이라고 불림)을 기르며 한국에서는 정상의 범주에 속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고 살기 어렵다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된 것이다. 개를 산책하러 나온 죄로, 길에서 온갖 종류의 폭력적인 언사와 눈초리를 겪으며, 내가 그동안 무탈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평범한 부류에 끼어있었기 때문이 아닐까란 것을 자연히 깨닫게 되었다. 내 아이, 아니 태아인 나의 이 작은 세포에게도 이러한 우리의 선택적 기준을 댄다면 장애를 혐오하는 것이 되는 걸까. 마음이 복잡해진다. 



결혼 초기에 아이를 가질지 말지에 대해 토토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일을 하다 만든 실수는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지만, 아이를 만나는 일은 생명을 세상에 내놓는 일이라 돌이킬 수 없다. Ctrl+Z가 먹히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으며, 파트너와의 양육 가치관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걱정되는 것들을 공유하다가 만약에 우리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성소수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만약에 아이가 성전환 수술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란 나의 질문에 토토는 곰곰이 생각을 했다. 성별 전환 수술은 우리나라보다 타국에서 발달되어 있고, 수술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호르몬 주사도 수회 거듭해서 맞아야 하는 등의 준비과정이 길다고 들었다. 유교사상이 짙은 우리나라의 경우, 가정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때 들어가는 비용을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 시급이 높고,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유흥주점 등의 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토토는 그 얘기까지 듣고, "그러면 애가 너무 고생할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수술하고 싶다고 하면 우리 전세금을 빼서 수술비용을 마련해주자. 우리는 더 작은 집으로 가면 되지."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더라. 우리는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관대할 수 있으면서, 장애는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비이성적인 사람인 것 같고, 위선적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다 극복해야만 하는 것일까? 장애는 극복의 대상인가?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을 남겨두면 안 되는 걸까.



고민이 계속 이어진다. 임신은 앓던 이를 뺐던 그날처럼, 좀처럼 후련해질 수 없는 경험이다. 오히려 고민과 인내를 견디는 무거운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임신 기간 동안 떠안게 되는 고민들은 혼자서 해결할 수도 없다. 주변인들에게 의견을 나누고 지혜를 얻는 수밖에... 지금은 마꼬가 나의 몸을 불편하게 하는 나의 신체의 일부이지만, 세상의 빛을 볼 때는 나와는 분리된, '또 다른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인간의 평균 임신기간은 266일~280일이라던데. 동물과 달리, 오랫동안 고민해보고 좋은 보호자가 되라는 뜻으로 태아가 만들어지는 시간이 이렇게도 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전에는 임신도 출산도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무조건 겁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라면 자신이 없었을 테지만, 나와 같은 가치관을 가진 파트너와 주변의 지인들을 보며 자신감을 얻기도 한다. 매일매일 마음을 다독이며 용기를 내고 있다. 그러니 마꼬도 나도, 부디 건강한 상태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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