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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Apr 17. 2019

엄마의 강아지

1984년생 엄마가 2014년생 아들에게

국도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 아스팔트 도로 벽과 맞물린 야트막한 산이 자꾸만 엄마의 시야에 걸친다. 잎사귀의 초록색보다 마른 나뭇가지의 색이 더 많은 탓에 4월임에도 산은 여전히 겨울을 입은 모습이야. 그중에서도 분홍의 무리가 듬성듬성 보이는데, 나무들의 낮은 채도 덕분에 산의 브로치처럼 눈에 확 띈다. 진달래꽃이야. 우리의 옛 아파트 옆 야산에도 진달래가 피었겠구나.      


엄마는 24살 여름 증권사에 입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립을 했단. 첫 발령은 해운대에 있던 지점이었는데 직장과 가까운 광안리에 방을 구했지. 그리고 5개월 후 ‘리옹’이라는 강아지를 키우게 됐어. 네 기억엔 '탑' 밖에 없겠지만 엄마와 먼저 한 강아지는 넌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리옹이었단. 엄마가 출근할 동안 혼자 있는 리옹이가 맘에 쓰여 동생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어. 가정 분양을 하는 집에 직접 가서 데리고 온 리옹과 달리 탑은, 어느 업체에서 운영하는 분양사이트가 첫 만남이었지. 그 업체는 일산에 있었고 엄마는 부산에 있었는데 이렇게 먼 거리에서 어떻게 강아지를 분양받느냐 했더니 비행기로 보내준다고 말하더구나. 비행기 도착 날짜와 시간을 알려줄 테니 시간 맞춰 공항 화물센터로 가면 된다고 안내와 함께.


퇴근하고 급히 공항으로 달려갔지만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고 찾아간 화물센터는 야외에 있었어. 그때가 2009년 2월쯤이었으니 아무리 남쪽 도시 부산이라 하여도 겨울의 밤이 혹독했을 때야. 그 밤, 이름 없는 장모치와와 새끼 한 마리는 아스팔트 위에 놓인, 담요 하나 없는 차가운 케이지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덜덜 떨고 있는 온몸을 똥으로 뒤범벅한 채 말이야. 비행기 태우기 전 사료를 먹이면 안 되는데, 직원의 착오로 배식을 해서 실례를 한 모양이라는 업체의 설명을 나중에야 들었지만. 온몸에 묻은 똥을 물티슈로 대충 닦아내도 냄새는 쉬 가시지 않았지. 한 손 위에 올라오는 까만 솜털 뭉치와 눈이 마주치는데 이마 아래 박힌 갈색 눈썹이 아주 용맹하더구나. 당시 최고의 보이그룹 빅뱅의 한 멤버가 떠올랐어. 그의 팬은 아니었지만 왜인지 그의 눈썹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눈썹이 닮았다는 이유로 까만 솜털 뭉치 이름은 ‘탑’이 되었단다.      


 크림색의 장모치와와 리옹이 당당한 작은 사자 같았다면, 블랙탄인 탑은 소심하고 겁이 많았어. 고백하건대, 리옹은 엄마의 친자식이고 탑은 서자의 느낌이었다. 애초에 리옹이 외로울까 봐 데리고 온 아이였고, 모든 것은 리옹이 우선이었어. 이런 엄마 마음에 벌을 받았나 봐. 그날도 벚꽃이 눈처럼 휘날렸으니 딱 이맘때였겠다. 일요일 아침, 늦잠에 취해 있는데, 리옹과 탑을 산책시키러 나갔던 ‘그’가 우당탕탕 들어오는 소리에 잠을 깼어. 눈을 채 뜨기도 전, 울부짖는 그의 목소리에 평범한 일상이 깨졌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지. 

“리옹이가...리옹이가...”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엄마는 곧바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어.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어. 단지와 단지 중간 2차선 도로 위 택시 아래, 리옹이는 옆으로 누운 채 하이얀 벚꽃 이파리를 맞고 있었다. 모든 것은 그의 잘못이었고 엄마는 그저 리옹을 어루만지며 울 수밖에 없었다.


탑은 그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했고 리옹은 길 건너편에서 이리저리 탐색을 하고 있던 차, 택시 한 대가 천천히 미끄러지듯 내려왔다고 한다. 그는 손을 들어 택시를 세웠고 리옹에게 건너오라는 신호를 주며 탑에게 시선을 돌리는 순간 단발의 비명이 들렸다. 그의 신호를 보고 리옹이 길을 건너려는 찰나, 택시 기사는 그가 택시를 타기 위해 손을 들었다고 생각하여 다시 차를 움직인 결과였다. 사건을 수습하는 그 시간이 길었는지 짧았는지 엄마는 지금도 가늠할 수 없어. 택시 기사를 보내드리고 나서야 탑이 사라졌다는 걸 알았고, 거기엔 분명 탑도 함께 있었는데 모두가 리옹을 보느라 그 누구도 탑을 챙기지 않았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지. 그가 탑을 찾아보기로 하고 엄마는 리옹을 품에 안은 채 빌라 계단을 올라왔다. 탑은 그곳에 있었어. 그날 밤 “차라리 탑을 데리고 가지, 왜! 왜 리옹이를?” 엄마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어야 할 그 탑이 오도카니 집앞에 앉아 있었다.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또 다른 작은 심장이 콩콩 뛰는 걸 종종 느낀 적 있니? 그랬다면 엄마의 부른 배 위에 ‘탑 형아’가 엎드려 있어서야. 네 친할머니는 탑을 너와 빗대어 말하실 때 꼭 '탑 형아’라고 하셨단다. 너보다 6살 많은 탑 형아는 엄마 태몽에도 등장했어. 아주 예쁘고 작은 꽃사슴이 엄마 집으로 들어가는 꿈이었는데 그 뒤를 글쎄, 탑이 따라가고 있지 뭐니.


 탑 형아는 리옹이가 떠난 광안리 집을 거쳐 해운대 달맞이고개, 서울 까치산역, 강서구청 앞, 강일동, 문정동, 충북 오창 등 엄마 따라 이사 다니며 덩달아 짐을 싸고 풀고 했지. 뿐만 아니야. 엄마는 퇴사 후에 강의를 시작했는데, 탑은 종종 엄마 강의하는 곳에 따라가기도 했어. 때론 차 안에서, 때론 숙소에서 엄마를 기다리면서 말이야. 엄마가 돌아오면 순하고 얌전한 탑은 기지개를 켜며 온몸을 털어댔지. 그리곤 엄마와 주변을 산책하곤 했어.


네 친할머니는 그러셨어. 엄마가 임신한 동안 탑이 옆에 있어줘서 다행이라고 말이야. 아빠도 탑에게 고마워했단다. 탑 덕분에 엄마가 다만 산책이라도 나간다고 말이지. 엄마는 폭신한 매트 위 쿠션에 비스듬히 기대어 탑을 엄마 배 위에 올려놓는 걸 좋아했어. 눈을 바라보며 쓰다듬기엔 딱 좋았거든. 양손으로 탑 얼굴을 감싼 채 뾰족 솟은 귀를 엄지손가락으로 살살 어루만지다가 볼에 난 털로 손길을 옮길 즈음이면 탑의 눈은 어김없이 감겨 있곤 했단다. 너도 탑 형아의 따스한 체온과 엄마의 평온한 마음을 느끼며 유영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그때 우리 셋은 모두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네가 태어나고 잠시 탑을 친할머니에게 맡겼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탑을 정말 예뻐하셨어. "우리 탑, 착한 탑"이라 하시며 엄마도 한 번 안 해 준 탑 생일잔치도 열어주고, 계단이 있으면 탑 다리 아프다고 안아주고, 가끔은 등에 업고 다니기도 하셨지. 꽃나무를 좋아하는 할머니는 꼭 꽃 앞에 탑을 세우고 사진을 찍으셨어. 음식도 얼마나 신경 써서 건강식으로 먹이는지 너보다 탑 형아가 더 잘 먹었을 정도야. 엄마가 탑을 키울 때는 사료와 파는 간식만 줬었는데, 할머니는 두부, 브로콜리, 연어, 참외 같은 걸 매끼 주시더라고. 몇 달 후 탑의 까만 털에 윤기가 얼마나 흘렀는지 몰라. 엄마가 강아지로서 탑을 사랑했다면 할머니는 자식으로서 탑을 사랑한 것 같아. 그런 마음을 아는지 언젠가부터 탑도 6년의 시간을 보낸 엄마보다 더 짧은 시간을 보낸 할머니를 따르더라고. 불러도 오지 않고 처음에는 어찌나 서운하던지. 그렇게 탑은 자연스레 할머니의 강아지가 되었어.          


탑이 요즘 영 기운이 없어서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할머니가 말씀하신 건 그로부터 2년이 채 안됐을 때야. 동물병원을 다녀와서 진료 결과를 전해주는 할머니 목소리는 담담했어. 신부전증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고. 길어야 2주라고. 탑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상 이상으로 처참하게 변해갔어. 먹지 못하여 온몸의 지방과 근육은 다 빠져서 뼈만 앙상했고, 그 윤기 흐르던 까만 털은 뻣뻣한 빗자루 같았어. 그래도 조금씩 걷고 짧은 산책도 하는 모습에 안심이 조금이나마 된 것도 잠시, 날이 갈수록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졌지. 엄마는 괴로워하는 탑을 보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건지, 어떤 게 맞는 건지 혼란스러워했지만, 할머니는 오로지 눈앞의 탑만 신경 쓰셨어. 억지로라도 미음을 먹이고, 주사기로 탑의 목구멍 깊숙이 물약을 밀어 넣고, 화장실에 가고 싶어 하는 기색이면 화장실에 데려다주고, 아파하면 계속 만져주고.


그날 탑의 모습은 그동안 추상적이던 ‘죽어간다’는 게 무엇인지 정말로, 똑똑히 보여주었어. 엄마가 가장 좋아하던 귀부터 볼에 이르는 털은 기름에 젖은 듯 보였고, 탑은 눈만 계속 감고 있었지. 눈을 뜬 순간이 잠깐 있었는데 화장실에 가기 위해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날 때였어. 하지만 탑은 선 자리 그대로 묽은 똥을 싸버렸고 여태껏 맡아보지 못한 역한 냄새가 퍼졌단다. 낯선 곳에서도 배변 실수를 단 한 번 한 적 없던 탑은 무척 당황했어. 우리 중 그 누구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지. 밤이 되고서 아빠는 이만 가자했고 엄마는 오늘 여기서 자고 갈까 생각했지만 내일 다시 온다 하고 집을 나섰다. 그때 할머니 집에서 잤어야 했는데. 그래야 탑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줄 수 있었는데. 그날 새벽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힘겹게 고개를 한 번 들더니 품에서 떠났다고. 탑은 거짓말처럼 두 달을 더 살다 갔어.     


탑의 유해는 아파트 뒤 작은 야산에 묻혔고 네 할아버지는 진달래 묘목을 거기 심으셨다. 할머니는 낮밤 가리지 않고 거기 가서 우신 덕에 할버지는 할머니의 안전을 걱정하셨지. 아빠도 술 먹고 거기로 가서 우는 날이 잦았다. 엄마에게 전화해선 탑한테 못해 준 것만 기억난다고 엉엉 울기도 하고, 탑한테 자주 가보지도 않는다고 엄마를 타박하기도 했지. 할머니는 엄마에게 몇 번을 말씀하셨어. 이놈의 시키가 꿈에 한 번 안 나온다고. 어느 날 엄마 꿈에 탑이 나왔는데, 즐겁게 뛰어다니더구나. 이 이야기를 할머니께 전하니 “그래도 원래 주인이라고 시현이한테 갔나 보다.” 하시더라그때 너는 4살이었는데 요즘도 종종 엄마에게 말하지. 탑이 보고 싶다고. 탑이 어디 있느냐 되물으면 너는 말한다. 탑은 산에 있다고.    

 

엄마는 2년이 지난 요즘 뒤늦게 많이 운다. 회식하고 집에 들어온 날 밤 엉엉 울고,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 오디오북을 듣다가 엉엉 운다. 추운 겨울 케이지에 갇혀 비행기 화물칸 안의 탑의 두려움을 느껴서 엉엉 운다. 친구의 죽음을 보고, 아무도 본인을 챙기지 않고, 혼자 집을 찾아가고, 닫힌 현관문 앞에서 얌전히 엄마를 기다리던 탑의 마음이 떠올라 엉엉 운다. 리옹이 떠난 날 밤 탑 앞에서 울부짖던 엄마의 말이 죄스러워서, 눈을 감지 못하고 떠난 탑의 마지막 모습이 가여워서 엉엉 운다. 탑의 작은 머리부터 쓸어내리면 부드럽게 접히던 귀의 감촉이 그리워서, 그 어느 털보다 부드러워 가장 좋아했던 볼 털도 여전히 생생하여 엉엉 운다. 남들은 진달래꽃을 보고 김소월 시인의 시를 떠올리지만 엄마는 탑을 떠올리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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