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경험할 수 있어요. '신체화'
혹시 들어보신 적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생생하게요.
낮엔 분주해서 잘 느끼지 못합니다.
문제는 밤입니다.
침대에 눕기만 하면, 어김없이
심장 소리가 북처럼 울려오기 시작합니다.
정자세로 누워도, 옆으로 누워도 마찬가지예요.
‘나 왜 이러지?’
너무 피곤한데, 빨리 자야 다음 날
또 일상을 버텨낼 수 있는데…
귓가에 울리는 북소리에 자꾸 신경이 곤두서고,
명치는 답답해지고, 숨까지 잘 쉬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그렇게 밤새 뒤척이다가 진이 빠진 상태로
아침을 맞는 날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7월.
아이 여름방학을 코앞에 둔 어느 주말,
금·토·일 사흘 밤을 내리 한숨도 못 자고 나서
저는 출근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운전이 불가능한 상황.
병가를 내고, 처음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믿기 어려울 만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평안할 수 없고,
마음에 지침과 괴로움,
두려움, 외로움이 차곡차곡 쌓이면
멀쩡하던 몸도 갑자기 여기저기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병원에 가면 특별한 질환이 없다고 해요.
하지만 몸은 분명 이상하고 괴롭습니다.
자는 듯 안 자는 잠, 가슴을 조이는 통증,
마비 증상까지…
이런 상태를 ‘신체화(somatization)’라고 합니다.
정신적인 고통이, 결국 신체 증상으로 드러나는 겁니다.
무급휴직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던 때.
사실 그때의 저는 이미 신체화가 꽤 심각하게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스스로를 나약하다고, 한심하다고 다그치고 있었어요.
.
.
정신과 첫 진료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가족과 동료들의 재촉에 마지못해
병원에 찾아갔고, 로비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앉아 있었죠.
그런데 진료실 문을 열고
원장님의 첫마디를 듣자마자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울 생각, 정말 1도 없었거든요?
그저… 그 말을 너무 듣고 싶었던 거예요.
누군가가, "힘들었지요?"라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그 한마디.
그날 저녁, 처방받아온 약을 먹고 잔 다음 날 아침.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그날 깨달았습니다.
나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잠다운 잠 없이 버티며 살아왔구나.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가슴에 휘몰아쳤습니다.
슬픔, 서러움, 외로움…
정신과 진료는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진료비도, 약값도 일반 병원보다 높습니다.
더불어 실손보험에 치료비를 청구하면
향후 보험 가입이나 갱신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치료비 지원을 받기도 어려워요.
정신과 약은 병원에서만 처방되고,
한 번에 3주 차까지만 받을 수 있어
치료를 시작하면 꾸준히 병원에 다니며
복용 상태를 관찰해야 합니다.
다행히 저는 처음부터
처방받은 약이 몸에 잘 맞았지만,
많은 분들이 이 과정에서
적잖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아슬아슬하게’ 멈추는 데 성공한 거였어요.
조금만 더 무리했다면,
그 뒤엔 약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병이
찾아왔을지도 몰라요.
책에서 읽은 구절이 자꾸 떠오릅니다.
“우울은 감정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없다.
말라 부스러지기 직전의 낙엽처럼
바짝 말라버린 감정.”
『언제부터 사람이 미워졌습니까』 中
아직 무언가를 느낀다는 건,
내 안에 감정의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아직 가까운 주유소까지 갈 수 있는
연료는 남아 있는 거예요.
나의 몸과 마음이
“멈춰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
그 신호를 무시하지 마세요.
너무 늦기 전에,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망가지기 전에 잠깐 멈추는 것.
그것은 결코 인생의 실패가 아닌
진짜 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선택,
더 멀리 그리고 더 오래 걸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숨 고르기일 수 있어요.
❤️당신이 힘들었다는 사실을,
최선을 다해 버텨왔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당신이 제일 먼저 인정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