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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민기 minki Sep 28. 2024

# 아홉 살, 사내 아이의 밤들...(1)

-'벨튀', '오란C', '하얀 그림자'의 밤들...

아홉 살 나이에 나는 가족과 뿔뿔이 흩어다.

부모님과 셋째, 넷째 누나는 할아버지가 계신 시골로,

누나와 둘째 누나는 직장을 찾아 마산으로,

나는 교육을 이유로 큰누나의 단칸 자취방으로...

누이들의 자취방은,

유난히 몸집이 작았던 큰누이와 오랜 운동으로 군살이 없던 둘째누이,

그리고 아홉 살 짜리 나...

이렇게 셋만으로도 빈틈없이 꽉 들어차던 방이었다.

골목길로 난 낮은 창문으로는 가끔 골목을 지나는 어른들의 머리통이 불쑥불쑥 튀어 오르기도 해서,

생각 없이 창밖을 내다보다가는 그들과 시선이 마주치는 당혹감을 겪기도 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한 반이 거의 60여 명에 한 학년이 9~10개의 학급으로 구성된 대규모 학교였다.

그래서 그때는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등교를 했다.

늘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했던 누이들은

내가 덮고 누운 빨간 담요 발치께에

스테인리스 밥그릇을 넣어주며,

“점심 잘 챙겨 먹어”

라는 말을 인사말로 남기고 바쁘게 출근을 했다.

학교를 마치고 오면 담요 아래 묻어둔,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밥그릇을 꺼내어 혼자 쓸쓸히 점심을 먹었다.

오후반일 때는 그 밥을 먹고 등교를 했다.

그렇게, 오전반이든 오후반이든 나의 점심은 늘 장난감같기만 하던 조그만 두레상 앞에서

쓸쓸하게 시작되고 쓸쓸하게 끝났다.

‘마산’이라는 낯선 도시의 골목길에서 아홉 살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저물곤 했다.


누이들의 퇴근은 골목이 어두워지고 나서도 한참 지나야 했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나는 찬밥처럼 담겨 천천히 숙제”(기형도, 「엄마 걱정」)를 했고,

그렇게 까무룩 엎어진 채 잠이 들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도로 건너에 사는 친구네 동네에 놀러갔던 적이 있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도시의 풍경이 그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때부터 그곳은 새로운 놀이터가 되었다.

골목들은 반듯반듯했고 입구마다 환한 가로등들이 우뚝해서

우리 동네 골목들처럼 깊지도, 우묵하지도 않았다.

내가 살던 동네는 나직한 슬레이트 지붕들과 골목들을 함께 나누는 판잣집들이 즐비했으나,

그 동네엔 2층 짜리 양옥들이 즐비했다.

간혹 빼꼼히 열린 대문 틈으로는 화사한 햇살을 되튕기는 멋스러운 외제차가 보이기도 했다(나중에 어른이 된 뒤에야 그때 그 차가 폭스바겐의 비틀이었다는 것을 떠올린 적이 있다).


그 동네에서 가장 즐거운 놀이는 집집마다 매달린 전자벨을 누르고 다니는 일이었다.

조그만 버튼을 꾹, 누르면 익숙한 멜로디 끝에 ‘딸깍’ 소리가 들리며 “누구세요?”라는 음성이

스피커 너머에서 쏟아졌다.

어둑해진 골목길 끝에 누이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만을 기다리다 잠들던 그 외로움의 밤들이,

도로 하나 건너에선 즐거운 놀이의 시간으로 뒤바뀌던 순간이었다.

얼굴도 모른 채 “누구세요?”라는 그 짧은 음성 끝에 딸려오던 반가움과 그리움은,

가족과 떨어져 낯선 도시에서 밤을 홀로 견뎌야 했던 아홉 살 짜리 사내애가 품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었을 것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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