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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l 10. 2024

벚꽃이 피면 비가 내린다

완주 화암사 2019. 0410



벚꽃이 피면 비가 내린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는 거리의 네온 불빛을 길게 빨아들이면서 그 날숨으로 반질반질 어둠이 출렁이고 있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어둑어둑한 감상이 땅에서 배어난다.

비가 내린다.

봄비 내리는 오전에 부지런히 절에 다녀왔다.

부처님께 절하러 갔던 길이 아니라 밤부터 비가 내린다기에 그만 하던 일 내려놓고서 다녀온 길이다.

꽃이 핀다고 해서 어디든 달려가 꽃구경하고 올 만한 배짱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나는 봄을 닮지도 않았으며 그 따스한 기운 한 줌 담아서 시를 쓸 줄 아는 부류도 아니다.

꽃이 피는 때를 맞춰 이형기의 '낙화'를 찾아 읽어 봄에, 역시 봄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어디서나 헤어짐을 꿈꾸는 내 우울증은 매운 꽃, 목련이 지는 자리를 곱게 밟는다. 무덤 하나가 봉긋하게 피고,

차라리 목련은 치명자 致命者다. 목련이 피고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독전 督戰 하여 분연히 봄에 맞서게 하고, 그럴 것도 없을 것을 어지럽게 하고 나도 '가야 할 때'에 맞춰 성큼성큼 산에 다녀왔다.

향을 피우고 그리고 난분분 지고 있는 꽃들을 향해 배향 配享하듯 읊었다.

화살이 되어라.

꽃이 피는 때를 기다려 비가 내려라.

저 연한 것은 잊고서 수만 수천 꽃잎으로 온 산을 두르고서 봄에 더운 기를 빼앗아 가라.

옷거리 좋고 매무시를 잘하기로 손꼽히는 '벚' 앞에서 나는 벗었다.

비가 살처럼 쏟아진다.

시커멓게 하늘에는 비꽃이 맺히고 땅에는 벚꽃이 하얗다. 하나씩 맞혀라. 하나씩 죽자.

기다린 보람은 다 잊고서, 잊어야 꽃도 피울 수 있다고 삼백예순 날 매일 지기로 한다. 과연 꽃이 피었던가 싶게 피었다가 지는 이의 마음은 어디에 하소연이라도 할 것인가.

야속한 것이 이 밤을 놓치지 않고 찾아와 유리창을 차갑게 흔들어 댄다.

그래, 다 떨어뜨리고 떨어진 것도 잘 걷어 주시게.


다.

거제가 바라보이는 작은 섬 지심도에는 붉은 동백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늘은 끝 간 데 없이 파랗기만 하던 데도 꽃은 떨어질 데 떨어져서 파도 소리를 종일 듣고 있었다.

죽어가는 꽃이 살아오는 봄을 맞이하는 곳에서 조문 弔問을 핑계 삼아 길을 내다보지 않았다.

바람꽃 같은 연한 것들이 한 손 두 손 흔들리면서 바람 끝이 서늘한 날에 몸을 일으키는 것도 소문으로만 듣고 있었다.

고백하자면, 비가 오는 것이야 어쩔 도리 없으니 방문을 닫고 누웠어도 마음은 지천을 떠돌며 꽃을 반기고 있었다.

어허, 노루귀가 쫑긋 대를 세웠다면 얼레지도 그 날렵한 허리를 자랑하느라 참지 못할 텐데.

몇 백 년 전에 지은 우화루 雨花樓 옆에 사는 매화는 올봄에도 꽃을 실컷 피울 것이다.

매화를 먼저 심었을까, 누각을 먼저 지었을까.

비처럼 떨어지던 매화가 골짜기로 날아가는 날에 우화루에 앉아서 봄을 다 보낸 스님은 무슨 꿈을 꾸었을까.

모두가 지난밤 끊어지기를 마다한 내 봄날 허랑한 꿈이다.

비와 바람이 요란한 것을 꿈에서도 듣고 있었다. 꿈에서라도 꽃이 지는 것을 두 손으로 막다가 몸으로 덮다가 추락했다.

1801년 신유년 박해 때처럼 꽃은 떨어졌다.

무엇이 너를 살린 줄 아느냐고 물었을 때 그저 꽃이라고 대답했어야 했다.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꽃이었습니다.' 그럴 것이다.

그 하루 꽃이 피었었다.

나도 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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