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를 만드는 것은 솜씨, 그 솜씨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가 본 솜씨는 차이에 있었습니다. 가만 보면 솜씨는 파도 같습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인 것처럼 솜씨는 잔잔한 일상에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환희, 상쾌한 돌발입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놀라운 코미디, 날렵한 허무로 만들어진 물의 자리입니다. 파도가 지나가면 늘 그만큼 성숙해지는 내가 있습니다. 저것은 누구의 솜씨, 아늑하고 아득한 솜씨입니다. 솜씨는 차이가 추는 춤입니다.
도마 위를 달리는 칼날을 훔쳐볼 때가 있습니다. 아무 때나 그러는 것이 아니라 맑은 손, - 눈가를 훔치며 방금 혼자 울고 나온 것 같이 물기가 밴 손이 있습니다. - 물 묻은 오른손이 붉히면서 별일 아니라는 듯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칼질을 해나가면 저절로 내 온 주의가 그쪽을 향합니다. 바다로 나아가는 것이 결국 저 마음인 것을 알 것 같을 때 나는 파도 소리를 듣습니다.
실력이라고 하면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가, 솜씨 그러면 나귀 등에 짐을 싣고 걸었던 차마고도가 생각납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는 물음에 그게 그거 아니라고 말해주면 어차피 잘 먹고 잘 살려고 사는 거 아니냐고 다시 묻습니다. 아니, 잘 죽으려고 그런 거라니까 시시하게 웃습니다. 너는 고속도로를 달려라, 나는 저 위로 간다. 내 대답은 주방에서 요리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다리고 어떤 사람은 휴대폰을 보고 어떤 사람은 요리가 되어가는 시간과 공간을 살고 있습니다. 청국장을 먹으러 올 때는 여기 살러 오는 기분입니다.
사람 사는 일은 오묘하고 재미있습니다. 그 집 청국장 맛도 좋았지만 철마다 꽃이 피는 마당도 좋았습니다. 밥 먹으러 들어가기 전에 5분, 밥 먹고 나와서 10분을 더 거기 서서 살았습니다. 어떤 시간은 살면서 흐릅니다. 밥 먹으러 들렀다가 한동안 거기 살다가 가는 사람 같아서 웃었습니다. 식당에 가면 사장님 그러고 여기에서는 아주머니 그러는 것이 좋습니다. 그게 그거 아니라고 해도 여전히 같은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글쎄요, 아닌 것은 아니지요. 그 차이가 솜씨 아닌가 싶습니다. 아주머니여도 사장 같으면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파도는 바다를 다 알아봅니다. 덩치가 아무리 커도 파도의 품에 안기는 바다가 있습니다. 바다는 파도를 낳고 파도는 바다를 떠나지 않습니다. 자리를 지키는 것들은 그래서 위로가 됩니다.
그 좋은 것을 같이 먹고 싶은 '환자'가 있었습니다. 마당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여기 좋아서요, 중요한 말을 꺼낼 줄 모르는 내 요령은 이렇듯 단박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여기 좋아서 어떤 분이 오셨으면 하는데 그분이 아프다는 말도 꺼냈습니다.
"아, 그분 저 알아요!"
"우리 교회 다니시는 분이에요."
맛은 순도가 높은 감각이라서 모두가 다르게 느끼면서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제목입니다. 신이 먼저였을까, 음악이 먼저였을까 묻는 감각을 나는 아낍니다. 맛이 그럴 때가 있습니다. 화해시키고 돌아보게 하고 신사같이 멋있을 때가 있습니다. 맛 하나를 사람은 창조하지 못합니다. 누가 사과를 만들어낼까요?
맛은 몸을 위하고 맛을 분별하는 것이 살아가는 방식이며 사람은 맛을 고르고 삶을 선택합니다. 불닭볶음면은 날개 돋친 듯 팔리지만 매운맛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함라산을 걷고 점심시간보다 조금 빠르게 도착하는 여기는 고마운 곳입니다. 솜씨가 있어서, 청국장을 먹을 수 있어서 그리고 열 마디쯤 표정에 담고 먼저 웃어주는 분이 계셔서 좋습니다. 한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하고 처음 앉아서 밥을 먹던 날, '제가 수술을 해서 다 먹지 못했습니다. 정말 맛있는데 죄송합니다.' 그 말이 그날 내내 떠나지 않더라는 인사가 두고두고 여기 들어오는 문 앞에 걸려 풍경처럼 울릴 것 같습니다.
"다음에 한 번 또 오세요."
"그때는 더 맛있는 걸로 대접할게요."
돈을 받지 않으면···· 내가 사고 싶었는데. 그날은 그랬습니다. 인디언 서머 같은 날이었습니다. 며칠 볕이 따뜻했던 겨울, 청국장은 폴폴 김이 나고 있었고 조금 아픈 내가 많이 아픈 그분에게 식사를 권했습니다. 그 식사는 벌써 몇 년 전에 마쳤지만 그 자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솜씨가 그런 것입니다.
2018. 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