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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Mar 26. 2021

망각의 사랑

나는 누군가가 나의 인생을 격렬하게 흔드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경험으로부터 체득한 방어기제에 가깝다. 가장 대표적으로 사랑이 그렇다. 마음이라는 놈은 아주 연약하고 때로는 간사해서 타오르는 듯한 감정에 영혼을 바치고, 돌연 사라진다. 삶에 누군가의 시간과 흔적이 자리하게 되는 순간,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마냥 우리는 여러모로 극심한 파동을 겪곤 한다. 나는   위태로움이 싫어 강과 같은 평화 속에서 적당함 감정을 즐기며 살아가는 쪽을 택한다.


안타깝게도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말하던 우리는 마음과 마음이 한 곳을 바라보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갔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에 지쳐 서로를 떠났다. 강렬했던 서로에게 끌렸던 시작만큼이나 그 끝도 사정없이 서로를 밀쳐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숱한 관계 속에서 깨달은 사실 하나는 미움도 증오도 서운함도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는 거였다. 그래서 가끔은 신이 인간에게 망각을 심어놓은 이유를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너무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보면 우린 분명  겁에 질려 고립되거나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모르니.


휘몰아치던 감정들 속에 허우적대가도 지나고 보면 어제의 기억이 일 년 전의 기억이 되고, 일 년 전의 기억이 언제의 기억인지 알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무수한 감정들의 걸러지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초연 해지는 상태에 이르고 하는데, 어쩌면 신이 인간에게 망각을 심어놓은 이유는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이듯 힘들고 버거운 걸 알면서도 우리는 또다시 사랑을 한다. 마음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 망각의 힘을 빌려 무모한 짓을 한다.


여전히 나는 사랑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망각 또한 여전히 함께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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