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뽀송한 기억들만 남도록
내게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지우고 싶은 기억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면서 실패를 하거나 좌절을 맛보기도 하고 혹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살아가는 한, 당연한 일이다.
지우고 싶은 기억을 마음대로 꺼내어 지우개로 박박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지우개로 지우면 소위 말하는 지우개똥(?)이 나올 것이 아닌가! 또 연필로 꾹꾹 눌러 적힌 기억은 지우개로 지워도 흔적이 남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나는 내 기억들을 모두 꺼내 놓고, 비누 거품을 잔뜩 내어 지우고 싶은 기억 부분을 박박 문질러 지우고 싶다. 그렇게 잊고 싶은 기억이 비누 거품에 깨끗이 지워지고 나면, 깨끗한 물에 비누 거품을 흘려보내고 뽀송해진 기억을 다시 머릿속에 넣어 두고 싶다.
지워진 기억은 지워졌다는 사실조차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지우고 싶은 기억을 지우고 나면, 나는 나를 향한 비난과 자기혐오까지도 지울 수 있지 않을까.
술에 너무 많이 마신 내게도 잘못이 있었던 것 아닐까?
아무리 술에 취해 있었어도 어떻게 잠에 들어 꼼짝도 못 할 수가 있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거부했었어야 했는데.
정말 내가 피해자인 게 맞아?
그 사람은 백 퍼센트 가해자였나?
스스로에 대한 그 모든 비난과 의심, 자기혐오까지도 비누 거품으로 닦아 걷어내고 나면, 나는 조금이라도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