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악 공연을 좋아한다. 출산 전에는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거의 매년 친구들과 한 두 개 공연은 봤으며 최근 아이를 데리고는 신년 마당극이나 춤 공연 등을 보러 다닌다. 귀가 트이지 않아서 국악 음악이 내 플레이리스트를 채우고 있지는 않았지만 가끔 공연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출산 후 아이가 공연에 데리고 다닐 나이가 될 때까지 공연 좋아하는 나도 공연 관람은 엄두도 못 내고 살았다. 그러니 국악에 대한 관심도 희미해진 지 오래였다.
그러다가 2016년 어느 날, 우연히 '두번째 달'의 [판소리 춘향가] 앨범을 알게 되었다. '두번째 달'은 TV에서 아이리시 음악을 하는 밴드로 소개된 영상을 몇 번 본 터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리시 음악을 하는 밴드가 판소리 음반을 냈다니 귀가 쫑긋 눈이 반짝 했다. 뭔가 재밌는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와~~~ 너무 좋았다. 지금 말로 완전 취향저격 당했다. 춘향가의 익숙한 노래들을 아이리시 음악의 이국적이고 청량하고 편안한 연주 위에 얹어서 기분 좋은 나른함마저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서너 살 되는 아이와 집에 있을 때 이 앨범을 배경음악처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는 지금도 가끔씩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를 흥얼거린다.
이 앨범에는 두 명의 소리꾼이 목소리를 보탰다. 그런데 그때는 전체 음악을 듣는 게 너무 좋아서 각각의 소리꾼들에게 관심을 갖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작년 '팬텀싱어3' 첫 번째 라운드를 보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피아노 치는 소리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고영열'이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로 '사랑가'를 부른다. 내가 아끼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실제로 보게 된 것이다. 나는 가족들에게 이 사람이 그 사람이다!!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내 보물이 이제 모두의 보물이 되겠네!!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나는 고영열의 목소리를 따라다니게 되었다.
고영열의 목소리에는 바람소리가 반이다. 그래서 들을 때마다 사람의 목소리라기보다는 퉁수 소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고영열이 노래를 시작할 때는 먼저 바람소리가 앞서 나오고 고영열의 목소리가 뒤따라 나온다. 첫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가슴이 쿵 무너진다. 너~~~무 좋다. 어떻게 들을 때마다 처음처럼 이렇게 놀라울 수가 있을까?
팬텀싱어3에서 고영열의 '라비던스'는 최종 2위를 차지했다. 첫 예선부터 여러 팀을 구성해 보고 결국 '라비던스'가 구성되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고영열은 너무나 영리하게 성악가들 사이에서 소리꾼 고영열의 자리를 잘 찾아냈고 매번 그 팀의 정체성을 만드는 키메이커가 되었다. 고영열은 대단한 가창자이자 기획자이자 창작자다. 고영열은 국악과 음악이 갈 방향성을 제시하고 길을 만들어 가는 개척자이자 이 시대의 아티스트다.
김준수를 집중해서 보게 된 계기는 최근 끝난 '풍류대장'이었다. 나는 김준수를 이미 알고 있었다. 두번째 달의 [판소리 춘향가]의 두 소리꾼 중 한 명이며 요즘 부쩍 늘어난 TV 국악 프로그램에서 몇 번 본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준수가 오랫동안 국립창극단의 주역이었으며 이미 유명한 소리꾼인 줄은 모르고 있었다. 두 번째 라운드에서 김준수는 밴드 '두번째 달'과 함께 '어사출두' 풀 패키지 버전 무대를 보여줬다. 고영열과 한 조에서 경쟁하는 상황에서 혼자만 두번째 달을 불러 공연한다는 게 약간 반칙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김준수가 이 무대를 꼭 해야만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준수에게나 보는 사람에게나 이런 무대가 필요했다. 너무나 멋진 무대였다. 이때부터 김준수의 시간이 시작됐다. 춤과 노래 연기가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무대가 계속됐다. 매번 최고의 무대를 경신했다. '대취타'와 '적벽가', '뱅뱅뱅'과 '수궁가' 매시업 무대가 끝났을 때 나는 벌떡 일어나 오래도록 박수를 쳤다.
2016년에 아이와 즐겨 듣던 음악 속 보석 같은 소리꾼 두 명이 현실 속 자기 무대를 펼쳐 가고 있다. 그걸 지켜보는 마음이 너무나 뿌듯하고 그들이 앞으로 보여 줄 것들이 너무나 기대된다. 마음속이 벌써부터 간질간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