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런 강요는 안 하니까 내가 하고 싶다.
미용실에 다녀왔다. 연예인 사진을 보여주고 미용사가 잘라줬는데 왠지 모르게 내가 생각한 느낌이랑 달라서 혼란했다. 이게 맞는데, 이게 아닌 느낌. 안 그래도 얼굴에 자신이 없는데 자신감이 더 떨어져서 요새는 사진을 잘 안 찍는다. 민주는 내 머리를 보면서 힙합할 것 같이 생겼다고 했다. 얼른 머리가 길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보이고 싶은 모습이 있다. 그 모습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보이고 싶은 대로 말하고, 보이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 그렇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 속하기 때문에 그런 심리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그래서 아주 순진한 편이다. 사람들의 자랑을 다 믿었다. 자신이 누구랑 친하고, 누구랑 술을 마셨고, 얼마나 능력 있는지에 대한 얘기들 말이다.
보이고 싶은 모습대로 말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인데 나는 그걸 못 참는 사람이다. 허울이 벗겨지면 몸 둘 바를 모르겠는 건 항상 내 쪽이었으니까. 왠지 사기당한 것 같아서 슬프고 그렇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내가 사실을 미친 듯이 좋아해서 그렇다. 내가 옹졸하니까, 내가 나를 포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니까, 나는 너무 날것을 보여주니까, 그러는 내가 남들에 비해 참 부족해 보이니까, 사람에 대해 잘 모르게 되니까, 그걸 막을 수가 없으니까, 나는 나의 오해들을 진짜라고 믿고 싶어 하니까 그렇다. 그러라고 한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사람에겐 각자의 기준이 있다는 걸 잘 몰랐다. 누군가는 자료조사를 할 때 구글로 해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도서관에서 책을 열 권 정독해도 부족하다고 한다. 나는 기준이 높은 편이었다. 내가 도달하려고 하는 기준이 너무 높았다. 나로 살면 절대 도달하지 못할 기준으로 날 판단하려고 하니 늘 내가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나를 솔직하게 내보이면 숨기고 싶은 모습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나 솔직하게 행동했는데 내 속내를 누가 먼저 알아차릴 땐 슬펐다.
마음을 다 내놓는 건 답이 될 수 없었다. 인정하기 싫었는데 정말 그랬다. 여러 인간을 마주하면서 느낀 굴욕감은 미래에 후회를 덜 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친 자존심은 부끄러움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할 필요도 없는데 나는 왜 그랬을까, 내가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내 모습의 전부가 고작 그것밖에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많은 날을 많이 후회하며 지냈다. 갓 잡은 갈치처럼 침대 위에서 퍼덕이는 날이 잦았다.
내가 부끄러운만큼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우습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사람은 다 자기 상처가 중요하니까. 서울시의 사람들은 지는 해를 같은 시각에 보지만, 넌 너의 밤을 보내고 난 나의 밤을 보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또 체면이 뭐가 중요한가 싶다. 어차피 밤을 맞는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 외에도 서울시에 971만 5,400명이 있고 그들은 다 각자의 밤을 보내는데. 몇 명한테 좀 찌질이 같으면 어때. 이런 식으로 나는 또 실수를 하고 갓 잡은 갈치가 돼서 또 다른 밤을 맞이하게 되겠지. 역시 나 자신을 막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해가 갈수록 사람이 어렵다. 말 몇 마디로 사람의 전부를 판단할 수 없게 되면서 쉽게 슬퍼하고 쉽게 기뻐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어렵게 기뻐하고 어렵게 슬퍼한다. 그래서 요즘은 장난으로 '행복하세요~' 말하고 다닌다.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단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람을 볼 때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니까, 잘 모르겠으니까, 그저 행복하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을 0의 상태로 인식하고 있으니까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아무도 그런 강요는 안 하니까 내가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