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쉼표, 23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베짱이 Feb 08. 2023

휴/지/나/무/전설

시 돋는 밤 그리고 새벽 1

너의 몸을 잡아 뜯어 내 몸과 내 주변의 더러움을 닦아내는 걸 용서해 다오

너는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몸

어차피 희생을 목적으로 너의 인생이 설계되었다면,

차라리 쿨하게 너의 몸을 내다오


너의 몸이 반쪽이 되고 반의 반쪽이 되어도 슬퍼하지 말아 다오

너의 쓰임새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기에

너의 소멸을 오히려 기뻐하는 축복을 누려도 되련만,

어찌하여 너는 오늘도 그렇게 슬픈 미소를 보내는가

차라리 투정을 부려다오


너의 속삭임을 내가 너무 가벼이 들었던 탓

너는 나무로 태어나

너의 고향 숲에서 살기를 바랐을 뿐,

인간의 이기에 스러지고

그들의 희생양으로 사라져

다시는 고향의 흙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운명


너의 뿌리는

고향의 흙을 먹고 자라고

너의 곧은 줄기는

고향의 태양과 비바람 속에 뻗어 나

너와 동무들은 숲을 이루고

그 고향의 숲에서 불어오는 향기에 묻힌

100년의 전설


나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너의 눈물을

너의 애원을 무시한 채

나만을 위한 이기심에 사로잡혀

너의 몸을 뜯으면서도

한 번도... 단 한 번도...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았는지


비로소 오늘 너를 마주 대하고 앉아

너에게서 전해져 오는

슬픈 전설을

.....

알면서도 무시하고 살아온 나

한 번쯤은 ,

너에게 사과하고 싶다

그리고

고맙다는 마음을 꼭 건네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