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빛이 되어 나린 사람을 기리며

by 서용훈

‘68기 박진우’

단답식으로 짧은 토막만 답변이 왔다.
입술을 지끈 깨문다. 미간은 시큰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세차게 휘젓고서, 상황파악이 잘 안 되어 정신없고 바쁘다는 친구에게 다시 채근하여 재차 물으니, 글자 사이 공간도 없이 허겁지겁 답이 온다.

‘맞아. 항공작전과에있던후배.’

눈앞이 아찔하였다.
왜 그여야 하는가? 어째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인가? 허고 많은 비행임무 중에 무슨 악재가 겹쳐서, 그 공교로움들이 이 한순간에 겹쳐져 보이는 것인가? 이 친구야, 너는 왜 거기에 앉아있었단 말이냐!


누구나 한 번씩은 공평하게 주어진 몫의 과업이라지마는, 그것이 하필 지금이라고는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지 않은가? 봄이 다해 인연이 닳아빠질 무렵이면, 어련히 알아서 떨어질 꽃잎인 것을, 구태여 앙상한 가지를 미리부터 이리 세차게 흔들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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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식사 한 번 하시죠?”
나는 선배라는 호칭을 받는 사람 치고는 사회성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그런 내게 진우가 살갑게 다가와 물었다. 사관학교 9년 후배인 이 친구는 붙임성도, 호방한 성품도 나보다 한 수 위였다.


그러나, 암만 성격 좋고 이물 없는 사이일지라도 식사자리가 갖춰지려면, 물리적인 ‘시간’이 있어야 할 것 아니던가. 이래저래 바쁜 일들을 쳐내기에 여념이 없던 날들이었다. 결국, 옆 사무실에서 근무했던 그 친구가 제주로 전출하기 며 칠 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그 만남은 성사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밥 먹을 시간도 없더냐?’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깍듯한 후배의 간절해 보이기까지 한 시도들을 차일피일 미루는 심경은 극도의 내향적인 성격과 밤샘 근무라는 물리적 한계를 대입한다면 충분히 이해가능한 수준이지 않을까 변명해 본다.


여하튼, 미루고 미뤄지던 만남이 성사되던 그날. 사실, 대부분의 말과 표정들은 생각이 명료하게 나지는 않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고, 별달리 화젯거리가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살뜰한 후배와 함께한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자리가 되고 나니, 뒤늦게 의미가 갖다 붙게 되고, 어렴풋한 기억의 파편들이 아련하게 재생되었다.
그리고, 함께했던 시간에 덕지덕지 붙어버린 의미들 그 이상으로 거대해진 후회와 아픔이 밀려왔다.


나는 어째서 이렇게도 잔인한 사람인가. 나는 어째서 이다지도 무심하고 무감각한 사람이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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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멈춰버린 그의 시간이 연일 뉴스와 영상으로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 세 살 배기 그의 아들이 비친다. 고사리 손에 든 장난감 자동차 바퀴가 내 심장 위를 덜커덕 거리며 구른다. 네 아비가 있는 곳이 어디라 일러주면 네가 알겠느냐.


가슴이 또 한 번 미어지며 먹먹하게 짓눌리고 만다. 명치께 무언가 콱 들어차 막혀서 차곡차곡 숨을 쌓아 밀어내 본다.
밤샘 근무를 하는 동안, 정리되지 않은 포항의 그 공간에서 무언가 또 정리된 소식이 들려오고, 나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몰아치는 현실에 더욱 서글퍼져서 또 한 번 기가 막혔다.


처음에는 그냥 눈물이 눈에서 넘쳤다. 울다 또 울다 지쳐서 뻐근해진 목을 들어 하늘을 보니, 무심하게도 푸른 하늘이 미워 보였다. 다시 울컥한 덩어리가 속에서 치밀었다.


애초에 그의 부재가 슬펐으나, 이내 잘해주지 못하여 미안했고, 끝내 선배답지 못한 옹졸함과 변변찮음에 내가 미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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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야, 빛이 되어 내릴 적에 얼마나 얼마나 무섭고 고단하였니. 일천 칠백여 시간이 넘는 너의 인고의 시간이, 이젠 찰나에 멈추었구나. 부디, 함께 있을 때 조금 더 다가서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이 너의 한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제야 영면에 든 너를 안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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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해군 초계기 사고로 순직한 전우를 기리며,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쓴 글입니다. 더 늦어 빛을 바라기 전에 추모의 마음을 담아 올립니다.

몸을 살라 행했던 그간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며, 먼저 명을 달리 한 전우들의 명복을 빕니다. 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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