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군의 순항훈련 이야기
사방 1~2백 해리 안에서는 여기가 제일가는 맛집이다. 이곳이 제일 안온한 안식처다. 전통적인 분류에 따르면, 나를 비롯한 이 함선에 오른 몇 명이 이 근방에서 가장 복잡하고 고등한 생명체이다.
작열하는 뙤약볕 아래 융숭한 환송을 받으며 길을 나섰다. 지난 십 여 일은 뱃꽁지의 추진기가 만들어 낸 하얀 포말들과 함께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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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는 수 천, 수 백억 이상의 생명이 산다고 하는데, 엊그제 마주한 브라운 부비 몇 마리를 마지막으로, 숨 쉬는 무언가는 아무것도 마주하지 못했다. 기왕 언급된 차에 얘기를 덧붙이자면, ‘부비트랩’의 그 부비가 맞다.
언듯 보면 여느 해변에나 흔히 보이는 갈매기인가 싶기도 하지만 다른 종이다. 몸통이 갈색과 흰색으로 조화로운 바닷새인데, 대항해시대 이전의 먼 옛날부터 뱃사람들에게 아주 친숙했던 바다생물이다.
먼바다까지 사냥을 나왔다가 마침 마주친 배에 접근하여, 누가 더 잽싼지 속력을 겨루어 보다가 뱃머리에 맴도는 것이 이 날쌘 친구들의 오랜 전통이다.
뭍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동물들과는 다르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멀뚱히 눈 마주치고 있다가 덥석덥석 잡히기도 잘하였다고 한다.
그 쉬이 잡히는 모양새가 어딘지 어리숙하기도 하여, 모르고 길 가다가 덥석 물려 터져 버리는 요망한 군사적 장애물에다가도 이름을 붙이기에 이른 것이다.
여하튼, 이 순진한 생물마저 태평양 한가운데로 길을 잡은 우리를 멀리한 지 벌써 며 칠이 지났다는 것은 육지와의 기약없는 이별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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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는 것이 업이라고 해서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바다를 앞마당 삼고 배를 집으로 삼아 살아온 세월이 농익을수록, 대자연이 주는 숨 막히는 중후함과 베풂에 조용히 감읍하고 조아리는 자세를 갖게 마련이다. ‘바다의 왕자’, ‘바다를 지배하는 자’라느니 하는 수식어들은 정작 바다를 잘 모르는 순진하고 무구한 뭍사람들의 망상이요, 환상이요,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바다의 눈치를 보아온 세월이 유구해지면, ‘아’하면 ‘예’하는 순발력이 좋아지며, 염치 불구하고 기대어 살아가는데 다소 익숙해질 따름이다. 오만함을 버리지 못하면 굶어 죽든, 물에 빠져 죽든 하여 짠물의 위대한 쓴 맛을 달게 받을 뿐이라는 것을, 뱃사람이라면 다 안다.
바다를 끼고 사는 사람들의 삶의 형태는 매우 다채롭다. 대다수는 먹고사는 일에 천착하여 운송하고 수렵하며 즐길거리를 만들어 낸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재화나 여건들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요소가 되어,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 또 어떤 이들은 그런 대다수들의 안전과 효율을 증대하는데 도움을 주면서 공헌을 한다.
내가 하는 일은 후자에 속한다. 나는 해군이다.
이미 얘기한 것처럼, 바다는 녹록한 공간이 아니다. 더욱이 80억 인류, 200여 개의 나라, 그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일 리도 없다. 바닷길은 대자연의 거대한 힘이 미치는 공간이지만, 다양한 주체가 각축을 벌이는 공공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바닷길에는 애석하게도 교통경찰도, 소방대원도, 보험사도 존재하지 않아서, 위협이 늘 부비트랩처럼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해군이 지켜내는 바다에는 우리나라 삼면의 바다는 물론이거니와, 세계 도처의 바닷길이 포함된다. 그 바닷길을 생의 터전으로 삼는 상선과 원양어선 선원들을 비롯한 해양업 종사자들의 근심과 두려움을 덜어내고 힘찬 항해를 이어나가도록 돕는 것도 중요한 역할인 것이다.
이제 우리가 닻을 올리고 돛을 활짝 펼친 것은, 바다에 익숙해지고, 바다 앞에 엄숙하며 겸손해지기 위함이었다. 바닷길을 공유하는 세계 도처의 국가들에 대한민국의 강건함을 각인해 주기 위함이었다. 해군 장교로의 임관을 앞둔 사관생도들에게 대자연으로서의 바다와, 냉험한 국제정치 속에서의 바다를 체득할 기회를 안겨주기 위함이었다.
매일 똑같지만 단 하루도 같지 않은 바다의 모습이 전해주는 묘한 감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거친 현실을 헤쳐나갈 지도자의 풍모를 배울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홀로 하는 묵묵한 항해를 통해서,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깨달을 것이고, 이제는 90세 이상의 노인이 된 세계 각국 한국전쟁 참전영웅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세계평화의 원대한 포부를 가슴에 담을 것이다. 태평양은 생각보다 태평하지 않고, 대서양은 생각보다 거대하지 않으며, 지중해는 호수같이 땅에 둘러싸였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홍해는 붉지 않다는 것을 보면서 세상의 헛된 말들이 주는 환상에서 벗어나 진실을 추구하는 지혜를 갖추게 될 것이다.
내 아내는 늘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해군 얘기만 나오면 당신 눈빛이 달라진다.” 고… …. 그러니, 이쯤에서 다시 진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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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른 아침. 육지가 가까워 온다.
함교 견시대에서 뭉근한 바닷바람과 햇살을 마주하며 마시는 씁쓸한 아침 커피 한 잔은 일종의 전통이다. 문득, 선글라스 너머로 브라운 부비들의 멋들어진 해면질주와 다이빙이 경쾌하게 펼쳐진다. 사냥은 열 번 중 네댓 번 정도는 성공하는 듯하다. 멈추지 않는 물질을 하는 것이, 마치 온몸으로 뭔가를 얘기해 주고자 하는 것 같다.
며칠은 유리알 같은 바다도 펼쳐졌고, 또 며칠은 산더미 같은 파도에 정신없이 쫓기기도 하였다. 하늘의 변덕은 바다를 뒤흔들었는데, 매우 의아스럽게도, 정작 매스꺼운 속을 달래야 하는 것은 내 몫이란걸 몸소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새콤하고 매콤한 음식들을 먹는 다양한 민간요법들이 왜 생겨나게 되었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 험난한 환경을 해쳐나가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겪으면서, 바다가 모두를 하나로 엮어준다는 것을 배웠다.
안전하게 열 나흘의 항해를 마친 것에 감격하며, 승조원들은 서로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긴 항해가 준 시련을 잘 견뎌낸 자신을 대견해한다. 극복과 배움의 연속인 바다 위의 일상은 이렇게 첫걸음을 떼었다.
부두에는 고국 해군의 방문을 반가워하는 교민 환영행렬이 기다리고 있다. 그 옆에는 청춘의 푸릇함을 온몸에서 풍기는 사관생도들을 보며 한국의 옛 전우를 떠올리는 연로한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이 반기고 있다.
굵은 밧줄이 부두에 배를 단단히 고정시키면, 육중한 사다리가 새로운 세계로 연결 짓는다. 첫 발을 내딛으며 느껴지는 단단한 육지의 감각이 새롭다.
함께 겪어낸 바다는, 또 한 번 우리를 새로운 땅으로 밀어낸다.
이제, 또 다른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