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거 이거 하라고 딱 정해서 알려주면 좋겠어요”
최근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파트의 리더를 맡고 있는 나는 누군가에게 도전 임무를 부여했다. 오랫동안 고민해 왔던 부분이지만 제대로 검증해 본 적이 없던 일이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방향을 잡는 것부터 일의 시작이다. 그래서였을까? 업무 진행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임무를 부여받은 동료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석사든 박사든 학위를 받고 졸업을 하려면 연구 테마가 필요하다. 하나의 주제를 잡아 가설을 만들고 그것을 다양한 실험으로 증명하는 과정, 증명된 결과를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논문으로 쓰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반론에 대응하는 것까지 성공해야 학위를 받는다. 모든 미션이 어렵지만 제일 처음의 연구 테마, 주제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분야와 연구 내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결정되면 어떤 실험을 통해 결과를 얻어야 하는지 반 이상은 결정되는 셈이다.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남들이 이미 가지 않았던 길을 찾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 너무 많은 연구가 되어 있으면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어려운 졸업 테마에 대해 지도 교수나 선배가 주제를 던져주면 다행이다.
가야 할 방향을 잡는 것,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설정하는 과정은 학위 받을 때로 끝나지 않는다.
입사했을 때 일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었다. 한 2-3년 그 일을 성실히 수행하여 마무리를 짓고 나니 위기 아닌 위기가 찾아왔다. 내년부턴 무슨 과제를 해야 하는지 제안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때가 되고 나서야 몇 년 동안 한 번도 던지지 않았던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즉 어떤 과정을 통해 과제 또는 업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인지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회사의 일을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정답이란 것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다. 공부 잘하던 사람들이 소위 ‘일 머리’가 없는 것이 아닌지 고민하게 되는 건 이 지점이 아닐까 싶다. 이미 주어진 과업에 대해 정답 찾기에 좋은 능력을 가졌던 사람들에게, 답이 없는 회사 일은 솔직히 죽을 맛이다. 정해진 기준과 틀 안에서 판단하기도 벅찬 경우가 많은데 뭘 해야 할지 알려주지도 않고 아는 사람도 없다. 불친절한 상사는 같이 고민해 주기보다는 주로 이런 말을 한다.
응 그거(솔루션).. 당신이 찾아와야죠.
정답 없는 미션이 주어지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Right Question, Right Answer.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어려운 것.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이 잘못되면 답이 제대로 얻어질 수 없다. 2년 뒤, 5년 뒤 회사의 미래를 그려보라는 미션이나 세일즈를 잘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구사하면 좋을지 답을 내놓으라는 질문에는 어떤 것도 답이 될 수 있다. 핵심은 정답이 아니라 ‘합리적인 답’이다. 현재를 분석하고, 남들은 어떤지 공부도 하고, 미래의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지, 사업 환경은 어떤 경쟁 구조에 놓일지.. 여러 요소를 고민해서 그럴듯한 답안을 마련한다. 사실 미션을 주는 사람/사업부 역시 무엇이 적당한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회사의 연구개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일 머리는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잘하는 것에 있다. 특히 연구개발은 질문의 힘이 크다. 무작정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창의적인 질문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조금 더 다른 시선을 갖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일상적인 프로세스라서 원래 그렇게 하는 일이라고 누구나 생각할 때, 왜 이렇게 일을 해야 하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것도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에는 정답이 아닌 것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나는 생각하기 싫다’는 의미가 담기기도 한다. 어쨌든 답을 내야 하는 일을 만나게 된다면 답을 얻는 과정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떤 질문이 맞을까 더 고민한다면 훨씬 괜찮은 답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일을 줄 때 상사의 질문이 잘못된 때는 질문의 방향을 바꿔 내 의도로 끌어오면 된다. 때로는 일의 필요성을 재확인해서 업무를 없앨 수도 있고 적임자에게 넘길 수도 있다.
질문을 가져야 나의 일을 만들 수 있다. 남이 던진 질문에 답을 내주는 업무만 해서는 재미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