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그날 현성이와 읽은 책은 '시간이 흐르면'이었다. 윤곽이 뚜렷한 그림과 간결한 글로 '시간이 흐르면' 일어나는 일들을 담아낸 그림책이다. 시간이 흐르면, "아이는 자라고 연필은 짧아져". 시간이 흐르면 "빵은 딱딱해지고 과자는 눅눅해지지". 그리고 이어서 신발 끈을 묶는 어린이 모습이 등장한다. "어려웠던 일이 쉬워지기도 해"라는 문장과 함께.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중에서
책에서는 신발 끈 묶기에 도전하는 아이의 모습이 나온다. 아이 때는 모든 것이 서툴다. 어른의 눈에서 보면 쉽게 할 수 있는 간단한 일 - 신발 끈을 묶는 것 - 이 쉽지 않은 도전이다. 손 근육이 적당하게 발달하고, 머리로는 끈을 묶는 방법과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아이에게는 성장이든, 익숙함이든 시간이 필요하다. 내 아이는 초등 5학년인데 신발 끈을 야무지게 묶지 못해서 늘 한쪽이 풀려 있는 모습을 보곤 한다.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저 위의 말처럼 언젠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쉽게 끈을 단단히 묶을 것임을 알고 있다.
유독 "어려웠던 일이 쉬워지기도 해"라는 문장에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어른은 더 어른이 되다 보면 '쉬웠던 일이 이상하게 어려워지곤 해'라는 생각에 닿았다.
예전엔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던 빠른 템포의 노래가 어렵기만 하다. 박자가 살짝살짝 늦어지다 보면 약간 짜증이 난다. 아니, 이 쉬운 걸 왜 못하냐고. 몸이 노화의 과정을 겪다 보니 디스크 때문에 허리를 제대로 굽히지 못하고, 양말을 신으려면 심호흡을 하고 잠깐의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소싯적(?)에는 양말 신는 것이 어려워지리라고 꿈도 꾸지 못했단 말이다.
새로운 시스템에 그래도 잘 적응한다고 자신 있어 한 편인데 요즘 생기는 새로운 상점의 무인 키오스크를 만날 때면 살짝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다섯 살만 어리면 지금보다는 덜 두려울 것 같다. 대중교통을 거의 이용하지 않다가 몇 해 전 지하철 표를 한 번 사러 간 적이 있다. 내 기억 속 지하철 티켓 구매는 상당히 오래전 일인데, 싹 바뀐 시스템은 너무 낯설어서 잠시 영상이 정지된 것처럼 멈춰서 머문 기억이 있다.
쉽게 할 수 있다가 어려워지는 일이 이와 같은 노화의 결과인 것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원인과 결과가 명쾌하기라도 하지. 혼자일 때, 아니면 좀 더 어릴 때 치기 어린 마음에 대들거나 마음대로 해 버리던 일을, 이제는 쉽게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를 고려하다 보니 하고 싶은 말 전부 다 내뱉지 못하게 된다. 좋은 말로는 좀 더 유연해지고 현명해진 것이지만, 한 편으로 어디에 매인 처지가 되니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돌아서 어렵게 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어쩌면 회사 일은 쉬운 것도 어렵게 처리해서 티를 내는 과정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각설하고, 쉽게 처리할 수 있던 일과 행동이 언젠가부터 어려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이 듦에 대한 생각을 한다. 이제 겨우 50살도 안된 사람이 유세 떤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유난스러운 이유는 마음속에 만들어 둔 셀프 이미지와 현실의 나 사이에 괴리감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쉬웠던 것을 육체적, 지적 노화로 인해 어렵게 완수하는 '진짜 내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려고 하는지, 그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가급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래도 살짝 서글퍼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