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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Apr 15. 2022

별다줄 하지 말고 세세하게 소통하기.

별다줄이란 말이 있습니다. 

별걸 다 줄인다는 말의 줄임말이죠. 별다줄은 한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어권 역시 앞글자만 딴 약자가 있지요. 모르긴 해도 다른 언어 문화권 역시 줄임말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왜 사람들은 줄여서 말할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란 결론에 이릅니다. 스마트폰 사용 시 정보를 타이핑하는 것의 효율성을 생각해 보더라도 긴 문장이나 표현을 몇 개 안 되는 단어나 철자의 조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굳이 전부 풀어서 써 줄 이유는 없습니다. 사실 줄임말, 약자 표현은 스마트폰 이전에도 있던 행위로 효율성을 중시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태가 아닐는지 추측해 봅니다.

회사 용어에도 별다줄 케이스는 많습니다. 문제는 정확한 용어 정의를 모른 채 대략적인 뜻만 어렴풋하게 이해하는 (또는 충분한 이해 없이 곧이 고대로 수용만 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저는 늘 용어를 쓸 때는 정의가 명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같은 주제를 가지고도 동상이몽을 하게 됩니다.


별다줄은 그래서 효과적이지만 한 편으론 경계해야 합니다. 형식(효율성)의 간편함을 잡으려다 진짜 필요한 내용(원래 의도)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별다줄은 아닙니다만, 업무를 전달 또는 명령하는 경우에 효율성을 고려하여 앞뒤 다 자르고 전달하다 보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회사의 업무란 협업이란 이름의 공동체적 책임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분업화되어 있고 전문성을 가진 담당 부서가 나눠진 일을 해결함으로써 전체가 모여 하나의 성과를 만드는 구조입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발생하면 각 부서별로 과업을 할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할 일이 전달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유용하면서 잡다한 정보들이 한 다리를 건널 때마다 공중으로 사라집니다. 알아두면 쓸데는 마땅히 없어도 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죠. 또는 상대방에게 ‘최적의 도움’을 요청하려다가 이것저것 정보를 지우기도 합니다(정보 삭제의 의도보다는 배려를 고민하다가 그렇게 되기도 하죠). 다른 부서와 협의에 협의에 협의를 거쳐 도출된 결론만으로도 때론 벅차거든요. 지난하고 거칠었던 협의 과정을 굳이 설명해 줄 필요성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오류는 전달자 자신은 충분히 상황을 이해 또는 인정한 상태에서, 상대방도 그 정도의 이해력을 가질 것이라 오해하는 것에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효율성을 잡으려고 하는 노력 - 즉 과업의 스토리에 대한 별다줄과 삭제 - 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실무 관점에선 결론적으로 해야만 하는 어떤 구체적 과업 Things to be done이 덜렁 남게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일할 수 있다면 시키는 것만 잘 해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담당자는 input 명령을 받아 output을 뽑아내는 기계가 아닙니다. 아무리 급하고 중차대한 일이라도 집중해서 일을 하려면 적절한 수준의 사전 정보, 과업의 정당성에 대한 이해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굳이 혼을 갈아 넣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렇습니다. 윗사람으로부터 ‘그런 게 있어’ 대충 이런 말로 별다줄 해서 과업을 전달받아 본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매번 어떤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끝을 다 설명하고 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가끔은 모르는 것이 약인 경우도 있거든요. 회사 일이 대단히 합리적으로만 의사 결정되지 않습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완수해 보기로 도전하는 케이스도 있고, 불가능이 예상되지만 데이터를 얻어서 불가능을 보여줘야 하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엔 아무리 잘 설명한다고 해도 논리적 비약을 피할 수는 없어요. 설명하는 당사자도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설명하기에 구차한 사례도 있습니다. 친절하게 모두 설명해 줄까, 아니면 딱 해야 할 일만 정리해서 알려주면 될까, 이것은 딜레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가급적 설명할 수 있다면 적절한 수준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고민과 짐은 내가 짊어질 테니, 너는 수족이 되어 주어진 과업만 완수하라는 방식의 오더는 불편합니다. 때론 중간관리자의 고충을 동료나 후배들과 나눔으로써 서로의 처지를 알아보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습니다(학습되면 가끔은 설명 생략하고 ‘그런 게 있어요’ 자체가 먹히기도 합니다). 여하튼 ‘왜 해야 하는 일인지’ 알아채도록 끌고 감으로써 해결의 필요성, 과업의 당위성을 설득해 내는 것이 좋습니다. 이제는 회사에서 주인정신 어쩌고 하는 말은 허상이란 걸 잘 압니다만, 적어도 자기 주도적 과업 처리의 성과는 꽤 괜찮다는 것을 경험해 보았으니까요. 조직문화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가급적 정보는 온전히 유통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 적절하게 필요한 정보를 요약하는 것, 모든 것을 너무 정직하게 소통하지는 않아도 됨에 대한 이해, 대신 동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동기 부여를 북돋아주는 것, 이런 부분들이 중간 관리자나 리더의 중요한 역량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Q. 일을 하다보면 이런 것까지 얘기해야 하나 싶은 순간이 있다. 그냥 후배가 알았습니다 하고 받아주면 안되는 것일까?

A.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회사 일이란 것이 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다보니, 나도 일을 받아들 때 참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C level에서 내려오는 top-down order는 대체 어디서부터 이해를 해야 하는지 막막하다. 그러나 안할 수는 없으니 참말 답답하기만 하다. 당신이 좋은 리더가 되고 싶다면 그런 막막한 상황을 나름대로 이해하는 로직을 개발해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실무 담당자가 기계나 AI가 아닌 이상 설득의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설득이 거북하고 귀찮고 의미 없다고 느껴진다면 리더인 당신이 직접 일을 수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난 주로 과업 그 자체보다는 상황에 대해 소통하려고 한다. 상황이 비록 불합리적일지라도 다 큰 어른이자 회사원인 동료들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당신이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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